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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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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궁한 상황과 추위로 알게 되는 것

 

군자의 배움은 혹은 일에 베풀어지고 혹은 문장으로 나타나니 항상 아우르기 어려움을 근심한다. 대개 때를 만난 선비는 공렬(功烈)을 조정에 드러내어 명예가 죽백(竹帛)에 빛나는 까닭에 그 항상 문장을 보기를 말사(末事)로 하며 또 하기에 겨를하지 못하거나 능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뜻을 잃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궁벽한 곳에 숨어 마음을 괴롭게 하고 생각을 위태롭게 하여 정밀한 생각에 지극하니 감격하여 분()을 펴는 바가 있으므로 더불어 오직 세상에 펼 바가 없는 것을 모두 한결같이 문사(文辭)에 맡기는 까닭에 궁한 사람의 말이 공교하기 쉽다고 말한다.

君子之學, 或施之事業, 或見於文章, 而常患於難兼也. 蓋遭時之士, 功烈顯於朝廷, 名譽光於竹帛 故其常視文章爲末事, 而又有不暇與不能者焉. 至於失志之人, 窮居隱約, 苦心危慮, 而極於精思, 與其有所感激發憤, 惟無所施於世者, 皆一寓於文辭, 故曰: “窮者之言, 易工也.”

 

 

다시 구양수(歐陽修)설간숙공문집서(薛簡肅公文集序)에서 이렇게 부연한다. 한유(韓愈)처럼 구양수도 고심위려(苦心危慮)의 실지지인(失志之人)에 기우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로 보더라도, 역시 시는 궁한 뒤에 더 좋아진다. 어디 시뿐인가? 모든 예술, 학문이 다 그러하다.

 

시장에서 떡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불렀다. 그 노래 때문에 그 집 떡은 유명해져서 언제나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해지자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떡 가게도 점차 시들해졌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은 그 연원이 오랜 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말이 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송백(松柏)의 정조경절(貞操勁節)이 눈에 띠지 않았는데, 세한(歲寒)으로 낙목한천(落木寒天)이 되자 그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하던 송백지후조(松柏之後凋)를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에 유배 가 있던 추사(秋史)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변치 않는 정성에 대한 답으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주었던 일은 유명하다. 이때 세한(歲寒)’의 상황은 궁()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 전에는 인식하지 못하던 사실에 대해 궁()이라는 상황이 개입되어 인식에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의 핵심이다. 맹자마음에 곤핍하고 생각에 부딪친 뒤에 짓는다[困於心. 衡於慮而後作].”고 한 바 있다.

 

 

 

좋은 시는 가난한 사람에게서 나오네

 

시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다. 즉 한편의 시가 뛰어난 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삶을 뛰어넘는 인식의 갱신이 필요하다. 이 인식의 갱신은 현실과 밀착되어 있을 때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 무엇밖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시인의 내부에 한()을 머금게 해, 그 결과 그것이 예술에 퍼부어진다는 것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기본 생각이다. 다시 말해 궁()의 상황이 가져다 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극단의 괴리감에, 여기서 벗어나려는 자아의 노력이 덧붙여져 시에 있어서 공()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승혜근초파승직(僧惠勤初罷僧職)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霜髭茁病骨 饑坐聽午鐘 서리 맞은 수염은 병골(病骨)에 덥수룩 주린 배로 앉아서 낮 종소릴 듣네.
非詩能窮人 窮者詩乃工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할 수 없고 궁한 이의 시가 좋은 것일세.
此語信不妄 吾聞諸醉翁 이 말은 진실로 망령되지 않으니 나는 구양수(歐陽修)에게서 이 말을 들었노라.

 

이 시를 통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에 수긍한 바 있다.

 

독당인수시대작(讀唐人愁詩對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天恐文人未盡才 문인(文人)이 재능을 다 쏟지 않을까 하늘이 근심하여
常使零落在蒿萊 항상 영락케 하여 덤불 속에 있게 했네.

 

천공(天公)이 시인에게 덤불 속의 영락을 강요한 것은, 혹 안일의 환경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을 다 쓰지 아니하고 현실에 안주할까봐 염려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원굉도(袁宏道)증진정부(贈陳正夫)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自來好語出飢腸 예로부터 좋은 시는 주린 창자에서 나왔나니
一字堪酬五十絹 한 글자에 비단 오십 필을 쳐줄만 하도다.

 

 

 

이색이 헤매며 알게 된 것

 

고려 말 이색(李穡)유감(有感)이란 작품에서 또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非詩能窮人 窮者詩乃工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할 수 없고 궁한 이의 시가 좋은 법이라.
我道異今世 苦意搜鴻濛 내 가는 길 지금 세상과 맞지 않으니 괴로이 광막한 벌판을 찾아 헤맨다.
氷雪砭肌骨 歡然心自融 얼음 눈이 살과 뼈를 에이듯 해도 기꺼워 마음만은 평화로웠지.
始信古人語 秀句在羈窮 옛 사람의 말을 이제야 믿겠네 빼어난 시구는 떠돌이 궁인(窮人)에게 있다던 그 말.

