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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름 새기는 사람의 심리를 비판한 한시(소화시평 하권83)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이름 새기는 사람의 심리를 비판한 한시(소화시평 하권83)

건방진방랑자 2021. 10.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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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새기는 사람의 심리를 비판한 한시

 

 

鏟石題名姓 山僧笑不休 돌 깎아 성명을 써놨더니 산 스님이 웃음을 그치질 않네.
乾坤一泡幻 能得幾時留 천지도 하나의 물거품이거늘 얼마나 그 이름 남길 수 있겠소.

 

임유후의 두 번째 시도 전혀 어렵지 않다. 그건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사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게 어느 유적지에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는 기사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종족번식을 통해 자신의 증표를 남기려고도 하며, 그도 아니라면 의미 있는 것(문학작품,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품들)을 남기려고도 하고, 그도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남기려 하니 말이다. 남산타워나 유명한 여행지에 무수히 채워진 자물쇠들에서 우린 이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 밑바닥엔 나는 언젠가 죽겠지만 그래도 이건 남아있겠지라는 심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시의 1구엔 바로 그와 같은 욕망이 아주 잘 담겨 있다.

 

그런데 2구에서 바로 스님의 비웃음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걸 강조하려는 듯 스님의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고 쐐기를 박는다. 왜 웃는지는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하긴 지금도 여러 유적지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한 맘이 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좋게 말하면 삶에 대한 집착이라 볼 수 있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임을 당연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써봐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그게 사라졌다 해서 관심 갖는 사람조차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그런 마음에 따라 3구와 4구에서 부질없는 일이라 말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를 보며 확실히 알게 된 건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세상도 변해왔고 사회체제도 변해왔지만 그럼에도 그 밑바닥에 흐르는 기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한다는 그 밑바닥의 마음 말이다.

 

 

 

 

그런데 홍만종은 이번 글에서 윗 시를 보고 중당(中唐)의 소리가 섞여 있기에 한참 급이 떨어진다던 임숙영의 비평을 인용하며 아래 시를 인용하고 있다. 그건 윗 시 하나만 봐선 중당으로 격이 떨어지는 시로 판정할 수 있지만 아래의 시까지 함께 보고 나면 그런 말을 쏙 들어갈 걸하는 생각이 들어있다. 그건 비록 중당의 격조가 들어있을지라도 그런 시를 이렇게 두 편이나 지어낼 정도의 작가적 재능이라면 함부로 깎아내려선 안 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건 인위적인 조탁이나 수식을 가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시를 쓸 수 있던 작가에 대한 인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볼 때 윗 시는 당시풍의 격조가 그대로 묻어나 읽는 것만으로도 그 당시의 분위기가 저절로 그려지는 시이고, 아래의 시는 마치 송시풍적인 철리(哲理)가 담긴 시이다. 권하 81에서 선친 홍주세의 철리적인 시를 들며 감탄해마지 않았듯이 아래 시에서는 그런 풍조가 물씬 느껴진다. 홍만종이 이런 깨달음이 있는 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조금이나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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