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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만남과 사랑입니다 - 1. 교육자라면서 오히려 반교육자가 되다 본문

연재/작품을 감상하다

교육은 만남과 사랑입니다 - 1. 교육자라면서 오히려 반교육자가 되다

건방진방랑자 2019. 7. 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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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자라면서 오히려 반교육자가 되다

 

나는 언제 선생님이 되려고 맘먹었을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중학교 2학년 때쯤이지 않나 싶다. 그땐 막연한 생각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도 괜찮겠거니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서히 미래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시기가 되어서도 난 여전히 선생님이란 직업을 염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중학생 시절 어렴풋이 교사란 직업을 생각했던 이후로 돌아설 수 없는 외딴길에 들어선 것 마냥 교사라는 직업만을 바라보고 한 해, 한 해 지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도 무언가 확실한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이란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아보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막상 교사가 되려고 사범대에 들어온 지금은 오히려 내가 교사가 된다면 어떨까하는 불안이 들기도 한다.

 

 

 

교사가 되어 예전 교사들의 나쁜 모습을 흉내내지 않으려면

 

군대란 곳에 다녀와서 느낀 것은 사람이란 동물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야비하며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고 너무 쉽게 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등병 때는 고참들의 전혀 이유 없는 감정에 의한 횡포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며 심한 불만을 토로하며 나중에 선임이 되면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선임이란 위치에 올라서면 언제 그런 다짐을 했냐는 듯이 여전히 예전 고참들과 똑같이 전혀 이유 없는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모습을 쉽사리 발견하게 된다. 보고 배운 게 그거 밖에 없기 때문인지 분명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되풀이 하는 것이다.

예비 교사를 꿈꾸고 있는 우리들조차 결국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깐 자연스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의 권위적인 태도나 편애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분을 삼켰을 테지만, 막상 교사가 되고나면 그 아픔을 기억해서 편애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탈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받아온 과거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여전히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육의 악순환은 교사나 학생 모두에게 악영향을 줄 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끈기 위해서 바로 만남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교육은 만남과 사랑입니다라는 오늘 소개할 책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교육의 악순환을 끈기 위해 제시한 만남과 사랑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교육의 정의와 현실교육의 한계

 

우선 이 책에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만남사랑을 알아보기 전에,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이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는 게 옳을 듯하다. 교육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난 후에 만남사랑을 알아갈 때 진정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적 의미에서의 교육은 자기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더럽게 만드는 세속적인 것들을 걷어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침으로 본래의 선한 성품(性善)을 찾아가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말에 의하면 교육이란 단순히 나 자신의 수신(修身) 및 인격도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런 동양적 의미에 비교하여 우리가 실제 체험하고 있는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우린 교육을 지덕체(智德體)를 두루 함양하는 것이라 중고등학생 때 배웠으면서도 실제적으론 그 세 가지를 두루 함양하고 있지 못하다. 오로지 의 전수에만 치우친 나머지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인가 하는 편협한 시험의 요령만을 교사가 전수해주며, 그것을 어떠한 비판이나 생각의 여지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현시대 교육이다. 결국 일방적 지식 전수와 무비판적 순응이 오늘날 교육의 정의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이라는 것도 자기 수양이나 무비판적 순응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의미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의하고 있다.

첫째는, 관심과 이해가 기반이 된 교육이다. 이 첫째 정의만을 놓고 봐도 오늘날의 교육관과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지금까지의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식의 그런 교육이 아닌 상호 작용에 의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런 관계성만을 여러 장면 장면을 통해서 보여주며 이런 관계성에 의해서만 진정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둘째는,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 뿐 아니라 각 개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까지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고정관념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이 다분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다시피 어떠한 교과서적, 이론적 지식을 전해주는 것만을 교육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말고 잠재된 재능마저 일깨워줄 수 있는 적극성이 들어갈 때야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잠재되어 있는 능력이란 한 개인이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게 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간혹 의사나 변호사가 그 직업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바로 재능을 똑바로 일깨워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빨리 알게 되면 될수록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여 사회에 필요한 존재로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의 잠재되어 있는 능력 따위는 고려치 않고 부모의 간섭에 따라, 아니면 사회적 편견에 따라 인기 있는 과에 몰리는 기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있을 뿐 어떠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런 기현상이 사회적 요구, 개인의 욕구, 가정적 압박에 의한 것이라 치부하며 교육과는 관계없다고 쉬쉬할 수 있을까? 교육의 본질이 잠재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면다분히 그런 기현상의 책임은 교육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육은 어떤 상하관계에 따른 권위주의적이고 복종적인 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대상에 대한 적극성을 가지고 잠재되어 있는 재능까지 이끌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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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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