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째보선창과 군산세관
터미널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어 째보선창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둘러보고 있다.
▲ 그 때의 아픔이 스민 뜬다리와, 지금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뜬다리.
째보선창과 군장대교
『아리랑』을 보면 하대치가 피땀 흘려가며 째보선창을 간척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부잔교는 해수면의 높이에 따라 다리가 오르락내리락하도록 만든 장치인데, 아무래도 수심에 상관없이 쌀을 실어 나르기 편하도록 만든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와는 상관없이 수탈하기 편하도록 만든 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랜 4기가 건설되었다던데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해변을 따라 걷는다. 바다 건너편은 충남 장항읍이 보인다. 군산과 장항을 동시에 묶어 ‘군장국가산업단지’를 만들었다. 장항과 군산은 금강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왕래가 더욱 활발해졌다. 여기에 지금은 군장대교까지 건설되고 있으니, 이 다리가 완공되면 군산과 장항은 완벽한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일 것이고 더욱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다.
▲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선로 이설 문제로 난항을 빚고 있다고 한다. 내년 말께는 개통되지 않을까.
초라하고 작기만 한 걸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군산 구석구석을 살펴볼 순 없다. 그렇기에 본정통本町通(일제 강점기의 중심거리)을 거닐며 일제시대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건물을 보고 싶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는 군산역사박물관 앞쪽에 그와 같은 건물들이 쫙 펼쳐져 있을 거라 생각해서 역사박물관 앞쪽을 거니니, 공공기관 같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민가들만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보니, 역사박물관 좌우로 그 당시의 건물들이 있더라.
▲ 해망로를 따라 가면 근대 건축물을 모두 볼 수 있다.
처음 보게 된 건 구 군산세관이다. 역사박물관 바로 오른쪽에 위치해 있어서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구 세관 건물의 이국적인 디자인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내 현대의 건물 규모에 비하면 왜소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건축양식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보고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해서 그런 걸 테다. 나는 별 감흥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고 건물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신기할 밖에. 이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어떤 의미일까?
▲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여들어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군산세관,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돌아와 건물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군산의 근대식 건축물은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줄만 알았는데,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쇄국정책에서 개방정책으로 정책을 바꾼 후에 1883년에 인천, 부산, 원산 등의 주요항구를 개항하였고, 이후 군산도 1899년 5월 1일에 개항한다. 개항한 항구엔 조계지租界地를 두어 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상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군산세관은 바로 그런 상업 활동을 감시하고 세금을 매기기 위해 인천세관 산하 기관으로 건설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고 보니, 구 군산세관이 남달라 보이더라. 어쩐지 건물이 일본풍이 아니라 했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건축양식을 ‘서양고전주의’ 양식이라 한단다. 현재 남한엔 ‘서양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서울역, 한국은행, 군산세관 3곳만 남아 있다고 한다. 두 군데는 서울에 있는데 멀고도 먼 군산에 그런 역사성을 지닌 건물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알기 전엔 ‘특이하지만 초라한 건물’이었는데, 알고 나니 ‘의미도 있으면서 특별한 건물’이 되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들이다. 왼쪽부터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 군산 세관.
군산세관과 제2롯데월드
건축물이 시간이 지난 후 각광을 받고 ‘역사적인 건물’로 남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당연히 ‘무언가 우수한 게 있거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기에 남았겠지’라고 생각했다. 경복궁이나 석굴암, 수원화성 등은 그 시대를 담은 건축물이기에 지금껏 이름을 날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2롯데월드에 대해서는 ‘어떠한 역사적인 가치는 볼 수 없고 인간의 가장 말초신경적인 욕망만 추구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규는 “지금 남아 있는 과거의 건물들이 그 당시엔 일반적인 건축양식이었을 텐데 지금은 유적지가 되었듯, 제2롯데월드도 현대의 건축양식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그와 같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게 단순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말 그대로 현재 ‘과거의 유산’이라고 남아 있는 것 중엔, 군산의 ‘히로쓰 가옥(일제 강점기 당시의 포목으로 떼돈을 번 일본인이 만든 으리으리한 집)’이나 ‘청남대’처럼 어떤 욕망의 극치를 보여준 곳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과거의 것에 어떤 현재적인 의미를 부여하느냐, 그리고 그게 얼마나 현대인들에게 어필하느냐에 따라 남을 수 있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닐까?
이쯤 되니 많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렇다면 구 군산세관과 제2롯데월드는 정말 같은 의미의 건축물이란 걸까? 아니면 이런 식으로 애써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걸까? 아직은 여기에 대해 어떠한 말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 제2롯데월드 이미지 사진과 학교 앞에서 지민이가 8월 5일에 찍은 사진. 이걸 우린 유산으로 남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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