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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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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發憤抒情)의 정신

 

 

나비 잡는 아이의 심정으로 사기를 읽다

 

그대가 태사공(太史公)사기(史記)를 읽었다 하나, 그 글만 읽었지 그 마음은 읽지 못했구료.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高漸離)가 축()이란 악기를 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었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嘗讀其心耳. 何也? 讀項羽, 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저서(著書)할 때입니다.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 手猶然疑, 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연암 박지원(朴趾源)답경지(答京之)란 글의 전문이다. 아마도 경지(京之)란 이가 자신은 이즈음에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푹 빠져 있노라며 편지를 보냈던 모양이다. 그러자 연암은 사기(史記)를 읽으면서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보이는 항우(項羽)의 출천(出天)의 용맹과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형가(荊軻)를 전송하는 고점리(高漸離)의 비장한 연주를 떠올리며 사마천(司馬遷)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력에 감동하는 것은, 마치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을 하나 주어 놓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숟가락 주웠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잘라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마천의 문장 솜씨가 아니라 그가 그 글을 지을 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연암은 예의 그 참신한 붓을 들어 나비를 잡으려다 놓친 소년에 견주어 사마천의 마음을 설명한다. 소년은 정신을 온통 손가락 끝에다 집중시켜 살금살금 나비에게로 다가간다. 잡았다 싶은 순간에 나비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뻗었던 손이 부끄럽고, 전심전력의 몰두가 허망해지는 순간이다. 이거다 싶었는데 결국 손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한 허망함, 조금만 주의를 더 기울였더라면 잡을 수도 있었다는 자책감, 혹시 누가 내 이 모습을 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부끄러움, 바로 이런 모종의 안타까우면서도 착잡한 마음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지을 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이입하려는 마음으로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지르면 적장(賊將)이 간담이 서늘해져 그만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는, 제후들이 감히 옆에 가지도 못하고 성벽 위에서 싸우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항우(項羽), 유방(劉邦)에게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곤경을 당하고 달아나다가 고향에 돌아가 부노(父老)를 대할 면목이 없다고 자결하는 장면은 얼마나 비통했던가. 진왕(秦王) ()의 포학함을 징벌하고자 독항(督亢)의 지도 속에 독 묻은 비수를 품고 진() 나라를 향했던 연() 나라의 자객 형가(荊軻)가 역수(易水) 강가에서 가을바람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찬데, 장사는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나니[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複還].”하고 비장한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벗 고점리(高漸離)는 축()을 연주하였다. 듣는 자가 두 눈을 부릅뜨지 않는 이 없었고, 머리칼은 관을 뚫었다. 그러나 형가(荊軻)의 독 묻은 칼이 진왕(秦王)을 찌르지 못하고 하릴없이 기둥에 박히는 순간, 형가(荊軻)는 진왕(秦王)의 칼에 난자당해 죽는다.

 

그때 항우(項羽)가 천하를 쟁패했다면, 형가(荊軻)의 독 묻은 비수가 진왕(秦王)의 가슴을 갈랐다면 역사는 어떻게 뒤바뀌었을까? 지나간 시대 영웅들의 비분강개한 삶의 역정을 돌아보는 사마천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역사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순간들, 손아귀에 쥐었다가 놓쳐 버린 역사의 파란곡절을 지켜보는 사마천의 그 마음을 읽지 못하고, 오로지 그 실감나는 문장의 묘사에만 감탄하여 실감나네!”만을 연발하고 있다면, 이 어찌 부뚜막 아래서 숟가락 하나 주워들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숟가락 주웠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것이 있겠는가?

