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장
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제112장
1예수께서 가라사대, “부끄러울지어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여! 2부끄러울지어다. 육체에 매달린 영혼이여!”
1Jesus said, “Shame on the flesh that depends on the soul. 2Shame on the soul that depends on the flesh.”
이 로기온은 외면적으로 보면 87장과 중복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본장은 87장보다 훨씬 더 명료한 문제의식을 전하고 있다. 도마에서 로기온의 중복은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해석의 차원을 고양시키는 그런 효과가 있다. 29장과도 간접적으로 관계되고 있다.
나는 ‘의존하다’를 ‘매달리다’로 번역하였다. 의존성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다. 보통 육체의 구원이 영혼에 있다고 보는 2원론적 사고는 매우 저차원적인 사유에 속한다. 물론 영혼의 구원이 육체에 있다고 보는 사람도 똑같은 오류를 범한다. 세속적인 육욕 속에 영혼의 가치를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덧없는 것이다. 여기 ‘영혼에 매달리는 육체’나 ‘육체에 매달리는 영혼’은 모두 도약의 계기가 없이 의존적 관계에 매달려 있는, 초라한 타성의 쳇바퀴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들이다. 육체는 영혼으로 다 환원될 수 없으며, 영혼은 육체로 다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독자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또 여기 거부되고 있는 것은 실체론적 사고와 환원주의(reductionism)적 사고이다. 궁극적으로 영혼과 육체는 서로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인 관계를 통하여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며 일자가 타자에게로 환원ㆍ흡수될 수 없는 것이다. 유심론의 마음도 부끄러운 것이며, 유물론의 물질도 부끄러운 것이다. 영혼과 육체는 서로가 서로를 현현시키며 궁극적으로 함께 구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즉 영혼과 육체가 분화되기 이전의 ‘하나된 자’로서 우리는 회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박(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구인들에게는 본 로기온 속의 예수의 사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영혼과 육체의 독립성만을 이야기한다면 본 장의 궁극적 함의를 협애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지역을 여행하면서 나의 가슴속에 가장 짙은 잔상을 남긴 유적이, 너무도 처절하게 파괴된 달의 신전(Temple of Sin)이었다. 5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신전은 하란 황토의 모든 풍진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 신전을 바라보았을 때 나의 가슴속에는 이글거리는 태양빛 정적의 골을 타고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639년에 무슬림(칼리프 오마르 시대) 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모스크로 변모시켰다. 그 후 우마야드 왕조 마지막 칼리프 마르완 2세(Marwan II)가 대모스크 울루 까미(Ulu Cami)로서 증축하였다. 아나톨리아 최초의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었다고 한다. 정교한 포도송이 기둥은 본래 달의 신전의 모습을 상상케 하는 아름다운 유물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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