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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6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 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 6. 들뢰즈와 가타리 : 차이의 철학에서 노마디즘으로, 라쇼몬을 통해 본 사건의 철학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6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 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 6. 들뢰즈와 가타리 : 차이의 철학에서 노마디즘으로, 라쇼몬을 통해 본 사건의 철학

건방진방랑자 2022. 3.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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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을 통해 본 사건의 철학

 

 

공 얘기로는 사건이란 개념을 납득하기 어렵나요? 좀더 재미있는 예를 들어봅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몬(羅生門)은 사실과 다른 사건의 개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나뭇꾼이 사람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그저 죽은 사람의 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몸의 주변에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가슴에 꽂힌 칼, 남자의 망건, 끊어진 포승줄, 망사천을 둘러친 여자의 큰 모자 등등. 여기서 우리는 나뭇꾼처럼 질문하게 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로 이 질문이 사물을 사건화하는 질문입니다. 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살인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던지는 질문이고 또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이지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건화하는 사물들의 계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즉 추가적으로 계열화되어야 할 항들이 남아 있는 겁니다. 모자의 주인인 여자, 칼을 꽂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선 그 사람들을 잡아다 그들의 얘기를 듣습니다. 먼저, 칼을 꽂은 장본인임을 자처하는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남자를 속이곤 여자를 겁탈하고 그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그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 항들을 계열화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 경우 사건의 의미는 여자를 두고 벌이는 남자들의 결투가 될 겁니다.

 

그러나 불려온 여자의 말은 다릅니다. 타조마루가 겁탈하고 가버린 뒤, 자신이 남편의 포승을 끊었는데, 그런 자신을 쳐다보는 남편의 싸늘한 시선, 경멸과 욕설을 담은 듯한 그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찔러 죽였다는 겁니다. 이건 또 완전히 다른 계열화의 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선 칼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습니다. 대신 싸늘한 시선이 여자의 몸을 찌르고, 그로 인해 여자의 손에 든 칼이 남자의 몸을 찌릅니다. 당연히 죽음의 의미도 달라지지요.

 

영매(靈媒)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죽은 남자의 말은 그 둘과 또 다릅니다. 여자를 겁탈한 후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꼬드기던 산적 앞에서, 울던 여자가 고개를 획 돌려 자신을 겨누었다고, 남편을 두고 당신을 따라갈 순 없으니 남편을 죽이고 가자고 하는 그 극적인 배신 앞에서 나는 결망했노라고, 놀란 타조마루마저 여자를 밟고선 이 여자 어떻게 할까? 죽일까? 네 뜻대로 하지라고 물었고, 그 순간 자신은 이미 그 도둑을 용서했노라고, 도둑이 포승을 풀러 온 사이 여자는 도망치고, 자신은 배신의 설움에 비통해 하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칼을 가슴에 꽂았노라고.

 

일단 이것만으로 우리는 하나의 시신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세 개의 상이한 계열화의 선들을 보게 됩니다. 그 계열화의 선이 달라짐에 따라 사실들은 전혀 다른 사건들이 되고, 시신의 의미, 그 죽음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시신들의 이웃항들, 그 이웃관계에 따라 그것의 의미가 달라지는 거지요.

 

사실과 사건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해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긴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 영화가 이걸로 끝나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나뭇꾼은 자신이 감추고 있었던 또 하나의 목격담을 다시 추가합니다. 그것은 앞의 것들과 전혀 다른 계열화의 선을 따라 사물들을 사건화합니다. 이건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지요.

 

여기서 사물들의 접속, 혹은 계열화를 통해 정의되는 사건의 개념이 접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차이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의미가 어떻게 생성되는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즉 물질성을 갖는 구조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이런 저런 변형을 가해도 변하지 않는 구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웃하는 항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되는 것을 보여주지요. 그렇다고 그것을 주체가 대상에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사물들이 어떻게 계열화되는가에 따라 만들어지고 변하는 것이기에 결코 주관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기계와 진화

인간과 기계가 합체된 사이보그는 생물 진화의 계통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영장류 다음에 오는 인간이라는 가지에서 다시 갈라진 자리? 하지만 기계는 동물ㆍ식물로 분류되기 이전에 갈라져야 하니, 생물/무생물을 가르는 분기점 어딘가에 와야 하는 건 아닐까? 그것도 인간이란 종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혹시 하나의 뿌리에서 하나씩 가지치며 갈라지는 진화의 계통수로는 담아낼 수 없는 변종은 아닐까? 그렇다면 진화의 계통수 전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마치 이런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인형사의 의체를 둘러싼 싸움은 생물들의 발생적 계통을 표시한 진화계통수 앞에서, 혹은 그것 밑에서 벌어지는 사이보그와 전차, 인간과 기계 간의 대결로 귀착된다. 그것의 뿌리를 두고 싸우는 대결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대결이 진화의 계통수 전체를 변형시키고 파괴할 어떤 함축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쿠사나기를 향해 날린 가동회된 기계 전차의 총탄은 쿠사나기가 아니라 오래된(!) 생물들의 화석을, 진화의 계통수를 부순다(두 번째 사진), 그 총탄에 뭉개진 계통수 대신에 우리는 무얼 갖게 될까? 계속해서 갈라지는 가지가 아니라 합쳐지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또 밑둥과 중간 가지, 혹은 끄트머리가 이리저리 이어지는 그물망? 뇌를 구성하는 뉴런들의 그물망, 혹은 중심없이 중첩되며 연결되는 인터넷의 그 물망? 그렇다면 진화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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