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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느끼다 - 4. 장미동에 역사가 남게 된 아이러니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산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느끼다 - 4. 장미동에 역사가 남게 된 아이러니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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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미동에 역사가 남게 된 아이러니

 

 

구 군산세관에서 군산역사박물관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연거푸 근대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야말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물자들이 일본으로 쏙쏙 빠져나가며 호황을 이루였던 곳이다.

 

 

군산은 걸어다니며 볼 수 있을 정도로 다 보여 있어 좋다.

 

 

 

장미동엔 장미가 없다?

 

그런데 하필 이곳의 이름이 장미동이다. 어랏? 일본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곳 이름이 하필 사쿠라동이나 벚꽃동이 아닌 장미동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과 관련된 곳이란 이미지를 지우려 이름을 바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미라는 꽃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예전엔 이 주변에서 장미를 집단적으로 키워냈던 곳이었을까? 서울의 잠실蠶室이 조선시대만 해도 누에고치를 키워 명주실을 뽑아내 옷감을 생산해냈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처럼, 이곳도 장미를 키워낸 곳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장미를 재배하는 곳이 있나 살펴보니, 그런 곳은 보이지 않더라.

이상한 마음에 자료를 검색해보고서야 나의 무식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한문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너무도 단순히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장미는 薔薇Rose가 아니라, ‘쌀을 저장한다藏米였다. 째보선창 근처엔 정미소가 있었고 그곳엔 쌀을 저장하기 위한 저장소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배가 정박하면 그 쌀들을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이곳의 지명은 일제 수탈의 가장 정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장미동에 돈과 관련된 근대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이미 지명으로 충분히 설명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장미동엔 장미는 없지만 역사는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군산 장미동 일대의 모습. 이곳에 강점기 당시엔 중심가였다.

 

 

 

장기18은행과 조선은행 군산지점의 흥망성쇠

 

처음으로 보인 건물은 장기18은행이다. 네모반듯한 모양의 건물로 그 시대의 군산의 위상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 건물은 은행 건물로 사용되다가 최근엔 대한통운에서 창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단장을 마쳐 '군산근대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보인다. 조선은행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일본의 조선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의 경제권을 틀어쥐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군산에 세워진 조선은행은 한양 이남에 이와 같은 거대한 건물은 없었다고 하니 군산이 강점기 당시에 어느 정도의 위상을 지닌 도시였는지 알만 하다.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닌 건물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퇴물 취급을 받게 되었고 결국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바로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경수 누나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땐 장난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말 그랬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이 경우야말로 건축물이 후대에 남겨 지는 이유가 무언가 우수한 게 있거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기에 남았겠지?’라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 다른 느낌. 건물의 성쇠도 어찌 보면 필연적이라기보다 우연적이란 느낌이 든다.

 

지금은 '근대 건축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쇠락한 융성

 

장기18은행조선은행 군산지점건물을 보면서 건축물이 역사가 되는 것도 복잡미묘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경수 누나는 해방 후에 군산은 발전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개발에서 소외되며 그와 같은 건물들이 남겨지게 된 거야라고 말해주더라.

이 말이 100% 사실일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일 것이다. 1930년대 군산은 가장 호황을 누렸으나 해방이 된 후 철저히 소외되며 쇠락해갔다. 그 상황에서 남겨진 건물들은 처치불능의 건물들이 되었을 테고 그렇게 나이트나 대기업의 창고 역할을 하며 연명했던 것이다. 만약 그 때 군산이 발전했다면 아마도 그런 건물들은 모조리 부수고 새 건물을 세웠을 것이다. 때론 발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각광을 받게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삶의 아이러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2시간 정도의 짧은 군산 여행을 마쳤다. 다음엔 좀 더 군산을 공부한 후에 제대로 둘러봐야겠다. 이번 군산 여행을 통해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그 때의 관념에 따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재창조될 수 있는 유동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2시간 정도 살짝 해망로 근처를 돌아봤다. 다음엔 동국사와 해망굴, 그리고 일본식 가옥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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