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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8장 에필로그 - 시온성의 처녀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8장 에필로그 - 시온성의 처녀

건방진방랑자 2022. 3. 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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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성의 처녀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교회를 다니셨다. 천안 대흥동 231번지에서 중앙장로교회에 이르는 길의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가 새벽에 콧소리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시고 가는 소리를 듣고 이부자리를 거두었고 쌀뜨물을 버렸다.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산보 시간보다도 더 정확했다. 당시 천안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겨울철 눈이 소복이 쌓인 신작로에 엄마의 고무신이 꼬드득 꼬드득 소리를 낼 때도 나는 꼭 따라나섰다. 여섯일곱 살 때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녔다. 그때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부른 찬송이 64(당시 찬송가)이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내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제4절이다.

 

 

시온성에 사는 처녀들이여

사랑하시는 내 주를

빈들에서나 그 장막 안에서

만나뵈인 일 없는가

 

 

새벽의 푸른 여명을 가르고 엄마 입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가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형언키 어렵지만 항상 내 머릿속에 각인된 나의 어머니 모습은 시온성에 사는 처녀였다. 그렇게 고귀하고 고결한 처녀, 시온성의 처녀가 뭔 뜻인지도 몰랐지만, 나에겐 나의 엄마는 항상 시온성에 사는 처녀였다.

 

그런데 그 처녀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 매일 새벽 우시는 것이었다. 기도하시며 통곡을 하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오른쪽 여자석에 엎드리고 나는 건너편 왼쪽 남자석에 엎드렸는데 엄마가 우는 것을 보면 계속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엄마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엄마는 왜 울었을까? 왜 그토록 교회에 가서 엎드리기만 하면 우셨을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이 원고를 적신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눈물에 대하여 어떠한 이론적 해석을 내린들, 그것은 불경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토록 눈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아낙들! 개화기부터 맺힌 조선풍진의 모든 한이 나의 어머니의 일거일동에는 찬란한 이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천수를 다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렇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어머니는 나의 불신앙을 탓하시고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와 함께, 엄마 손을 꼭 잡고 교회를 같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그런 기회가 오기도 전에 어머니는 영면하셨다. 16살 시집올 때 입고 오신 다홍치마 연두저고리를 고이 간직해 두셨다가 수의로 지어 입으시고 거룩하게 돌아가셨다. 내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내가 참 신앙인인지 아닌지, 인간인 나로서는 판단할 수가 없다. 단지 이 한 권의 책으로라도 하늘에 계신 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에 평온함과 안도감이 깃들기만을 빌고 또 빈다. 어머님! 하나님나라에서 편안히 주무시옵소서. 아멘.

 

 

20061228일 오후 645분 탈고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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