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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80. 은자의 세 가지 유형과 고정관념을 넘어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80. 은자의 세 가지 유형과 고정관념을 넘어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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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의 세 가지 유형과 고정관념을 넘어

 

 

偶入城中數月淹 우연히 성중에 들어와 몇 개월을 머물다가
忽驚秋色着山尖 가을빛이 산 정상에 들러붙은 걸 보고 깜짝 놀랐네.
行裝理去孤舟在 떠날 짐 꾸려서 가니 외로운 배 남아 있고,
急影侵來素髮添 빠른 세월이 쳐들어와 흰 머리가 불어났구나.
早謝朝班誰道勇 일찌감치 조정을 떠난 들 누가 용맹하다 말하겠으며
晩饞丘壑不稱廉 느지막이 은거지를 탐한 들 청렴하다 할 이 없구나.
且愁未免天公怪 또한 하느님이 괴이하게 여길까 걱정되니
欲向成都問姓嚴 성도를 향해 가서 엄준한테 물어보려네.

 

소화시평권하 80의 시는 내가 맡은 분량이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게도 전혀 그러질 못했다. 완전히 시적화자가 처한 환경을 다르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걸 시에서 간파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의 제목은 환서(還棲)’이다. 이런 경우 마치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처럼 도성에서 자기 맘에도 맞지 않는 관리의 일을 하다가 벼슬에 환멸을 느끼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내용으로 그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당연히 나도 그런 일반적인 상식만을 간직한 채 이번 시를 해석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식의 상식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고, 그런 고정관념이 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수련(首聯)은 어렵지 않게 해석이 된다. 성중에 들어와 얼떨결에 벼슬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가 마침내 산을 보고서야 어이쿠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라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는 말이다. 신최의 이런 마음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말이긴 하다. 공부를 한다는 건 세상에 대한 관심은 끊고 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고단한 일이다. 그러니 봄이 와서 온 꽃이 만개했음에도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고, 가을이 와서 단풍이 들었음에도 그걸 감상할 여유도 없다. 그렇게 책속으로 빠져들던 그때 갑작스레 봄꽃이 눈에 들어오고, 가을 단풍이 피부에 스며들면 그제야 어이쿠야 어느새 봄이 왔구나’, ‘아니 벌써 가을인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신최도 어떤 일에 치여 사느라 계절의 변화도 신경쓰질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함련(頷聯)엔 그렇게 시간의 변화를 눈치 챈 신최가 취한 행동을 볼 수 있다. 성중에서 몇 개월 머물렀으니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러니 떠날 짐을 챙겨서 가보니 자신이 타고 갈 배가 나루터에 남아 있고 그 몇 개월 사이에 세월은 그대로 날 비껴가지 않아 흰 머리가 불어났다는 한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자연히 연상된다. 도성에서 머물던 몇 개월에 대해 좋은 감정보단 안 좋은 감정으로 그리고 있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머리마저도 쇠게 만들 만큼 고민의 시간이었고 가을이 온 줄도 모르게 한 정신없는 시간이었던 게다. 그러니 훌훌 털고 나가는 이 순간은 그래도 홀가분한 순간이지 않을까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시의 진가는 바로 경련과 미련에 있다. 그리고 그건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일반적인 상식으로 해석할 경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귀거래사류를 생각하며 해석할 경우 경련(頸聯)이 곧바로 걸린다. 이런 경우 조정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도연명이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절할 수 없다던 장면이 떠오르며 용맹한 행위가 되며 은거지를 탐하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청렴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에선 반대의 의견을 피력한다. 조정을 떠난 들 용맹한 행위가 아니며 은거지를 탐한다 해도 누구 하나 청렴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련을 통해 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이유는 미련에서 나온다. 그리고 내가 놓친 부분도 바로 미련에 있었다. 이곳에선 엄준이란 사람이 인용되어 나오고 바로 엄준을 이해하는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키포인트였던 셈이다. 내가 준비할 땐 엄준을 그렇게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그저 은둔자의 한 명 정도로만 치부하며 하느님이 왜 괴이하게 여기냐면 몸은 도성을 떠난다고 하지만 맘은 도성 안에 있으려 하고 벼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에 하느님은 그런 신최의 이율배반적인 마음을 알고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신최는 엄준에 대해 물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한다정도로 해석하고 있었다. , 나는 이 장면을 신최의 몸은 떠나려 하지만 맘은 벼슬에 머물러 있는 이율배반에 대한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엄준은 촉()의 수도인 성도(成都)에 머물며 도성 안에 은둔한 사람이었다. 그곳에 점집을 열고 연명했지만 하루에 100전만 벌면 일은 하지 않은 채 저술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만 봐도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은둔자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교수님은 은둔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해줬다.

 

小隱 中隱 大隱
山水隱 吏隱 盛市隱

 

이런 유형법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은둔은 소은(小隱)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관념에 따라 이번 시를 해석했다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신최가 말하는 은둔은 대은(大隱)에 속하는 은둔이었던 거다. 그는 지금 지방의 성중에서 몇 개월 머물다가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러니 엄준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일반적인 은둔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녔기 때문이고 엄준처럼 한양에 집이 있어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발표를 맡아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는데 완전히 포인트를 놓쳤으니 부끄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시의 짧은 문장도 얼마나 여러 생각을 하며 봐야 하는 줄 알게 됐으니 꼭 나쁘지만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에 대해 홍만종은 마땅히 소동파의 걸음을 물리게 한다[當使蘇長公却步].’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 시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소동파의 시보다 뛰어나다는 평이 되는데, 단순히 그것만 있진 않고 소동파도 이미 천공(天公)’이나 출처(出處)’에 대한 시를 지었을 것이고 그런 같은 류들을 시를 비교해보더라도 신최의 시가 낫다는 평이라고 했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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