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1장 로마가 있기까지, 고난 끝의 통일② 본문

카테고리 없음

종횡무진 서양사, 3부 뿌리② - 1장 로마가 있기까지, 고난 끝의 통일②

건방진방랑자 2022. 1. 2. 15:38
728x90
반응형

고난 끝의 통일

 

 

그러나 로마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갈리아에 치욕을 당하는 꼴을 본 라티움 동맹의 도시들은 로마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었다. 특히 캄파니아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삼니움인들은 기원전 350년 별도로 삼니움 동맹을 맺고 로마와 라티움 동맹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로마는 아직도 같은 체급에서는 챔피언이었다. 삼니움인들은 비록 전투에 능하고 기질이 억센 산악 민족이었으나 그리스에서 도입한 로마의 선진적 밀집대형 전술을 당해내지 못했다. 이 삼니움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당시 이탈리아 최대의 산업 중심지인 카푸아와 비옥한 곡창지대인 캄파니아, 그리고 중요한 무역항 네아폴리스(나폴리)를 얻는 횡재를 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로마가 전리품을 독차지하자 동맹시들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평화조약으로 출범한 라티움 동맹의 틀을 깨지 않기 위해 동맹시들은 우선 점잖게 재분배를 요구했다. 그러나 제 코가 석 자인 로마가 그 요구를 수용할 리는 만무했다. 결국 전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삼니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원전 340년에 로마는 또다시 동맹시들의 연합군을 맞아 3년 동안 힘든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로마의 힘은 이제 과거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2년이 지나자 전쟁 수행 능력을 잃은 동맹시들은 로마에 강화를 제안했다. 사실상의 항복인 셈이었다. 정치적 지도력을 확고히 한 로마 앞에는 다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로마가 선택한 메뉴는 세 가지였다. 첫째, 적극 협력하는 도시들에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둘째, 끈질기게 저항하는 도시들은 요새를 파괴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추방한다. 셋째, 이도 저도 아닌 중립 도시들에는 정치적 자치권만 부여한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의 패자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마무리만 남았다. 아직도 완전히 복속되지 않으려 하는 삼니움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과 남쪽 끝자락의 마그나그라이키아를 접수하는 것이었다. 삼니움인들은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완강하게 버텼으나 기원전 295년에 센티눔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이때 갈리아인도 삼니움 측에 가담해 싸웠으므로 로마로서는 갈리아에 복수한 셈이다). 이제 반도 통일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냥 접수하면 될 줄 알았던 마그나그라이키아에서 예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굽 부분에 있는 항구도시 타렌툼은 로마를 새 주인으로 맞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옛 주인인 그리스의 품을 찾았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미 동맹시들이 로마에 강화를 요청하던 해(기원전 338)에 필리포스의 마케도니아에 굴복한 터였다. 따라서 타렌툼의 도움 요청에 응답한 것은 그리스도, 마케도니아도 아닌 그리스 북서부에 있는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Pyrrhos, 기원전 319~기원전 272)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제2의 알렉산드로스를 꿈꾸던 야심가인 데다 평소에 타렌툼을 위대하고 부유한 도시라고 여기던 그이니, 타렌툼의 요청은 그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격이었다. 그는 원래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려 했으나, 이참에 목표를 서쪽으로 돌려 이탈리아 전체를 정복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로스가 이끄는 그리스 용병과 마케도니아 연합군은 스무 마리의 코끼리와 함께 타렌툼이 깔아놓은 레드카펫으로 왔다. 이탈리아 내의 여러 작은 민족만 상대해온 로마로서는 처음 맞는 헬레니즘 세계의 군대였다. 그러나 큰 싸움에서 이기면 큰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원전 275, 양측은 베네벤툼에서 맞붙었다. 승부의 핵은 코끼리였다. 코끼리 전술이 장기인 피로스로서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로마인이 코끼리를 보고 놀란 것 못지않게 코끼리들도 로마의 밀집대형을 보고 놀랐다. 결국 로마군의 창에 부상을 당해 미쳐버린 코끼리가 거꾸로 그리스 병사들을 짓밟아 죽이면서 피로스의 야망은 꺾였다(피로스의 고향은 오늘날 알바니아에 해당하는데, 알바니아 사람들은 피로스를 아직도 고대사의 영웅으로 존경한다). 피로스가 물러간 뒤 로마는 타렌툼을 접수해 기원전 272년에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루었다.

 

 

코끼리 접시 전에도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겠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피로스의 코끼리 부대에서 코끼리를 처음 구경했다. 그러니 그들이 혼비백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림은 그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접시다.

 

 

인용

목차

동양사

한국사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