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②
두 번째 요인은 오리엔트 문명 자체에 내재해 있다. 오리엔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문자를 가진 문명 단계로 접어들었고, 이미 기원전 3000년경에 다른 지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고도로 발달한 정치와 행정 제도를 갖추었으며, 오늘날 전해지는 유적만으로도 감탄할 만한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모순이 없으면 발전이 없는 법이다. 오리엔트를 주름잡은 역대 민족과 국가 들은 예외 없이 강력한 전제 체제를 확립하는 데 몰두했다. 그래서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다양한 모순을 억압하기만 했을 뿐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 못했다. 전제와 독재가 사회적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 한 예가 국가 종교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수천 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했으며, 바빌로니아는 마르두크, 아시리아는 아슈르, 페르시아는 아후라마즈다를 모두가 섬겨야 하는 신으로 강요했다. 심지어 약소민족인 헤브라이인도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섬기면서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믿었다. 종교와 정치는 원래 쌍둥이처럼 닮게 마련이다. 국가종교는 오리엔트 특유의 전제 체제와 어울려 진보를 가로막는 질곡으로 작용했다(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유로운 다신교를 수용하면서 지적 발전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이 가능하다면 오리엔트 세계가 이런 한계를 극복할 만한 장면을 가정해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기원전 13세기에 있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충돌이다. 각자 2000년의 문명사적 배경을 등에 지고 초승달의 양 끝을 이루는 대표 주자였던 두 나라는 당시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오리엔트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힘의 중심이 생겨났을 것이며, 이것을 배경으로 오리엔트는 자체적으로 서쪽 유럽 세계를 향해 진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오리엔트는 서구 문명의 씨앗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 열매마저도 자체적으로 생성시켰을지도 모른다. 이 기회가 무산된 이후 오리엔트는 아시리아라는 군사 국가에 의해 통일되는 역사적 비운을 맞았고, 나중에 보겠지만 힘을 키운 그리스 문명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이후 이 지역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두 번 다시 인류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이제 문명의 씨앗은 서쪽의 유럽으로 옮겨갔고 뿌리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 황금의 유목민 스키타이의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 빗이다. 대표적인 고대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는 떠돌이 생활을 한 만큼 별다른 유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유물은 많이 남겼다. 표정까지 뚜렷한 뛰어난 조각 솜씨는 유목 문명이 과연 이 정도로 발달했는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세 병사들 모두 바지를 입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원래 바지는 유목민족이 말을 타기 위해 고안한 옷이었다. 서양에 바지를 전한 것도 로마 북부의 유목민족인 게르만인이다. 하지만 바지가 익숙하지 않은 로마의 남자들은 여전히 킬트(kilt)라는 짧은 가죽 치마를 입었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