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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2.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연암 박지원을 만나다 - 2.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건방진방랑자 2025. 4. 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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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연암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주제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왜 연암의 글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 연암의 글은 살펴보지는 않고 뜬금없이 작품 탄생론으로 들어가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법하지만, 실상 어떤 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고민해본 만큼 작품의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에 짚고 가야 한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또는 철학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선 단순화하여 두 가지 관점의 차이만 살펴보고 그 관점에 따라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연암의 작품을 들여다 보려면 작품이란 어떻게 지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작품이나 철학은 어떤 계기로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 예로부터 이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고도 핫한 주제여서 다양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두 가지의 관점만을 살펴보려 한다. 작가의 특별한 재능으로 파악하는 것이 그 하나의 관점이고, 여러 상황을 겪으며 그 상황과의 마주침이 작품으로 우러난다고 파악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이다.

 

작가의 특별한 재능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관점은 운명론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선천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에 상황과 상관없이 그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이상(李箱, 1910~37)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시를 보며 그를 천재라 생각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모나리자최후의 만찬을 보며 그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판단할 때는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로지 작가의 자질만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이건 곧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피에타(Pieta)라는 작품을 만들고 난 뒤에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이라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부분만 제거하면 작품이 되듯, 그들 또한 살아갔을 뿐인데 작품이 완성된 것이니 말이다. 재능의 관점으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의 우수성은 부각될지 모르지만, 실상 작품의 메시지는 건너뛸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십자가 형벌로 죽은 예수를 온 몸으로 받아 안은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피에타]. 숭고미와 함께 모성애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여러 웅성거림이 작품을 짓도록 한다

 

이에 반해 상황이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관점은 누구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상황과 작가의 어우러짐이 결국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게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어떤 상황과 공명하느냐에 따라 그게 문학작품으로, 예술작품으로, 철학으로 발현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그렇다면 왜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은 특정 개인에게서만 나오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맞다, 누구에게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은 또 다른 조건과 결부되어 있으니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씨앗의 비유(마태오 13:3~8)처럼 씨앗이 꽃을 피우려면 일정 조건이 필요하듯, 창작의 가능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작품이 만들어지는 최소한의 조건이란 무얼까? 단순히 생각해 보면 모든 상념과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후에야 생각을 정밀히 할 수 있고 그걸 표현할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노예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완벽한 무료함에 젖어 인생을 관조하다보면 뭔가 의미 있는 깨달음에 이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상 그런 사유들은 현실에 발 딛지 않은 사변이기에 생각의 폭은 확장했을지언정, 실상 현실을 바꾸는 데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높이 나는 새도 먹이를 먹을 때는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듯, 문학이나 철학도 고고한 생각을 현실과 공명하는 속에서 다듬어야 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조건은 삶과 이상이 어긋나고 삐걱거려 더 이상 내가 쌓아온 기반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순간이 적기라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지금껏 지녀왔던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에, 전혀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정형화되지 않은 언어를 쏟아낼 수 있다. 상황의 관점으로 작품을 보면 작품만의 가치는 경시될 수 있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금오신화]는 몽유계 소설의 효시이지만, 과연 이런 작품들이 작가의 천재성에 의해 갑자기 나온 것일까?

 

 

 

불협화음 속에 문학은 생기를 얻고, 철학은 생명을 얻는다

 

천부적인 자질에 의해 글을 짓게 된다거나 여러 상황에 휩쓸리며 짓게 된다는 논의 중에 나는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관점에 매력을 느낀다. 모든 사람에겐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건 어떤 상황과 마주쳐 공명할 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보더라도 정조(17761800)가 집권하던 시기엔 동분서주하며 관리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했다. 규장각 일원으로 책을 교정보거나 수원화성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공사를 총지휘하며 바쁘게 지냈다. 아마 그렇게 관리로서 승승장구했다면 현재 우리가 다산학이라는 칭호까지 붙이며 기리는 다산은 없었을 것이다. 삶이 엇나가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로 일가친척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다산은 유배를 가게 됐을 때가 작품을 만들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왕을 보좌하는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명문가에서 멸문가로 180°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테지만, 다산은 삶이 어긋난 자리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그들과 함께 18년간의 유배기간에 500여권의 책을 집필한다. 다산하면 떠오르는 많은 작품들이 이때에 탄생했다.

