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신과 법신
우리말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속담이 하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붓다는 죽기 전에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평생 설하고 가르친 법(法)과 율(律)이 있으니, 이것이 내가 죽은 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되리라.”
그리고 또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서품」(序品)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스승 석가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세월은 극히 짧은 것이었다. 육체(肉體)는 비록 갔지만 그 법신(法身)은 살아 있다. 마땅히 그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하리…… 여래의 법신(法身)은 썩는 법이 없으니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 끊어지지 않으리.
釋師出世壽極短, 肉體雖逝法身在, 當令法本不斷絕…… 如來法身不敗壞, 永存於世不斷絕. 『增壹阿含經』 卷第一, 「序品」 第一, 『大正』 2-549~550.
본시 삼신(三身)이니, 사신(四身)이니, 십신(十身)이니 하는 애매모호하고 번쇄한 이론들이 다 후대에 생겨난 것이요, 초기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세친(世親, Vasubandhu)이 활약하던 AD 4ㆍ5세기, 그러니까 대승불교 중기에나 성립한 것이다. 초기불교에는 색신(色身, rūpa-kāya)과 법신(法身, dharma-kāya), 이 두 가지 구분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정형화된 개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소박한 말들이었다.
죽은 호랑이는 바로 그 호랑이의 육신(肉身)이다. 그 육신이 곧 색신(色身)이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남긴 가죽(상징적 의미체계 속에서)은 곧 호랑이의 법신(法身)이다. 여기 인용된 대로 붓다의 법신은 붓다가 남긴 법(法)이요 율(律)이다. 법은 경장에 수록되었고, 율은 율장에 수록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신도 어떠한 대단한 이론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인간 붓다가 죽어가면서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한 말이다. 정말 붓다가 대단히 신통력이 뛰어나고 시공을 초월하는 불멸의 영력의 소유자라 했다면, 붓다의 죽음은 신비화되었을 것이다. 예수처럼 죽었다 곧 부활하여 애통해하는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났든지, 무드셀라처럼 몇 백년을 살았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그 위대한 붓다는 45년간 주변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냥 보통사람처럼, 아주 평범한 보통사람처럼, 파바(波婆, 현 파질나가르Fazilnagar)마을의 대장장이 아들 춘다(純陀, Chunda)가 공양한 수끄라하 맛따빠(sūkraha mattapah)라는 상한 돼지고기 요리를 잘못 먹고 심한 이질설사를 일으키며, 쿠시나가르(拘尸那羅, Kuśīnagar)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25년간이나 시봉했던 제자 아난(阿難, 阿難陀, Ānanda)은 육신이 쇠진하여 죽어가는 붓다를 향해 애통해하며 울부짖는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도 가시려 하오니이까? 큰 법이 가리우고 세간은 눈이 멀어 버리지 않겠사오니이까? 선생님의 법력으로 열반에 드시지 마옵소서! 세존께서는 부디 1겁 동안 이 세상에 머무소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을 연민하시와 인간들과 신들의 복리와 안락을 위해.”
그리고 세존이 설법하시는 동안에도 슬픔을 못 이기고 슬며시 정사 뒷켠에서 몸을 숨기고 흐느낀다.
“아! 나는 배워야 할 것, 이루어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저 자애로움이 깊으신 큰 스승님께서 나를 두고 가시려 하다니!”
라고 문고리를 부여잡고 숨소리를 죽여가며 절규한다.
이러한 아난에게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난다여! 나의 죽음을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아난다여!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는 달라지는 상태, 별리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아난다여!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것, 그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해도,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당부한다.
“제자들이여!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그리고는 다시 흐느끼는 아난을 위로한다.
“아난다여! 명심하여라. 나 여래의 수명은 너무도 길다. 왜 그런 줄 아느냐? 나의 육신(肉身)은 썩어 없어질지, 내 법신(法身)은 여기 이 땅에 살아남아 너희들과 항상 같이 다. 이 뜻을 잘 새기어 봉행하거라[是故阿難, 當建此意. 我釋迦文佛壽命極長. 所以然者, 肉身雖取滅度, 法身存在. 此是其義, 當念奉行. 『增壹阿含經』 卷第四十四, 「十不善品」 第四十八, 『大正』 2-787.].”
내 육신은 썩어 없어질지라도 내가 너에게 전하다 진리는 영원하리, 여기 육신(肉身)과 법신(法身)이라는 개념이 이미 아가마에 등장하고 있지만 본래는 세상을 하직하는 붓다가 주변의 작별을 서러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던진 매우 상식적인 말이었다.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있으리라”고 한 양명문 시 속의 명태의 고백처럼 던진 이 한마디가, 후대 불교사에 엄청난 문제를 던지는 이론적 과제상황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 와불(臥佛)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모로 누운 부처는 반드시 열반에 드는 싯달타의 죽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 와불은 드러누워 잠자는 부처로 오해될 수가 있다. 모든 와불은 열반상일 뿐이다. 붓다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에는 AD 417년 꾸마라굽타 1세 (Kumaragupta I) 때 조성된 열반상이 장중한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 내가 목격한 와불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리얼한 걸품이었다. 보통 옷을 입혀 놓았는데 옷을 벗기고 사진 찍느라고 100루피를 주어야 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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