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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3.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3.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건방진방랑자 2019. 6. 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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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주제로 세 번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왜 연암의 글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 연암의 글은 살펴보지는 않고 뜬금없이 작품 탄생론으로 들어가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법하지만, 실상 어떤 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고민해본 만큼 작품의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에 짚고 가야 한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또는 철학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선 단순화하여 두 가지 관점의 차이만 살펴보고 그 관점에 따라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연암의 작품을 들여다 보려면 작품이란 어떻게 지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작품이나 철학은 어떤 계기로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 예로부터 이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고도 핫한 주제여서 다양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두 가지의 관점만을 살펴보려 한다. 작가의 특별한 재능으로 파악하는 것이 그 하나의 관점이고, 여러 상황을 겪어 내며 그 상황과의 마주침이 작품으로 우러난다고 파악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이다.

작가의 특별한 재능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관점은 운명론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선천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상황과 상관없이 그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이상李箱(1910~37)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시를 보며 그를 천재라 생각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모나리자최후의 만찬을 보며 그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판단할 때는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작가의 자질만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이건 곧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피에타라는 작품을 만들고 난 뒤에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이라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부분만 제거하면 작품이 되듯, 그들 또한 살아갔을 뿐인데 작품이 완성된 것이니 말이다. 재능의 관점으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의 우수성은 부각될지 모르지만, 실상 작품의 메시지는 건너뛸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십자가 형벌로 죽은 예수를 온 몸으로 받아 안은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피에타]. 숭고미와 함께 모성애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여러 웅성거림이 작품을 짓도록 한다

 

이에 반해 상황이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관점은 누구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상황과 작가의 어우러짐이 결국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게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어떤 상황과 공명하느냐에 따라 그게 문학작품으로, 예술작품으로, 철학으로 발현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그렇다면 왜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은 특정 개인에게서만 나오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맞다, 누구에게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은 또 다른 조건과 결부되어 있으니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씨앗의 비유[각주:1](마태오 13:3~8)처럼 씨앗이 꽃을 피우려면 일정 조건이 필요하듯, 창작의 가능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작품이 만들어지는 최소한의 조건이란 무얼까? 단순히 생각해 보면 모든 상념과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후에야 생각을 정밀히 할 수 있고 그걸 표현할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노예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완벽한 무료함에 젖어 인생을 관조하다보면 뭔가 의미 있는 깨달음에 이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상 그런 사유들은 현실에 발 딛지 않은 사변이기에 생각의 폭은 확장했을지언정, 실상 현실을 바꾸는 데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높이 나는 새도 먹이를 먹을 때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듯, 문학이나 철학도 고고한 생각을 현실과 공명하는 속에서 다듬어야 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조건은 삶과 이상이 어긋나고 삐걱거려 더 이상 내가 쌓아온 기반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순간이 적기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지금껏 지녀왔던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에, 전혀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정형화되지 않은 언어를 쏟아낼 수 있다. 상황의 관점으로 작품을 보면 작품만의 가치는 경시될 수 있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금오신화]는 몽유계 소설의 효시이지만, 과연 이런 작품들이 작가의 천재성에 의해 갑자기 나온 것일까?

 

 

 

인용

목차

만남

 

  1. 3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4절: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절: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 났지만, / 6절: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 7절: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 8절: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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