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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3. 사이에서 웃어재끼다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3. 사이에서 웃어재끼다

건방진방랑자 2025. 4. 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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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이에서 웃어재끼다

 

 

연암은 경화사족(京華士族, 노론)으로 출세가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남인(南人)의 신분으로 출세가 제한되었던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는 달랐다. 미래가 보장된 신분이었기에 벼슬을 하며 호위호식하며 살 수도 있었는데 그는 벼슬을 하려 하지않았다. 물론 말년에 한직에 가까운 벼슬(안의현감, 면천군수 )을 맡긴 했지만, 어떻게든 벼슬을 하지 않으려 피해 다녔다. ‘하려 하지 않다는 말이 취포(취직 포기) 세대들이 듣기엔 이상한 말일 테지만, 그는 정말 그렇게 행동했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은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인가? 분명 지금과는 다른 시대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조선시대라 해서 벼슬을 의도적으로 피해 다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때도 가문의 명예와 같은 족쇄도 있고, ‘입신양명(立身揚名)’과 같은 개인적인 명예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기이한 행동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다.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아마도 과문(科文, 과거시험의 문장체)의 획일성과 당쟁(黨爭)에 얼룩진 벼슬길의 풍파에 시달리기 싫어서 벼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특히 합격을 위한 시험은 사람을 틀에 갇히게 만든다. 정형화된 것만을 하게 되니 말이다.  

 

 

추억과 현실 사이

 

과문이란 전고(典故, 고사가 있는 문장)를 사용하여 서술하기에 누가 쓰더라도 같은 글이 쓰여 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논문과 같은 문장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는 그런 획일성을 거부하며 사람이 감정이 팔팔 살아 넘치는 개성 넘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정조(正祖, 조선 22대 왕. 재위 기간 1777~1800)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켜 문체를 어지럽힌 대표 작품으로 열하일기지목하며 근일 문풍이 이 모양으로 된 것은 박모(연암 박지원)의 죄다. 속히 일부 순정지서(純正之書)를 지어 올려 속죄하라고 할 정도였으며, 그의 문체를 가르켜 연암체(燕巖體)’라고 정의할 정도였다. 내가 쓴 책이 반향을 일으켜 대통령이 직접 한국의 문화적 흐름을 더럽히는 책으로 매우 나쁜 책입니다라고 말하고, 그걸 직접 건빵체라고 명명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정도로 대통령이 직접 소란을 만들 정도면 그 책이 끼친 파장은 엄청 났다는 것이며, 그게 하나의 팬덤을 형성할 정도여야 한다.

 

그런 획일적인 글을 반대하였기에, 묘지명의 획일성(죽은 이의 인생을 논하고 업적을 길게 서술함)을 벗어난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을 쓸 수 있었다. 누이가 시집가던 당시의 아련한 풍정과 누이의 상여가 떠나는 장면을 오버랩시키며 감정을 고양시키는 부분은 백미 중 백미(白眉)이며 이전의 어떤 묘지명에서도 볼 수 없는 명문장이다. 그 장면을 함께 보기로 하자.

 

 

! 누이 시집가려 새벽에 화장할 때가 마치 어제 같다. 나는 겨우 8살로 교태부리며 누워서 발 장난치면서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듯 했었다. 누이는 부끄러워하며 얼레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맞췄기에 나는 성질을 내며 울면서 먹으로 분을 섞고 침을 거울에 뱉어 더럽혔었다. 그러자 누이는 옥으로 된 기러기와 금으로 된 나비 노리개를 꺼내 나에게 주며 울음을 그치게 했으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일이로구나.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效婿語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말을 강가에 세워두니 아득히 붉은 명정(銘旌)이 나부끼는 게 보이고 돛대 그림자 구불구불 흘러가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강가의 먼 산은 검푸른 빛깔이 눈썹 먹 같고, 강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눈썹 같기만 하다. 울며 얼레빗을 떨어뜨릴 때를 생각하니 유독 어릴 때의 일이 하나하나 기억났고 또한 즐거움과 기쁜 일이 많아 세월이 더디 갈 것만 같더니, 중간부턴 늘 근심과 우환과 빈곤이 있어 아득히 마치 꿈인 것만 같다.

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檣影逶迤, 至岸轉樹隱不可復見.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江光如鏡, 曉月如眉. 泣念墮梳, 獨幼時事歷歷, 又多歡樂, 歲月長, 中間常苦離患憂貧困, 忽忽如夢中.

 

 

누이가 시집가던 날 장난치던 8살의 어린 아이는 이제 36살이 되어 누이의 떠나가는 상여를 지켜보며 서글픈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칠정(七情)의 팔팔 끓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글이다. 그런데 그걸 단순히 감정을 표출하는 선상에서 벗어나 추억과 현실 사이에서 담백하게 스케치를 하고 있으니 아련한 감정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담백하기에 오히려 격정적인 뭇 글보다 더 감정을 휘몰아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연암은 획일화를 거부한 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연암이 벼슬살이를 거부한 이유는 더욱 명확해지며, 그가 추구하는 길은 현실적인 제약을 뛰어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매우 개인적인 추억을 섞어 풀어내는 묘지명이라니. 

