40. 카자흐스탄 밤거리에서 외면했던 나를 만나다
노래하는 시간이 끝나고 이향, 승빈, 혜린, 연중, 민석과 대통령 학교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
카자흐스탄 볼링장에 가다
나머지 친구들은 노래를 부를 때 집에 갔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었다. 미리 일정을 알려줬으면 다 함께 볼링장에 갈 수 있었을 텐데, 닥쳐서야 볼링장에 간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볼링장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이곳에도 볼링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단재친구들이 볼링을 처음 쳐본다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골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시 운동이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감이 잡히는 맛이 있다. 민석이도 서서히 감을 잡으며 스트레이트를 칠 때도 있었다.
▲ 처음 볼링을 쳐보는 아이들도 금방 익숙해져 스트레이트를 연달아 치기도 했다.
밤거릴 거닐다
밤거릴 거닐었다. 근데 하필 밖엔 큰 비라도 내릴 듯이 어둡더라. 카자흐스탄에 오고 나서 세 번째 오는 비다. 어찌되었든 그것 때문에 조금만 걷다가 들어왔지만, 여태껏 밤거릴 거닐 생각을 못 해봤다.
알마티에 있을 땐 교육원에 있던 여학생들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밤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밤거릴 거닐고 싶었으면,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홈스테이로 흩어진 탈디쿠르간에 와서는 백번이라도 나갔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말하면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걸 테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말이 통하지 않기에 이곳 사람이 무섭다’는 걸 테다. 혹 해꼬지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 앞선 것이다. 여태껏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충분히 느꼈고, 그걸 말로 풀어냈으면서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내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엊그제엔 호텔이 정전이 되어 구경도 할 겸 혼자 산책하고 들어왔으며 오늘은 9시가 넘어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릴 걷고 왔다. 여긴 가로등도 거의 없어 어둠이 짙게 깔리면 어둠의 세상이 된다. 그 세상 속을 거닐며 이국의 정취를 만끽했다.
▲ 쓸쓸하고도 벅찬 나 혼자만을 누릴 수 있던 순간이다.
그제야 비로소 나 혼자 외국에 나와 있다는 쓸쓸함이 파고든다. 어찌 보면 가상의 상황처럼 완벽하게 홀로 되었다고 느낀 이 순간에 나의 감정들, 나의 어릴 때 모습들이 하나 둘 생각나는 것이다. 난 겁이 많았고, 세상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었다. 지금은 알량한 자존심, 어설픈 지식, 그럴듯한 직업이란 외피로 날 가려 세상에 나가는데 두려움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 외피 또한 벗고 보면 여전히 어린 시절의 여리디 여린 핏덩이가 울고 있다. 이국의 밤거릴 거닐며, 난 핏덩이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 나와 나의 조우遭遇, 그건 감춰뒀던 그리고 못내 꺼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자리였다.
▲ [써니]의 한 장면. 어렸을 떄의 자신을 만나 그저 손 한 번 꼭 잡아주고 다독여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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