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즉시 적다
도중즉사(途中卽事)
김안국(金安國)
天涯遊子惜年華 千里思歸未到家
一路東風春不管 野桃無主自開花 『慕齋先生集』 卷之一
해석
天涯遊子惜年華 천애유자석년화 |
하늘 끝 돌아다니니 흘러가는 시간[年華]이 아쉬워 |
千里思歸未到家 천리사귀미도가 |
천 리의 돌아갈 생각하지만 집엔 돌아가지 못하네. |
一路東風春不管 일로동풍춘불관 |
온 길에서 봄바람을 봄이 관여치 않지만 |
野桃無主自開花 야도무주자개화 |
들의 복사나무 주인 없는데 절로 꽃을 피웠네. 『慕齋先生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1506년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의주에 갔다가 도중에 지은 것으로, 봄이지만 타향에 있어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신세를 노래하고 있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려고 하늘 끝인 의주에 있는 자신은 가는 세월이 너무 아쉬운데, 천 리 멀리 있는 타향에서 돌아가길 생각만 할 뿐 실제로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모든 길에 봄바람을 봄이 맡고 있지 않지만, 들 복숭아꽃은 주인도 없이 절로 꽃을 피웠다.
김안국은 권별(權鼈)의 『해동잡록』에 의하면,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국경(國卿)이요 호는 모재(慕齋)다. 젊어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에게 배웠고, 연산 계해년에 문과에 둘째로 급제하였으며, 중종 기묘년에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 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19년이나 지내다가 정유년에 권세를 잡은 간신들이 처벌되자(金安老를 말하는 것이다) 드디어 조정으로 들어와 문형(文衡)을 맡아 벼슬이 찬성(贊成)에 이르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유자(儒者)의 사범(師範)이 되었다. 지금의 학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된 것은 모두 선생의 힘이며, 문집이 있어 세상에 나돈다.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義城人 字國卿 號慕齋 少學于寒暄堂 燕山癸亥 擢科登二人 我中廟己卯 拜右參贊 及禍作 罷歸田里 凡十九年 丁酉權奸伏誅(謂金安老也) 遂還朝典文衡 官至贊成 硏窮性理之學 爲儒者師範 至今學者知所趨向 皆先生之力也 有集行于世 謚文敬].”라 하여, 성리학의 사범(師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행장(行狀)」에는 효(孝)와 표문(表文)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재(記載)되어 있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므로 종신토록 슬퍼하고 사모하였다. 정성을 다하여 죽을 때까지 섬기고,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고하였으며, 초하루 보름에는 반드시 제사 지내고 조금이라도 의례(儀禮)에 어긋나면 종일토록 언짢아하였다. 사당 옆에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거처하며 음식 먹을 때에는 반드시 부모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모재(慕齋)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사신으로 명나라 서울에 가서 성리학에 관한 책을 많이 사 가지고 왔으며 또 고금의 표선(表選)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대국을 섬겨 표전을 중히 여겼으나, 유생들이 그것을 배우기에 힘쓰지 아니하여 표전(表牋)의 문장을 대할 때마다 매우 군색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표선도 아울러 사왔다.’ 하였다[早喪父母 終身哀慕 盡誠事死 出入必告 朔望必祭 小不如儀 終日不樂 構小齋於祠堂之側 居處飮食必慕父母 因以慕名之 奉使朝京 多購性理諸書 又及古今表選 曰我國事大表牋爲重 而儒生不務學 每當文至多窘 故表選幷購矣].”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99~20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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