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詩)는 궁달(窮達)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시인은 궁(窮)의 상태에서 사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가슴 속의 불평이나 울분이 날카로운 촉수가 되어 이전보다 그의 시를 더욱 우수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여기서 궁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실제 궁한 이의 시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달하였으면서도 시가 좋은 경우 또한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달한 처지에 있으면서 문필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가만히 앉아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에 승복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나 재분(才分)과는 관계없이 결코 공해질 수는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여기서 필연적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에 대한 이들의 반격이 예견된다. 실제로도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에 반대하는 ‘궁불여달(窮不如達)’이나 ‘달이후공(達而後工)’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 관각문인(館閣文人)인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예로부터 궁한 사람의 말은 모두 고한수담(枯寒瘦淡)하다[自古窮人之語皆枯寒瘦淡].”고 하고, 그 시를 보면 초췌하고 곤궁한 기상을 볼 수 있다 하여, 이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장유(張維)는 「월사집서(月沙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양씨(歐陽氏)가 문장(文章)을 논하면서 궁한 뒤에 시가 좋아진다는 말이 있고서부터,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들 이 말을 일컬어 구실로 삼는다. 대저 조충한고(雕蟲寒苦)의 무리가 비바람에 신음하고 끙끙대며 잠꼬대하고 조잘대며 날고 내달리면서, 한 마디 반 마디에 있어서도 곱고 추함을 다투는 자는 이것으로 이끌어도 오히려 괜찮겠지만, 만약 홍공철장(鴻公哲匠)의 벼슬아치로 사단(詞壇)에서 그 빛깔을 드러내어 울긋불긋한 빛깔로 꾸미고 그 소리에 맞추어 생황금석(笙簧金石)으로 크게 한 세상을 울리는 사람 같은 경우는 그 사람과 재주가 어찌 궁달(窮達)의 영역에 얽매여 그 교졸(巧拙)을 따지겠는가?
自歐陽氏論文章有窮而後工之語, 操觚家多稱引爲口實. 夫雕蟲寒苦之徒風呻雨喟 啽哢飛走, 爭姸醜於一言半辭者, 以是率之猶可也. 乃若鴻公哲匠冠冕詞壇, 彰其色而黼黻靑黃, 協其聲而笙簧金石, 以大鳴一世者, 此其人與才, 豈囿於窮途之域, 而格其巧拙哉.
나라의 중임을 맡아 지닌 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홍공철장(鴻公哲匠)은 궁달(窮達)의 잣대로 따져 헤일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희룡(趙熙龍)은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문인(文人)은 빈천(貧賤)함이 많고, 그림을 배우는 자는 더욱 궁박한 상이 많다고들 한다. 무릇 사해(四海)의 사람은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데, 글을 읽고 그림을 배우면 반드시 빈천(貧賤)에 이르게 되고, 배우지 않아 그림에 어두우면 반드시 부귀를 누리게 된다면 천하의 책이니 그림같은 일은 진시황의 분서(焚書)를 기다리지 않아도 없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를 이루고자 해도 재주와 능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이런 말을 가지고 자신을 변호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 김려(金鑢)는 「정농오시집서(鄭農塢詩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양수(歐陽修)가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면서 궁하면 시가 더욱 뛰어나다고 여겼고, 황산곡(黃山谷)은 두보(杜甫)의 시를 논하면서 늙어갈수록 시가 더욱 좋아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홀로 궁하다고 해서 좋아지거나 늙어갈수록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뛰어난 자만이 더욱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내가 삼당(三唐) 아래로 송원명청(宋元明淸) 및 우리나라 문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수십 백 종을 살펴보니, 궁한 사람은 더욱 구슬펐고, 늙은 사람은 더욱 거칠고 졸렬해서 좋은 것이 거의 드물었다. 이로써 볼진대 오직 뛰어난 자만이 뛰어나게 될 수 있고, 궁함이 반드시 사람을 뛰어나게 하지도 못하고, 늙음이 반드시 사람을 뛰어나게 하지도 못함이 분명하다.
歐陽永叔論梅都官詩, 以爲窮而益工, 黃魯直論杜子美詩, 以爲老益工, 談者皆曰至言, 而前輩以孟貞曜比聖兪, 陸渭南配少陵. 然予獨以爲非窮而能工, 老而能工, 直工者益工也. 何則? 余閱三唐以下至宋元明淸及我東人詩集, 幾數十百種, 其窮者益酸寒, 老者益蕪拙, 而其工者幾希. 由是觀之, 惟工者可工, 而窮不必工人, 老不必工人也明矣.
요컨대 시의 공졸(工拙)은 궁달(窮達)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타고난 능력과 관계되는 것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 중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이정구(李廷龜)는 「습재집서(習齋集序)」에서 권벽(權擘)의 시를 논하면서, 권벽은 50년 동안 조정에 서서 벼슬하였으니 결코 궁(窮)하다 할 수 없는데, 그의 시는 어찌하여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전제하고, “문장은 하나의 재주이다. 반드시 오로지 한 뒤에야 공교해지나니, 대개 번화하고 부귀로워 명성과 이욕을 쫓는 자들이 능히 오로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시에 공한 자는 대개 궁하고 근심하고 떠돌며 괴로워함을 거느려 때에 있어 만나지 못하니, 공교함이 능히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함이 스스로 능히 오로지 하여, 오로지 함을 이루면 저절로 능히 공교해지는 것이다[文章一技也 而必專而後工 蓋非紛華富貴馳逐聲利者所能專也 故自古工於詩者 大率窮愁羈困 不遇於時 非工之能使窮 窮自能專而專自能工也].”라고 하여,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대신 ‘시전이후공(詩專而後工)’을 내세웠다.
한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제이재동남이시후(題彛齋東南二詩後)」에서, “구양수(歐陽修)가 시를 논하면서 시는 궁한 뒤에 좋아진다고 하였다. 이는 다만 빈천(貧賤)의 궁(窮)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부귀(富貴)하면서 궁(窮)한 것 같음에 이른 뒤에야 그 궁(窮)은 궁(窮)이라고 말할 수가 있으니, 부귀한 자가 궁한 뒤에 좋아지는 것은 또한 빈천(貧賤)한 자가 궁한 뒤에 좋아지는 것과는 다르다[歐陽論詩窮而工. 此但以貧賤之窮言之也. 至如富貴而窮者, 然後其窮乃可謂之窮, 窮而工者, 又有異於貧賤之窮而工也].”고 하여, 빈천지궁(貧賤之窮) 아닌 부귀지궁(富貴之窮)에 기우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궁하다고 해서 시가 다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달하였다 하여 시가 나쁘란 법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인의 정신에 달려 있을 뿐이다. 시가 궁해진 뒤에 더 좋은 것은 얼마간 사실이지만은, 이를 수긍하는 것이 달한 이의 시를 아예 인정치 않는 편협으로 치닫는다면 이것은 곤란하다.
인용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7. 탄탈로스의 갈증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7. 탄탈로스의 갈증 (0) | 2021.12.06 |
---|---|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6. 시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0) | 2021.12.06 |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0) | 2021.12.06 |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0) | 2021.12.06 |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0) | 202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