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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국 - 분성증별(盆城贈別)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김안국 - 분성증별(盆城贈別)

건방진방랑자 2019. 5. 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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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분성에서 이별하며 주다

분성증별(盆城贈別)

 

김안국(金安國)

 

 

燕子樓前燕子飛 落花無數惹人衣

東風一種相離恨 腸斷春歸客又歸 慕齋先生集卷之一

 

 

 

 

해석

燕子樓前燕子飛
연자루전연자비
연자루 앞에 제비 날고
落花無數惹人衣
락화무수야인의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에 사람옷엥 엉기네.
東風一種相離恨
동풍일종상리한
봄바람이 일제히 서로 이별하는 한을 심으니
腸斷春歸客又歸
장단춘귀객우귀
애끊네. 봄이 돌아가니 손님 또한 돌아가네. 慕齋先生集卷之一

 

 

해설

이 시는 1511년 일본 사신 붕중(弸仲)을 전송하려고 김해에 들렀을 때 분성에서 이별하면서 지은 시이다.

 

김해 도호부 호계 위에 있는 연자루 앞에 제비가 날고, 지는 꽃은 무수하여 사람의 옷에 달라붙었다(연자루 주변 봄에 대한 경치를 노래한 寫景 부분). 봄바람은 언제나 서로 이별에서 오는 한을 돋우니, 애달프게도 봄이 가고 객도 또한 돌아가 이별을 하게 되었다(이별의 정을 노래한 寫情 부분).

 

정조(正祖)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김안국이 문()에 뛰어났으며 후진 양성에 매진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은 타고난 성품이 뛰어났고 평소에 수양을 쌓아 기묘제현(己卯諸賢)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나라를 위하여 성의를 다하고 관직을 맡아서는 직분을 다하였으니, 비록 옛날의 현자 중에서 구하더라도 이런 사람은 많이 얻기가 쉽지 않다. 그가 태학사(太學士)로 있을 때 사대(事大)와 교린(交憐)의 응제문자(應製文字)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는데, 매번 초고를 지을 때마다 문을 닫고 손님을 거절하고서 며칠을 읊조려서 한 자도 구차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글은 전아하고 명쾌하여 중국에서까지 칭송하였다. 그러나 박학한 문장에 비해 수약(守約) 공부가 조금 미진하였기 때문에 후세의 의논이 정암(靜菴)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였으나, 후학을 육성하여 사도(師道)를 담당함으로써 한때의 사류들이 모두 그의 훈도를 입었으니, 이 점에 있어서는 정암이 도리어 양보함이 있는 것이다. 그의 아우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역시 사우(師友)의 연원(淵源)이 있어 학문이 높은 경지에 올랐고, 문장이 여유 있고 민첩하여 시도 붓을 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완성하였다. 문집은 비록 한 권이지만 볼만한 것이 많다[金慕齋資性過人 充養有素 爲己卯諸賢之領袖 爲國竭誠 當官盡職 雖求之古賢 不易多得 其爲太學士時 事大交隣應製文字 皆出其手 每出草時 閉戶謝客 吟哦屢日 一字不苟 故其文典雅明快 見稱於中國 第其博學文章 差欠守約工夫 故後來之論 雖以爲不及靜菴 而其成均敎胄 以師道爲任 一時士類 咸被其陶甄之功 此則靜菴反有讓焉 其弟思齋亦有師友淵源 學問超詣 文章贍敏 詩亦操紙筆立就 文集雖一卷 亦多可觀].”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201~202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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