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야만
이슬람(Islam)이라는 말 자체가 제아무리 순종과 평화를 의미한다 해도 하여튼 중동지역은 피의 복수가 너무 심하다. 엘리야 선지자도 분단시대의 이스라엘 왕 아합의 바알숭배를 징벌하기 위해, 황소의 번제 제단을 하나는 바알을 위한 것, 하나는 야훼를 위한 것, 두 개를 만들어놓고 시험을 한다. 불을 안 붙이고도 저절로 타오르는 제단이 진정한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다.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나 되었고 야훼의 예언자는 엘리야 선지자 단 한 명이었다. 바알의 예언자 450명은 아침부터 한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 소식도 응답도 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엘리야의 제단에는 기름을 붓고 기도하자 야훼의 불길이 내려와 장작과 돌과 흙, 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린다(왕상 18:38).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보는 앞에서 야훼 하나님의 위대성을 보였으면 이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때 엘리야는 외친다. “야훼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사로잡으시오!” 그리고 기손 개울로 끌고가서 450명의 바알 예언자들을 모조리 한 사람도 남김없이 도륙한다. 이것이 구약의 세계다. 피는 오직 피를 부를 뿐이다. 모세오경을 읽어보아라! 매 계명마다, “…… 하면 쳐죽여라, 때려죽여라.”하는 야훼의 명령천지다. 구약의 계명을 잘 지키고 살려면 매일 사람을 쳐죽여야 할 것이다. 신구약성경을 천독(千讀)하신 나의 모친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구약은 너무 피비린내가 심하다.”
물론 알리의 피의 보복이 거기서 그칠 리가 없다. 후일 알리 집안의 상여가 나갈 때 함라 둠 사람들이 와서 또 살육극을 벌였다. 알리는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다. 알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의 상처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곤 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의 손에 걸린 인류의 성스러운 영적 보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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