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관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무명이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궁극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연기의 실상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말하는 것이다. 무명조차도 끊임없는 연기의 고리 속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인과 밖에 있는 어떤 실재는 아닌 것이다. 다시 한번 『마하박가』에서 싯달타의 최초의 깨달음의 순간을 전달하는 문구를 되씹어보자!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에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
여기 ‘발생하는 대로’라는 것은 흔히 순관(順觀)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A에 연하여 B가 생한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싯달타의 사유의 출발은 늙음[老]ㆍ죽음[死]ㆍ슬픔[愁]ㆍ눈물[悲]ㆍ괴로움[苦]ㆍ근심[憂]ㆍ갈등[惱]이었다. 싯달타는 물론 최초에는 이 노사(老死)의 현실로부터 그 원인을 추적해 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무명으로부터 다시 생기하는 과정을 따라 내려왔을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두 방향성은 근원적으로 동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괴로운 현실이 생성되는 과정을 사유한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최후항목인 무명으로부터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생(生)하고
행(行)에 연하여 식(識)이 생하고
식(識)에 연하여 명색(名色)이 생하고
명색(名色)에 연하여 육처(六處)가 생하고
육처(六處)에 연하여 촉(觸)이 생하고
촉(觸)에 연하여 수(受)가 생하고
수(受)에 연하여 애(愛)가 생하고
애(愛)에 연하여 취(取)가 생하고
취(取)에 연하여 유(有)가 생하고
유(有)에 연하여 생(生)이 생하고
생(生)에 연하여 노사(老死)가 생한다.
이렇게 하여 괴로움의 씨앗들(苦蘊, dukkhakkhandha)이 함께 모여 일어나는 것(集起, samudaya)이다.
▲ 불교에서는 붓다의 설법을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전법륜, 轉法輪)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이라 한다. 이 초전법륜의 모습은 반드시 전법륜 수인(다르마차크라무드라, dharmacakramudrā)이라는 양식으로 표현된다. 엄지와 검지를 말아 바퀴모양을 만들고 한 손은 바닥이 보이게 하고 한 손은 등이 보이게 하여 대는데 여러 변양이 있다. 연좌대아래 바퀴가 있고 주변에 설법을 듣는 최초의 제자가 있다. 때로는 그 자리에 사슴이 있기도 하다. 아잔타석굴의 불상은 대체로 초전법륜상이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의 내면의 초전법륜상은 굽타시대 는 16 사이로 추정). 높이 160cm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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