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온 사람들②
그러나 본격적인 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는 수천 년의 세월과 한 차례의 혁명이 더 필요했다. 고원의 환경은 나날이 늘어나는 인구와 갈수록 커지는 촌락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석기 인간은 점차 고원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터키의 고원지대(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아래쪽이라면 어딜까?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곳, 바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일대다. 점차 이 두 강의 유역으로 내려온 이들은 기원전 4000년경~기원전 3000년경 도시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을 이루었다(물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산 아래에 아무도 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평지의 삶은 산지보다도 더 원시적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 혁명의 성과가 바로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 지역’이라는 뜻) 문명이다.
하지만 문명의 규모가 커진 만큼 문제점도 커졌다. 고원의 촌락에서는 자연 강우만으로도 작물의 재배와 가축의 사육이 가능했으나 '대처'로 내려와 도시를 이룬 다음에는 그게 쉽지 않았다. 도시는 인구가 밀집한 곳이므로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강은 물을 공급해준다는 점에서 좋지만 자칫하면 범람하기 일쑤이므로 언제나 통제가 필요하다. 마침 치수(治水)의 조건이 좋다는 게 다행이랄까? 촌락 규모의 사회에서는 큰 강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풍부한 인력이 존재하는 도시의 조직 사회에서는 관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점차 척박한 고지대의 약탈 농경(토질을 최대한 이용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농경 방식)에서 관개를 이용한 넉넉한 농경으로 이행했다.
초기 문명에서는 치수에 성공하면 도시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을 지배하는 자가 왕이 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만이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동부 연안을 거쳐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고대 문명권을 가리켜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부른다. 초승달의 다른 쪽 끝에서는 이 무렵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 최초의 도시 예리코 문명이 최초로 생겨난 곳은 넓은 평야가 아니라 비좁은 고원지대였다. 이것은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7000년 무렵에 형성된 도시 예리코다. 더 앞선 시기의 도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예리코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당시에는 분명히 이런 도시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