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평화③
결과를 놓고 말한다면 안토니누스의 최대 업적은 후계자 선정일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로마의 모든 황제 중 최고로 꼽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가 바로 그의 후계자였기 때문이다(실은 하드리아누스가 이미 마르쿠스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안토니누스에게 양자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황제로서, 또 『명상록(tôn eis heauton diblia)』의 지은이로서 유명하지만, 마르쿠스는 사실 걸출한 정복 군주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명상록』도 궁전에서 한가로이 명상하면서 쓴 책이 아니라 전쟁터의 막사에서 썼다).
파르티아가 다시 변방을 공략하자 아우렐리우스는 즉각 원정군을 파견했다. 이참에 아예 파르티아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파르티아는 로마의 손에 멸망하지 않을 운명이었다. 뜻하지 않은 파르티아의 구원군이 온 것이다. 그 구원군은 아주 작았으나 무시무시했다 바로 페스트였다. 앞서 본 페리클레스의 죽음처럼(137쪽 참조) 서양사의 물줄기를 여러 차례 바꾼 페스트는 철군하는 로마군의 몸에 실려 이탈리아까지 퍼졌다(일부 역사가들은 이 페스트가 로마 제국의 쇠퇴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까지 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경 북쪽의 중부 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이 대거 제국을 침략했다. 이래저래 곤란한 처지였으나 호전적인 아우렐리우스는 오히려 그것을 북벌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로마의 국경을 다시 엘베 강까지로 넓힐 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언제나처럼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가 전장에서 병사했다. 당시 그의 북벌이 성공했더라면, 로마는 5세기 말에 적어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로마 세계 팍스 로마나 시대 지중해를 한 바퀴 두른 로마 제국의 영토다. 오늘날 유럽 세계의 원시적 형태를 보는 듯하다. 오늘날의 지명과 같은 곳도 있고 다른 곳도 있는데,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 ~ 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진왜란
연표: 임진왜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