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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 이루 상 - 18. 자식을 바꿔서 가르친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 이루 상 - 18. 자식을 바꿔서 가르친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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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자식을 바꿔서 가르친다

 

 

公孫丑: “君子之不敎子, 何也?”

不親敎也.

 

孟子: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

, 傷也.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 則惡矣.

敎子者, 本爲愛其子也, 繼之以怒, 則反傷其子矣. 父旣傷其子, 子之心又責其父曰: ‘夫子敎我以正道, 而夫子之身未必自行正道.” 則是子又傷其父也.

 

古者易子而敎之.

易子而敎, 所以全父子之恩, 而亦不失其爲敎.

 

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責善, 朋友之道也.

氏曰: “父有爭子, 何也? 所謂, 非責善也. 當不義則爭之而已矣. 父之於子也如何? , 當不義, 則亦戒之而已矣.”

 

 

 

 

해석

公孫丑: “君子之不敎子, 何也?”

공손추가 군자가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건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여쭈었다.

不親敎也.

친히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孟子: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형세가 행해질 수 없다. 가르친다는 행위는 반드시 바름으로 하는 것이니, 바름으로 행하지 않으면 화나게 하며, 화나게 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하다.

, 傷也.

()는 상한다는 것이다.

 

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 則惡矣.

자식이 아버지께서 나를 가르침에 바름으로 하시지만 아버지의 행실은 바름에서 나오지 않았다.’라고 생각한다면, 부자간에 서로의 의가 상한 것이니, 부자간에 서로 의를 상하면 최악의 상황이다.

敎子者, 本爲愛其子也,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본래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지만

 

繼之以怒, 則反傷其子矣.

화나게 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父旣傷其子, 子之心又責其父曰:

아버지가 이미 그 자식을 화나게 하면 자식의 마음에 또한 그 아버지를 책망하며

 

夫子敎我以正道,

아버지께서 나를 가르치실 때 바른 도로 하시지만

 

而夫子之身未必自行正道.”

아버지의 몸은 반드시 스스로 바른 도를 행하진 않는다.’라고 생각하니,

 

則是子又傷其父也.

이것은 자식이 또한 그 아버지를 속상해하는 것이다.

 

古者易子而敎之.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다.

易子而敎, 所以全父子之恩,

역자이교(易子而敎)는 부자간의 은혜를 온전히 하고

 

而亦不失其爲敎.

또한 가르치려는 것을 잃지 않는 것이다.

 

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부자간에는 선하라고 꾸짖지 않으니 선하라고 꾸짖으면 떠나고, 떠나면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게 없다.

責善, 朋友之道也.

책선(責善)은 친구의 도리다.

 

氏曰: “父有爭子, 何也?

왕면(王勉)이 말했다. “아버지에게 간하는 자식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所謂, 非責善也.

이른바 간쟁이라는 것은 책선은 아니다.

 

當不義則爭之而已矣.

불의함에 당하여 간언한 것뿐이다.

 

父之於子也如何?

아버지가 자식에 대하여 어찌해야 하나?

 

, 當不義, 則亦戒之而已矣.”

불의함에 당하면 또한 그것을 경계할 뿐이다.”

 

 

인용

목차 / 전문 / 역주

삼천지교 / 생애 / 孟子題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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