 

12구는 앞서 본 소동파(蘇東坡)의 시구를 그대로 딴 것이다. 옛 사람이란 바로 구양수(歐陽修)를 가리킨다. 세상과 맞지 않는데서 비롯된 ()’을 추스르고자 괴롭게 광막한 벌판을 헤맨다. 살과 뼈를 에이는 듯한 추위의 고통 속에서도 시를 쓰는 즐거움에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다.

 

 

 

궁해져야만 시가 좋아진다

 

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리는 조선 후기 여항문인들에 의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가환(李家煥)은 여항문인들의 선시집인 풍요속선서(風謠續選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에는 성정(性情)이 없는 사람이 없고, ()를 지을 수 없는 사람도 없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누구나 시를 지을 수 있다. 다만 성정(性情)이 얽매이게 되면 시()는 망하고 만다. 성정(性情)을 질곡하는 것은 부귀(富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성정(性情)이 얽매이고 보면 비록 그 재주가 아무리 높고 언어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말단일 뿐이다. 어찌 다시 시가 있으리오. 이것이 고금(古今)에 시로 일컬어진 자가 궁하면서 낮은 지위에서 나온 것이 많은 까닭이다.

天下無無性情之人, 則無無詩之人. 故人皆可以爲詩. 惟性情梏而詩亡矣, 梏性情者莫甚於富貴. 性情梏則雖其才調之高, 言語之工, 末而已. 豈復有詩哉. 此所以古今稱詩, 多出於窮而在下者也.

 

 

홍세태(洪世泰)설초집서(雪蕉集序)에서 시라는 것은 소기(小技)에 불과하지만 명리(名利)를 벗어던져 마음에 누추함이 없어야만이 잘 할 수 있다고 보고, “예로부터 두루 살펴보니, 시에 능한 사람은 산림초택(山林草澤)의 아래에서 많이 나왔고, 부귀(富貴)하고 권세 있는 사람은 반드시 능하지 못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시는 진실로 작다 할 수 없고, 그 사람을 또한 알 수 있다[歷觀自古以來工詩之士, 多出於山林草澤之下, 而富貴勢利者未必有焉. 以此觀之, 詩固不可小, 而其人亦可以知之矣].”고 하여, 명리(名利)에 찌든 부귀(富貴)의 인사보다는 산림(山林)에 거처하면서 마음이 맑은 자신들의 시가 훨씬 더 좋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한말(韓末)김윤식(金允植)경뢰연벽집서(瓊雷聯璧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예로부터 배척받아 쫓겨난, 때와 만나지 못한 인사가 대개 이름은 허물을 입는 바 되어도 문장은 더욱 이름을 낳음이 되었다. 만약 소씨(蘇氏) 형제로 하여금 일찍 허물을 버리고 이름남을 끊어 녹녹히 세상에 일컬음을 보지 못하게 했더라면 반드시 경뢰(瓊雷)에서 서로를 그리는 괴로움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늙어 흰 머리가 되도록 책상을 마주해 비소리를 듣는 것도 또한 좋겠지만, 이렇게 되면 뒷사람이 또한 좇아 소씨(蘇氏) 형제가 있음을 알 수가 없을 터이니, 두 가지에서 장차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噫自古斥逐不遇之士, 槪多爲名所累, 而文章尤爲名之囮也. 若使蘇氏兄弟, 早得去累絶囮, 碌碌不見稱於世, 必無瓊雷相望之苦. 雖至老白首而對床聽雨亦可也, 然則後之人, 亦無從而知有蘇氏兄弟矣, 二者將奚擇焉.

 

 

대저 부가옹(富家翁)으로 편안히 늙어 세상에 그 자취가 드러나지 않음과, 불우를 곱씹으며 뛰어난 시를 남겨 그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해짐,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나으냐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주장은 구양수(歐陽修)가 처음 제기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동조와 지지를 불러, 마침내 고전시학(古典詩學)에서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궁하지도 않으면서 궁한 체 하는 거짓 궁()’의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명나라 때 사진(謝榛)사명시화(四溟詩話)에서 요즘 두보(杜甫)의 시를 배우는 자는 부유하게 살면서도 궁한 근심을 말하고, 태평한 시절을 만나고도 전쟁을 말하며, 늙지 않았으면서도 늙었다 하고, 병이 없으면서도 병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흉내냄의 매우 심함이니 성정(性情)의 참됨이 아니다.”라고 하여 시인들의 유난스런 무드잡기를 꼬집고 있다.

 

 

 

 

인용

목차

1.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5. 시는 궁달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6. 시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7.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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