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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83. 사찰시의 특징을 깨버린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83. 사찰시의 특징을 깨버린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30.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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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시의 특징을 깨버린 시

 

 

시를 볼 때 당시풍이라느니, 송시풍이라느니 하는 표현들을 쓴다. 그때 두 시풍을 확실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당시풍은 있는 사실을 핍진하게 그려내어 머리로도 그 상황이나 환경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는 반면, 송시풍은 성리학이 발달한 송나라답게 시에도 그저 환경이나 묘사하는 시를 쓰지 않고 철학적인 함의를 담은 시를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송시풍보단 당시풍을 더 좋은 시로 쳤다. 이런 정도로만 나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고 분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풍 내에서도 초당ㆍ성당ㆍ중당ㆍ만당으로 시풍을 나누며 성당풍의 시를 최고로 치는 상황에 이르고 보면 이건 마치 어려운 수학기호를 보듯 난해함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가 되고 만다. 분명히 그 당시에 그걸 공부하고 늘 시를 비교 분석하던 사람들에겐 그런 식의 비교분석이 어렵진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한자는 외래의 문자로 느껴지고 한시는 안드로메다 언어로 느껴지는 때에 이걸 나누라고 한다면 그건 매우 학술적이며 엄청 지엽적인 일이 될 뿐이다. 그러니 한문의 맛을 보고 싶고, 한시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런 자질구레한 것에 매달려 분석하려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칫 깊이 있게 알고자 한다며 당시풍을 건드렸다가는 조금이나마 샘솟던 한문에 대한, 한시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사그라들 것이다.

 

 

 

 

 

山擁招提石逕斜 산이 감싼 사찰로 돌길이 비껴났는데
洞天幽杳閟雲霞 별천지가 그윽하게 구름 속에 숨어 있네.
居僧說我春多事 거처하던 스님이 나에게 말하네. “봄이라 일이 많아요.
門巷朝朝掃落花 아침마다 절문 앞 낙화를 쓸어야 해요.”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번 소화시평권하 83에선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당시풍에 대한 비평이 실려 있다. 임유후의 첫 번째 시는 익히 볼 수 있는 있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노래하고 그걸 머리로 그려볼 수 있는 시다.

 

1구와 2구에선 사찰이 놓인 위치적 특성을 그리고 있다. 산 속에 감싸인 사찰은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대로의 사찰의 모습이니 별 다를 게 없지만 2구에서 묘사된 상황을 보면 마치 속세와 완벽하게 격절된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찰은 구름 속에 감춰져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니 말이다. 그건 이미 사찰시의 특징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이 일반적인 묘사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까지 보면 매우 흔한 사찰시네라는 느낌이 바로 드는 것이다.

 

하지만 3구와 4구에 이르면 이 시의 진가가 여지없이 발휘된다. 그건 바로 스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특이한 전술을 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의 말을 통해 우린 사찰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꽃이 지는 봄이나 낙엽이 지는 가을엔 일이 많다는 걸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지금 전주대는 봄꽃이 활짝 펴서 정문에서 올라가다보면 절로 봄내음이 맡아지고 화려한 시각적인 재미까지 선사해준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꽃이 질 때쯤엔 우리의 아쉬움보다도 청소하시는 분들은 더욱 바빠지게 될 것이다. 꽃이 진 거리의 꽃들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짓이겨져 도로와 인도에 달라붙어 볼품 사나워지니 말이다. 당연히 가만히 놔둬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에 오히려 꽃이 진 순간에 바로 쓸어버리는 것이 낫다. 그러니 청소노동자 분들이 그때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 정문에서부터 각 단과대학 앞길을 쓸어낸다. 잠깐 좋았던 봄이 누군가에겐 무척이나 많은 일거리를 남겨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주대엔 꽃이 진 봄철과 낙엽이 진 가을철에 계속 쓸고 계시는 청소노동자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3구와 4구의 스님의 볼멘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오히려 교수님은 단순히 푸념조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더라. 그건 넌지시 당신은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살고 있을 때 나는 꽃들과 이렇게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 번 말씀해주셨듯이 스님이나 사찰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걸 비난할 의도로, 산속에 있다는 걸 마치 문명에서 멀어져 외롭고 쓸쓸하다는 의도로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말해주셨다. 시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게 꽃을 쓸고 계시는 스님이 부럽다는 뉘앙스이며 그건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는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스님에 대한 부러움을 담고 있다는 뉘앙스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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