 

 

  다산학의 탄생은 그에게 닥친 비극과 관련이 있다.  

 

 

 

힘든 상황을 겪어본 사람만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

 

다산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극에 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곤궁한 상황에 내몰려야만 시구를 지을 수 있다[詩窮而後工]’고 표현했던 것이다. 과연 어떤 논리에 의해 이와 같은 결론을 맺게 된 것인지, 아래의 글을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세상에서 시인으로 출세한 사람은 적고 곤궁한 사람은 많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찌 그렇기만 할까?

대개 세상에 전해지는 시들은 옛날에 곤궁했던 사람들의 말에서 나온 것이 많다. 선비인데도 자기가 지닌 재능을 세상에 펼쳐보지 못한 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산마루와 물가 먼 데로 나가기를 좋아한다. 그때 벌레와 물고기, 풀과 나무, 바람과 구름, 새와 짐승 따위를 보며 이따금씩 기괴한 것을 찾아 안으로 근심과 분함이 가득 쌓여 그것을 원망과 풍자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때서야 유배된 신하와 과부의 탄식을 표현하여 인정의 곡진한 부분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곤궁할수록 시가 좋아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가 시인을 곤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의 곤궁한 상황에 내몰린 후에야 시가 좋아진다고 보는 게 맞다. -구양수, 거사집』 「매성유시집서

予聞世謂詩人少達而多窮’, 夫豈然哉. 蓋世所傳詩者, 多出於古窮人之辭也. 凡士之蘊其所有而不得示於世者, 多喜自放於山巓水涯之外. 見蟲魚草木, 風雲鳥獸之狀類, 往往探其奇怪, 內有憂思感憤之鬱積, 其興於怨刺, 以道羈臣寡婦之所歎, 而寫人情之雅言, 蓋愈窮則愈工. 然則非詩之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 - 歐陽修, 居士集』 「梅聖兪詩集序

 

 

옛 사람도 시를 잘 쓰는 사람은 가난했던 모양이다. ‘유명한 시인=가난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되다 보니, 이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싶었나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는 문학 장르의 특성상 인간의 가장 은밀한 감정과 맞닿아 있기에 시는 시인을 궁핍하게 만든다[詩能窮人]’라고 생각했다. 시가 잘못된 인연처럼 사람에게 들러붙어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시를 생각했다면, 모 음료 CF의 광고처럼 ! 가란 말야!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고 소리치며 떼어내려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생각 속에서 시마(詩魔)’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 시마란 시라는 악마라는 뜻으로 마귀의 예수 유혹(마태오 4:3~11)’처럼 순간적으로 사람에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지만, 순간이 지나면 불행해지게 만든다는 뜻이다. 히어로들의 화려한 능력 뒤엔 불행한 일상이 숨어 있듯, 시마 또한 문학적인 창작욕을 주되, 일상의 불행을 담보로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면, ‘곤궁한 상황에 내몰린 후에야 시가 좋아진다[窮者而後工]’라는 것은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가난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시를 짓게 되면서 궁핍한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 아니라, 궁핍했던 상황 자체가 좋은 시를 짓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양수(1007~72)는 궁핍한 상황에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쌓이게 되고, 그게 결국은 인정을 울리는 진정성 있는 언어로 표현된다고 보았다. 그러니 그런 시를 본 사람은 감동할 수밖에 없고, 작가는 그만큼 유명해지는 것이다. 구양수의 생각처럼 하나의 문학 장르가 악마일리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여러 환경적인 어그러짐이 결국 응집되고 그게 표현되어 작품들이 나오게 된 걸 테니 말이다.

 

연암의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런 식의 문학 탄생론을 살펴본 이유는 연암의 작품이 그런 식의 갈등과 불협화음 속에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경과의 불협화음으로 자칫 잘못하면 무겁고 사변적인 내용의 작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연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그의 작품은 유머와 인간미가 가득한 작품이 되었다. ‘무겁되 가볍게, 진지하되 유머러스하게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이 연암의 작품에 들어맞는 평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시마가 달라 붙으면 문학적인 영감을 준다. 하지만 평생 곤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시마에게 어떻게 할까?  정우성처럼 떼어내려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지 않을까?

 

 

인용

만남 / 지도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2. 작품 탄생에 관한 두 가지 관점

3. 사이에서 웃어재끼다

4. 좋은 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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