 

 

 

치욕조차 버텨내며 집필하게 만든 발분서정

 

일찍이 사마천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옛날 서백(西伯)은 유리(羑里)에 구금되어 주역(周易)을 부연하였고, 孔子는 진채(陳蔡)에서 곤액을 당하여 춘추(春秋)를 지었다. 굴원(屈原)은 쫓겨나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左丘)는 실명한 뒤 국어(國語)를 남겼다. 손자(孫子)는 다리가 잘리고 나서 병법(兵法)을 논하였고, 여불위(呂不韋)는 촉() 땅으로 옮긴 뒤 여람(呂覽)이 세상에 전한다.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에 갇혀서 설난(說難)고분(孤憤)을 지었다. 시경(詩經)3백편은 대개 성현(聖賢)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바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뜻이 맺힌 바가 있으나 이를 펼쳐 통함을 얻지 못한 까닭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장차 올 것을 생각한 것이다.

西伯羑里, 周易, 孔子陳蔡, 春秋. 屈原放逐, 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腳, 而論兵法, 不韋, 世傳呂覽. 韓非, 說難孤憤. 三百篇, 大抵賢聖發憤之所爲作也.

此人皆意有所郁結, 不得通其道也, 故述往事, 思來者.

 

 

5천의 보병으로 흉노의 본진을 유린하다 장렬한 전투 끝에 부득이 흉노에 항복했던 장군 이릉(李陵). 모두 외면하는 그를 외로이 변호하다가, 무제(武帝)의 격노를 불러 궁형(宮刑)에 처해졌던 사마천은 오로지 사기(史記)를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궁형(宮刑)의 치욕과 모멸을 감수하였다. 완성된 사기(史記)의 서문을 쓰면서 그는, 좌절 속에서 불멸의 저술을 꽃 피웠던 지나간 성현(聖賢)의 발분(發憤)의 저작(著作)들을 떠올리고 있다.

 

이제 후대는 사마천의 이 발분저서(發憤著書)’의 정신을 높여 기린다. 앞서 연암이 강조했던 사마천의 마음이란 바로 이 발분(發憤)’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이란 주자(朱子)의 풀이에 따르면 마음으로 통함을 구하나 아직 이를 얻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일찍이 공자(孔子)발분망식(發憤忘食)’을 말하였고, 굴원(屈原)은 다시 여기에 사회적 성격을 담아 초사(楚辭)』 「구장(九章)석송(惜誦)에서 송덕함 즐기지 않다가 근심을 부르니, 을 내어 내 마음 펴 보이네[惜誦以致愍兮, 發憤以抒情].”이라 하여 발분서정(發憤抒情)’을 말한 바 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이 있으니, 이를 펴지 않고서는 견딜 길이 없다.

 

 

 

나비를 놓쳐버린 심정으로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굴원열전(屈原列傳)에서 굴원은 왕의 듣는 것이 총명하지 않고, 참소와 아첨이 임금의 밝음을 가려 막아, 사곡(邪曲)이 공()을 해치고, 방정한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다. 그런 까닭에 근심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이소(離騷)를 지었다[屈平疾王聽之不總也, 讒諂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 方正之不容也, 故憂愁幽思而作].”고 적고 있다.

 

이 뜻을 부연하여 조선 말기의 문인 강위(姜瑋)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의 지극한 것은 재주 부리지 않고 얻은 것이다. 재주 부림에 말미암아 얻은 것은 대개 지극한 것이 아니다. 난봉(鸞鳳)의 맑은 소리와 주옥(珠玉)의 빛나는 기운, 병든 이의 신음 소리, 슬피 우는 이가 흘리는 눈물이 어찌 모두 재주 부림에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말하기를, () 삼백편(三百篇)은 모두 성현(聖賢)이 발분(發憤)하여 지은 바라고 한다. 이로써 본다면 발분(發憤)하지 않고는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시인은 눈앞에서 나비를 놓쳐버린 소년의 안타까움을 지녀야 한다.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과, 견딜 수 없는 좌절감 앞에서 주저 물러앉지 않는 발분(發憤)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발분(發憤)하는 서정(抒情) 없이 어찌 남을 감동시킬 것이랴.

 

 

 

 

인용

목차

1.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5. 시는 궁달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6. 시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7.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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