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
우리가 기성의 교회사에 대한 편견이 없이 사태를 관망해보면, 마르시온(Marcion, ?~160)이 구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기나긴 유대화파와의 투쟁의 역사의 결말로서는 너무도 명료한 결론이다. 생각해보라! 구약의 약(約)이란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이란 ‘헌 계약’(Old Testament)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습관에서 확실히 알 수 있듯이 계약이란 새계약을 맺으면 반드시 헌계약을 파기해야 한다. 새계약을 맺을 때 헌계약증서는 찢어 버리거나 법적 효력을 발생치 못하게 만드는 장치를 반드시 한다. 헌계약이 계속 유효하다면 새계약을 맺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신봉하는 복음을 하나님과의 새계약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신약’(新約, New Testament)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구약은 폐기되어야 한다. 구약이 폐기되지 않으면 신약은 신약이 아니다.
더구나 구약은 야훼하나님과 이스라엘민족 사이에서만 맺은 유대인의 계약이다. 그것은 오직 이스라엘 선민과 야훼 사이에서만 성립한 배타적 계약이다. 이스라엘민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지역적 계약이다. 그러나 신약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전세계 이방인 누구든지, 더구나 남녀노소 귀족 노예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아주 새로운 보편적 계약이다. 한 작은 고을의 지방자치 법령을 보편적인 만민법이나 자연법과 혼동할 수는 없다. 이제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가 아닌 이방인의 종교요 세계인의 가톨릭(보편적) 종교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정당한 주장을 그토록 이단시했을까? 사도시대를 승계한 인물로서 당대의 가장 권위있었던 스뮈르나(Smyrna, 현재의 터키 이즈미르)의 희랍인 주교 폴리캅(Polycarp)은 로마교회에까지 와서 마르시온을 만나보고 뒤돌아서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사탄이 제일 먼저 낳은 놈일 게다.” 왜 그토록 혹평했어야만 했을까?
비록 유대화파들의 압력은 사라졌고 더 이상 구약이 기독교인에게 강요되는 율법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럴수록, 즉, 더 이상 유대인의 목소리가 교회내에서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자유로운 상황이 도래될수록 역설적으로 초기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정통 보수파들의 입장에선 구약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신약이라는 것이 신약이라는 막연한 개념만 있었지 실제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신약성경’이라는 보편적 공약문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구두계약만 있었지 문서계약이 없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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