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詩)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당나라 때 현종(玄宗)이 맹호연(孟浩然)을 불러 접견하고, 예전에 지은 시를 읊게 하였다. 이에 맹호연(孟浩然)이 다음 시를 외웠다.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疎 | 재주 없어 밝은 임금 이 몸 버리고 병 많아 옛 벗도 멀어지누나. |
이에 불쾌해진 왕은 “그대가 스스로 짐(朕)을 구하지 않은 것이지, 짐은 그대를 버린 적이 없노라.”하고는 고향에 돌아가게 하였다. 사려 깊지 못한 경박한 붓놀림 때문에 궁하게 된 경우이다.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전한다.
장상례(張尙禮)가 「궁원(宮怨)」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庭院沈沈晝漏淸 | 정원은 깊고 깊어 낮 물시계 소리 맑은데 |
閉門春草共愁生 | 닫아건 문엔 봄풀이 시름처럼 자라누나. |
夢中正得君王寵 | 꿈속에서 한창 임금의 총애 얻고 있는데 |
却被黃鵬叫一聲 | 꾀꼬리 한 소리에 잠을 깨었네. |
정원이 어찌나 고요한지 한낮인데도 물시계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맑게 들릴 지경이다. 일 년 내내 닫아건 문 안 뜨락에는 어느덧 봄풀이 내 마음 속의 시름처럼 자라고 있다. 그녀는 이미 임금의 총애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꿈속에서나마 그토록 그리던 임금의 은총을 받아 행복에 겨워 있는데, 그마저도 꾀꼬리가 심술궂게 깨우는 통에 놀라 깨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시를 본 고황제(高皇帝)는 궁궐 깊은 곳 궁인(宮人)의 심사를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하여 잠실(蠶室)에 가두어 죽여 버렸다. 이쯤 되면 ‘시능궁인(詩能窮人)’이 아니라 ‘시능살인(詩能殺人)’이다.
예전에는 두보(杜甫)를 배우면 가난해지니 읽기는 읽어도 닮지는 마라는 말이 있기까지 했다. 명나라 때 왕세정(王世貞)은 『예원치언(藝苑巵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시(詩)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그 실정을 헤아려 보면 진실로 합당한 것이 있다. 대저 가난하고 늙고 근심하고 병들고, 떠돌거나 귀양살이하며 타관에 머묾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詩)로 들어오면 아름답게 된다. 옛날의 시장(詩匠)을 두루 살펴보니 진실로 온전히 마친 자가 적어, 이를 위해 구슬피 탄식하고, 숙연히 두려워하였다. 지난 번 동인(同人)들과 함께 장난삼아 문장의 아홉 가지 운명을 만들었는데, 첫 번째는 빈곤(貧困)이고, 두 번째는 시기함이며, 세 번째는 과실, 네 번째는 좌절당해 고생함이고, 다섯 번째는 쫓겨나 귀양감이고, 여섯 번째는 형벌을 당함이며, 일곱 번째는 요절함이고, 여덟 번째는 끝이 안 좋음이며, 아홉 번째는 후사가 없음이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의 합당함을 지적하고, 아울러 문장구명(文章九命) 즉 시인의 아홉 가지 곤고(困苦)한 운명을 나열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사람들이 잘못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말에 혹하여 시를 읊조리는 것이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궁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숭상할만한 바가 아닐뿐더러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저 시를 읊조림은 목청을 잘 쓰는 이가 슬퍼 목 메이는 곡조로 남을 능히 슬프게도 하고, 호방하고 번화한 노래로 남을 능히 기쁘게도 하는 것과 같다. 다만 시도 또한 그러하다. 그 궁함에 있어서는 그 말이 궁하고, 그 달함에 있어서는 그 말이 달하게 되니, 이는 바로 시에 능한 사람이 형용하여 말로 표현함에 능한 것이다. 어찌 시인이 이를 따라 궁하게 되고 이를 따라 달하게 되는 이치가 있겠는가?
시능궁인(詩能窮人)의 생각을 배척하는 견해를 개진하였다.
차천로(車天輅)와 장유(張維)는 각각 「시능궁인변(詩能窮人辯)」이란 논문을 남긴 바 있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의 문제가 월과(月課)의 주제로 오를 만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인용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7.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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