 

 

 

전고와 새로움 사이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치밀한 논리에 탄성이 절로 난다. 어떤 글이든 그렇지만 유독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에 이르러선 연암의 논리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곽처럼 단단하게 느껴지곤 한다. 글을 배치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전쟁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밀한 문학관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관은 합하여 변하는 기미와 제압하여 이기는 저울[合變之機, 制勝之權]’로 나타난다. 그건 곧 옛 것을 따르되 변화할 줄을 알고 새로이 만들되 전거에 따른다[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의 논리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자기의 새로운 생각을 드러내되 그 뿌리는 과거 전적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당시에 유행하던 과문과 획일적인 전고 위주의 글을 비판하되,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무맥락적으로 늘어놓는 글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여기서 중시하는 것은 전고를 사용하든, 고전 문구를 쓰든 거기에 나의 생각을 얼마나 잘 담느냐 하는 저울질[]에 있는 것이다. 적당한 절충으로 어중간한 입장을 주장한 것이 아닌, 이것과 저것을 벗어난 제3의 길을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이야말로 얼마나 치밀한 자기 성찰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속에서 나오는 것인 줄을 알 수 있다.

 

 

그의 글들은 길에서 쓰여졌다. 그렇기에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흘러가는 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자기 성찰의 기본 요소, 호기심

 

자기 성찰과 비판의식의 기본은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야말로 자신과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봤을 때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열하일기라는 책을 보면 연암이 말 위에서 자느라 낙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 양반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연암은 하인인 장대를 혼내며 다음엔 꼭 깨워라[雖値眠値食 必爲提告]”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겐 양반의 체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호기심이 동할 땐 체면이고 나발이고 그 호기심을 풀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호기심은 상기(象記)라는 문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코끼리를 보며 동해에서 코끼리 무리를 봤던 이야기와 함께 코끼리를 통해 철학적인 사유까지 감행하니 말이다. 아무 호기심 없이 맹목적으로 코끼리를 보며, 단지 코가 길군!’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그의 호기심은 그를 기존 노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호기심은 유머와 만나 더욱 빛난다

 

그의 호기심은 유머를 타고 더욱 빛을 발한다. 흔히 조선 시대 학자라고 하면 성리학의 형이상학에 빠진 무능한 철학자, 무뚝뚝한 인간형으로 보기 쉽다. 나 또한 예전엔 그런 편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걷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연암에겐 그런 편견이 가당치 않다. 일례로 옥전현의 한 점포에서 벽에 걸려 있는 글이 재밌어서 보고 그 글을 베끼기 시작한다. 그 글이 바로 유명한 호질(虎叱)이다. 그러자 그 점포의 주인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 연암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한바탕 웃게 하려는 것입니다. 읽고 나면 밥이 벌처럼 날아가고, 튼튼한 갓끈도 썩은 새끼처럼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歸令國人一讀, 當捧腹軒渠, 嗢噱絶倒,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정말이지 포복절도할 일이다. 무뚝뚝함의 화신이라 생각했던 선비가 동료들을 웃게 하려고 글을 베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도 나온다.

 

 

우사단 아래 도저동에 푸른 기와를 얹은 사당에는 얼굴이 윤나고 붉고 수염이 달린 의젓한 관우 운장의 소상이 있다.

백성이 학질을 앓게 되면 그 좌상 아래에 들여놓는데, 정신이 나가고 넋이 빼앗겨 한기를 몰아내는 빌미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꼬맹이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위엄스러운 소상을 모독하는데, 눈동자를 후벼 파도 꿈벅거리지 않고, 콧구멍을 쑤셔대도 재채기 하지 않으니,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빚은 소상일 뿐이다.

雩祀壇之下, 桃渚之衕, 靑甍而廟, 貌之渥丹而鬚, 儼然關公也.

士女患瘧, 納其床下, 𢥠神褫魄, 遁寒祟也. 孺子不嚴, 瀆冒威尊, 爬瞳不瞬, 觸鼻不啑, 塊然泥塑也.

 

 

관운장 소상(塑像)을 보면서 어른들은 그를 신성시하기에 벌벌 떨지만, 아이들에겐 거대한 인형일 뿐이기에 다가가 코를 쑤시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예를 끄집어내어, 글을 읽는 사람을 한바탕 웃게 만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어떤 일이든 관념을 덧씌워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하며, 옛것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연암은 유머에 능했으며, 완곡한 유머 속에 깊이 있는 사유를 담을 줄 알던 대학자였다.

 

 

관우 소상은 인형일 뿐이지만 관념이 덧씌워진 어름에겐 절대자로 느껴져 벌벌 떨게 만든다. 

 

 

인용

만남 / 지도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2. 작품 탄생에 관한 두 가지 관점

3. 사이에서 웃어재끼다

4. 좋은 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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