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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1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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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

 

 

자아! 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계속하면 갑론을박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곧 부처님이다[此心卽佛]라는 선의 주장은 원시불교에는 해당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견성성불이니 차심즉불이니 하는 말은 곧 불성에 대한 논의들이 정립된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싯달타가 부처가 되기 전의, 즉 불성이라는 개념조차 성립하기 이전의 사유를 소급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종의 모든 주장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역사적 이유’(historical reasons)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대승의 번쇄한 논의들이 또 다시 불교의 본의를 가을 정도로 난립한 상태에서 생겨난 명쾌한 면도날이었다는 것, 선종은 대승의 종국이자, 거대한 불교사상사의 말류이다. 우리는 말류를 가지고써 원류를 함부로 추측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발한 공안(公案)이나 몇 개 휘두른다고 싯달타의 고민이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핍팔라나무 아래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사람은 35세의 인도청년이다. 그는 부처도 아니요,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마술사도 아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이 보통사람이 핍팔라나무 아래서 과연 무엇을 했길래 그다지도 위대한 사람이 되었나? 과연 무엇을 했길래 보통 사람이었던 그가 붓다가 되었나?

 

우리는 보통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했다, 대각을 이루었다는 싯달타를 생각할 때, 우선 그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몰입했으며, 기나긴 마라(魔王) 즉 사탄과의 싸움에서 종국적인 승리를 거두고 드디어 대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었다는 막연한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처님의 이미지에는 도무지 혈관이 없고 따스한 살결이 없다. 우리의 부처님은 생명없는 금동부처 아니면 차가운 돌부처일 뿐이다. 뛰어나게 선정에 몰입하고 마라의 유혹만 물리치면 어느 새벽녘엔가 홀연히 정각의 천지가 열릴 것인가? 여기에 바로 우리가 부처를 생각하는 방식의 오류가 있다. 여기에 바로 선종적인 불교의 이해방식의 한계가 있다. 불교를 이렇게 이해하면 싯달타는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와 하등의 차별이 없다.

 

 

 내가 인도에서 체험한 가장 거대한 충격은 올드 델리(Old Delhi)에서 랄 낄라(Lal Qila)라고 불리는 적성(赤城) 레드 포트(Red Fort)를 바라보는 순간에 다가왔다. 이것은 무굴제국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무굴제국은 중국의 청제국에 비교될 수 있는 정복왕조다. 청은 여진의 후예였고 무굴의 주인공들은 징기스칸의 후예였다. 이군을 따라 무심하게 델리의 거리를 거닐다가 만난 이 광경은 북경의 자금성이나 빠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붉은 사암의 장대한 느낌은 단순했기 때문에 강렬했다. 33m 높이의 성벽이 8각형 형태로 2km나 뻗어있다. 샤 자한이 1638년에 착공, 불과 10년만에 완성했다. 아우랑제브만이 이궁에서 다스렸다. 뒷쪽에는 야무나 강(Yamuna River)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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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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