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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맹자 생애와 제나라에서의 행적 본문

고전/맹자

맹자 - 맹자 생애와 제나라에서의 행적

건방진방랑자 2021. 10. 1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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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생애와 제나라에서의 행적

 

 

맹자 생애

 

BC 372 ()에서 태어남.
BC 358 (15) ()에서 배움.
BC 332 (41) 추목공(鄒穆公)을 만남.
BC 331 (42) 노나라 평륙(平陸)에서 머묾.
BC 330 (43) ()에서 ()에 감.
BC 329 (44) 노나라 평륙(平陸)에서 제() 서울로 감.
BC 328 (45) ()에서 빈사(賓師)가 됨.
BC 326 (47) ()에서 송()으로 감.
BC 325 (48) ()에서 추()로 돌아옴.
BC 324 (49) ()에서 등()으로 감.
BC 322 (51) ()을 떠나 추()로 돌아옴.
BC 320 (53) 양혜왕(梁惠王)의 초빙을 받아 ()로 감.
BC 319 (54) 양혜왕이 죽자, ()로 감.
BC 318 (55) ()에서 경()이 됨.
BC 317 (56) 모친의 상을 당하여 제()에서 노()로 돌아와 장례함.
BC 315 (58) ()로 감.
BC 314 (59) ()()을 정벌하자, ()를 떠나 송()으로 감.
BC 313 (60) 송경(宋牼)을 석구(石丘)에서 만나 인의로 진()ㆍ초()의 왕을 설득할 것을 권함.
BC 312 (61) ()로 감.
BC 311 (62) ()에서 노()로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초()로 돌아옴.
BC 289 (84) 115일에 세상을 떠남.

 

 

 

 

제나라에서의 맹자 행적 정리

 

1 직하학파(稷下學派)를 열어 제나라를 부흥시키고 마릉전투양혜왕(梁惠王)에게 치욕을 안겨준 제위왕(齊威王)을 이어 제선왕이 즉위하였다.
2 즉위 1년 차에 맹자를 초빙하여 직하학파를 더 양성할 포부를 지니고 있었고 이 때 흔종(釁鍾)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왕도정치에 대한 포부를 긴 시간 동안 얘기했다. (양혜왕 상 7)
3 제나라가 연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맹자는 처음에는 연나라의 내부사정이 하도 더티하여 도덕성을 결하고 있으므로 연나라 정벌을 찬동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공손추 하 8)
4 막상 연나라 정벌이 단순한 제나라의 탐욕으로 변질되자 맹자는 재빨리 연나라의 질서를 회복해주고 빨리 군대를 철수할 것을 종용한다.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지만 제선왕(齊宣王)은 무리하게 연나라를 점령한 상태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끌었다. (양혜왕 하 10)
5 결국 국제여론이 악화되고 제후국들이 합심하여 연나라를 도왔으며 무엇보다도 연나라 인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제나라는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자 제선왕은 맹자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면서 맹자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진가(陳賈)가 맹자를 찾아뵌다. (양혜왕 하 11)
6 맹자는 자신의 과오를 근원적으로 뉘우치지 않고 변명하려는 제선왕의 태도를 비난한다. 일식ㆍ월식과도 같은 공개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두 사람의 사이가 서먹서먹해진 것은 사실이다. (공손추 하 9)
7 그러던 어느 날 맹자는 제선왕(齊宣王)과 다시 화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정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이때 마침 공교롭게도 제선왕으로부터 사자가 와서 맹자 보고 좀 조정으로 나와줄 수 있겠냐고 전갈이 온다. 자신이 감기가 걸려 외출이 힘들다는 것이다. 맹자는 제선왕이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도 병에 걸려 못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다음날 맹자는 외출한다. 그런데 제선왕이 정중하게 의사를 보낸다. 이 사건으로 맹자는 집으로도 못 가고 대신 경자의 집에서 묵는다. (공손추 하 2)
8 사실 제선왕은 진실로 아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는 제선왕이 자기를 더 이상 소불소지신(所不召之臣)’으로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환갑도 넘었다. 인생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결국 큰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떠나자!
9 맹자가 제선왕을 버리고 제나라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제선왕이 맹자의 집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옛 정을 다짐한다. 이에 맹자는 그 유명한 불감청이 고소원야(不敢請耳固所願也)”라는 말을 한다. (공손추 하 10)
10 제선왕은 제나라 수도 임치의 한 중앙 복판에 맹자학교를 세우고 전 국민이 맹자를 존숭케 하겠다는 야심찬 새로운 대안을 발표한다. (공손추 하 10)
11 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단(龍斷)’의 천장부(賤丈夫) 애기를 하고 더 이상 천장부 노릇하기 싫다고 하면서 제나라를 떠날 결심을 굳힌다. (공손추 하 10)
12 맹자는 제나라를 바로 떠나지 않고 주읍에 머물며 제선왕이 잘못을 고쳐 자신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하길 바랐으나, 고치지 않자 3일째 되는 날에 완전히 제나라를 떠났다. (공손추 하 12)
13 이로써 7년간의 제나라에서 체류가 끝났다.

-맹자 사람의 길294~295

 

 

 

인용

목차

삼천지교

맹자생애

공자를 사숙한 맹자

맹자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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