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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아트만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아트만

건방진방랑자 2022. 3.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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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만

 

 

아트만(ātman)이란 뭐 그렇게 대단한 말이 아니고, 산스크리트어로 그냥 라는 말이다. 그것을 한역하여 ’()라고 했는데 범아일여론의 가 곧 이 아트만이다. 아트만은 본시 ’()을 의미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숨쉰다는 뜻이다. 그 숨, 그 기의 주체를 아리안계 고대인도인들은 아트만이라 불렀던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자신의 서재에 있을 법한 아무런 독한사전을 하나 펼쳐서 ‘atmen’이라는 동사를 찾아보면, ‘숨쉬다, 호흡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독일어의 아트멘과 산스크리트어의 아트만은 완전히 동근이다.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같은 계열의 단어이다. 히틀러가 자기네 게르만족만이 아리안의 적통을 이어받은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는 신념 아래, 무자비한 유대인의 학살극을 자행했는데, 그러한 터무니없는 선민의식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러한 주장이 완벽하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산스크리트어를 인도유러피안어군 속에 집어넣는 것도 산스크리트어가 많은 유럽언어의 모어적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독일철학자 헤겔이나 칸트같은 사람들의 사유나 싯달타의 사유 속에는 같은 혈통과 같은 언어의 흐름이 있을 수 있다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전혀 황당치 않은 이야기들을 평심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부터 전개되는 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격리되어 발전된 듯이 보이는 인류의 고대문명들은 매우 격렬하게 교류된 하나의 문명이었다. 모든 문명은 오로지 교류로써만 생존한다. 사람도 매일매일 먹고(input) 싸지(output) 않으면 생존할 수 없듯이 문명도 매일매일 먹고 싸지 않으면 그냥 사멸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인도인들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 내가 있느냐? 상주(常住)ㆍ단일(單一)ㆍ주재(主宰)하는 불변의 자아가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아가 있다면 그 자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칸트나 피히테, 헤겔의 철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질문들인 것이다. 베다의 사상가들이 이 우주의 외재적, 객관적, 궁극적 실재에 관심을 가졌다면 우파니샤드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내재적 문제, 인간의 내면적 성찰, 즉 자아의 실상에 관하여 그 탐색의 방향을 전환하였던 것이다. 숨을 쉬고 있는 그 나가 과연 무엇인가? 깨어 있는 나가 진짜 나인가? 잠잘 때의 나가 진짜 나인가? 꿈꿀 때의 나가 진짜 나인가? 꿈도 안 꾸고 고요하게 숙면할 때의 나가 진짜 나인가?

 

우파니샤드(Upanisad)의 사상가들은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상태에서의 모든 유한한 정신활동을 초월한 상태의 무분별한 희열, 일상체험이 아닌 요가와 같은 수행을 통하여 도달되는 신비적 엑스타시의 어떤 체험상태에서 아트만(ātman)의 궁극적 실상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인도의 가장 성스러운 도시, 바라나시의 어지러운 거리 모습. 문명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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