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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1.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1. 시인과 궁핍 : ‘시궁이후공’론 - 1.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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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시인과 궁핍: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1. 불평즉명(不平則鳴), 불평(不平)이 있어야 운다

 

 

시름이 나를 울게 한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못다 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보리라

 

 

신흠(申欽)의 시조이다. 시는 왜 쓰는가? 말로 해서는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을 시름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해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시름도 노래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대저 무릇 물건은 그 평()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草木)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운다. 그 솟구치는 것은 혹 부딪치기 때문이요, 그 달리는 것은 혹 막기 때문이며, 그 끓는 것은 혹 불에 데우는 까닭이다. 금석이 소리가 없으나 혹 이를 치면 소리가 난다. 사람의 말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만둘 수 없음이 있은 뒤에야 말하는 것이니 그 노래함이 생각이 있고 그 울음은 품음이 있다. 대저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이 그 모두 불평(不平)함이 있기 때문인가?

大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撓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 其躍也, 或激之; 其趨也, 或梗之; 其沸也, 或炙之. 金石之無聲, 或擊之鳴. 人之於言也, 亦然有不得已者而後言. 其謌也有思, 其哭也有懷, 凡出乎口而爲聲者, 其皆有弗平者乎.

 

 

한유(韓愈)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한 말이다. 대개 사물이 우는 것은 부득이(不得已)함에서 말미암은 불평(不平)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불평(不平)이라는 것은 마음이 평정을 잃은 상태, 달리 말하면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불평(不平)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어찌해볼 수 없는 부득이(不得已)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문학을 하려면 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유(韓愈)형담창화시서(荊潭唱和詩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저 화평한 소리는 담박하고, 근심스런 생각이 있는 소리는 아름답다. 떠들썩하게 즐기는 말은 공교(工巧)하기 어렵고, 궁고(窮苦)의 말은 쉬이 좋다. 이런 까닭에 문장을 지음은 늘 기려(羈旅)나 초야(草野)에 있었고, 왕공(王公)이나 귀인(貴人)에 이르러서는 기()가 차고 뜻을 얻어, 성품이 능히 하여 이를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에 겨를하지 못한다.

夫和平之音淡薄 而愁思之聲要妙 讙愉之辭難工 而窮苦之言易好也 是故文章之作 恒發於羈旅草野 至若王公貴人 氣滿誌得 非性能而好之 則不暇以爲

 

 

의만지득(氣滿志得)’하여 아쉬울 것이 없는 왕공귀인(王公貴人)들이 궁고수사(窮苦愁思)’하는 기려초야(羈旅草野)의 문학만 같을 수 없다고 하였다. 훌륭한 문학은 기만지득(氣滿志得)의 자족에서가 아니라 궁고수사(窮苦愁思)의 부득이자(不得已者)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부족함과 생채기가 창작의 원동력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에 있어 그 아름다움만을 오로지 할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뿐이며,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진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다. 기특한 재주와 화려한 기예로 뛰어나게 되면 공명(功名)이 떠나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이치가 그러하다.

然天地之於萬物也, 使不得專其美. 故角者去齒, 翼則兩其足, 名花無實, 彩雲易山. 至於人亦然. 畀之以奇才茂藝, 則革功名而不與, 理則然矣.

 

 

요컨대 문장도 뛰어나면서 공명(功名)도 함께 누리는 이치는 없다는 것이다. 뿔을 가지려면 이빨을 포기하든지, 꽃이 아름다우려면 열매의 내실을 기대하지 않든지 해야지, 날개도 달고 다리도 네 개이기를 바라거나, 채색 구름의 영롱한 자태가 길이 변치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트릴링(Lionel Trilling, 1905~1975)현대의 문화인은 정치적으로는 부와 쾌락을 원하나 예술적 실존적으로는 내핍과 괴로움을 원하는 모순적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쾌락을 거부하고 프로이트를 따르자면 반쾌락에서 만족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충동은 시대와는 관계없이 존재해왔다. 모든 것이 구족(具足)된 환경에서 문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욕망이 좌절되고 꿈이 상처 입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른바 정서(情緖)란 것이 생겨나고, 그 정서가 희소노매(喜笑怒罵)가 되어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시이다.

 

 

 

 

인용

목차

1. 불평즉명, 불평이 있어야 운다

2. 나비를 놓친 소년, 발분서정의 정신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4. 궁한 사람의 시가 좋은 이유

5. 시는 궁달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6. 시는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

7.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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