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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와 작가와의 관계 『소화시평』 권상 99번에선 ‘문장을 지음으로 도를 깨쳤다[因文悟道]’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선시대의 문장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성리학이 송나라 시대에 발흥한 이후로 문장은 도를 싣는 도구여야 했다. 그래서 ‘글은 도를 실어야 한다[文以載道]’는 논의와 덧붙여 ‘도가 근본이고 글은 말단이다[道本文末]’와 같은 문학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글을 통해 도를 전해주고, 그 글을 읽으면서 도를 깨쳐야 한다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선시대의 문장론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전혀 어색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이란 어찌 되었든 저자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게 마련..
14.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쓰고 읽게 하는 것 또한 소통과 관련이 되어 있고 모두 다 내 의사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과연 글은 왜 쓰는 걸까? ▲ 11월 19일에 있었던 광화문 집회에 가는 길. 나에게도 웅성거림이 있고, 사회에도 웅성거림이 있다. 그걸 담아내는 것뿐이다. 글이란 내 안의 들끓음을 묘사하는 것 글이란 단순히 내 생각을 100% 전달하기 위해 쓰는 거라 할 순 없다. 책이든 글이든 반완성품이어서 글을 쓰는 사람만이 한 가지 해석만 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그걸 읽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과 이해도에 맞춰 재해석하게 된다. 그러니 100% 전달하려는 자만심은 버리고, 강의 내용이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언어로 탈바꿈하며 재해석되었는지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13. 글과 소통 I'm back, 드디어 돌아왔다. ‘아마추어 사회학’ 후기를 마무리 지어야 함에도 한참이나 헤매다가 이제야 돌아왔다. ‘아마추어 사회학’ 강의는 10월 18일에 있었으니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쓰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 후기는 10월 29일에 썼으니 20일 만에 그 흐름을 이어보려는 것이다. ▲ 6편의 후기를 써나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후기를 쓰지 못한 이유 갑자기 ‘아마추어 사회학’ 후기를 멈추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떨어지게 되면서 그 여파로 도저히 글이 써지질 않았다. 아무래도 올핸 예년보다 더 많은 글을 썼고 그것으로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인지도가 있지는 않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