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쓰고 읽게 하는 것 또한 소통과 관련이 되어 있고 모두 다 내 의사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과연 글은 왜 쓰는 걸까?
▲ 11월 19일에 있었던 광화문 집회에 가는 길. 나에게도 웅성거림이 있고, 사회에도 웅성거림이 있다. 그걸 담아내는 것뿐이다.
글이란 내 안의 들끓음을 묘사하는 것
글이란 단순히 내 생각을 100% 전달하기 위해 쓰는 거라 할 순 없다. 책이든 글이든 반완성품이어서 글을 쓰는 사람만이 한 가지 해석만 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그걸 읽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과 이해도에 맞춰 재해석하게 된다. 그러니 100% 전달하려는 자만심은 버리고, 강의 내용이 어떻게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언어로 탈바꿈하며 재해석되었는지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3월에 있었던 트위스트 교육학 강의에서 동섭쌤이 “책이란 기존의 독자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독자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죠.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르쳐야 할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행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곧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과연 내 안엔 어떤 웅성거림이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웅성거림은 결코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행태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 들끓음 자체를 들여다보고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2013년 11월 26일, 벌써 3년 전에 유지모로 교수 강의가 에듀니티에서 있었지만,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부담스럽지 않게, 진솔하게 쓰면 된다
작년만 해도 강의를 듣고 후기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나는 ‘감히 내 깜냥에 어떻게 쓸 수 있겠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리어 강의 내용을 담게 되면 오히려 원의를 왜곡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뭔가를 남기고 싶고 쓰고 싶긴 했어도 감히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막상 쓰려고도 해봤지만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말을 풀어나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뭔가 멋들어지게 쓰고 싶고 일목요연하게 짜임새를 갖추며 쓰고 싶지만, 실력이 따라주질 않다 보니,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마음을 고이 접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남는 건 하나도 없더라. 분명히 여러 강의를 들었고,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는 있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니 사르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쯤 되니 ‘이럴 바에야 그냥 강의 녹취록이라도 만들어둘 것을’하는 후회가 밀려오더라. 그래서 작년부턴 용기를 내어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전주 강의인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와 제주 강의인 ‘공생의 필살기’를 후기로 남기게 되었고, 그게 올해까지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강의 후기는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100% 강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야지’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강의 내용에 충실하되 그게 내 안에 들어와 어떤 울림으로 이어졌고 어떤 스침을 빚어냈는지 서술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전주에서의 강연이 드디어 제대로 쓰기 시작한 첫 후기였다. 그렇게 하나의 벽을 넘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맞다,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나에게 좀 더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분명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떨어진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걸 계기로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덕에 좀 더 가볍게 내 안의 울림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참여정부 때 등록금이 가장 많이 올랐어요”라고 말했고, 이에 문재인 후보가 “그럼 이명박 정부 때 왜 반값등록금 안 했습니까?”라고 묻자, 박 후보는 “제가 대통령 됐으면 했어요. 대통령 되면 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한참 설전이 오간 후에 문 후보가 “과학기술이 이렇게 추락하는 동안 박 후보님은 뭐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박 후보는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답했다. 여당의 대표로 있었으면서도 정부의 잘못에 대해선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않고 ‘그건 정부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려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 2차 대국민 담화에서 나온 이 말 덕에 많은 패러디들이 만들어졌다.
충분히 그 당시에도 여당 대표의 자격으로,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할 수 있었으면서도 전혀 하지 않다가, 대통령이 된 후에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매우 야비하니 말이다. 결국 그녀가 대통령이 된 지금도 그때의 호언장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모든 공약을 파기하기에 이르렀으니 ‘대국민 사기 발언’이라 해야 맞다.
이처럼 지금 당장하지 못하는 일을 나중에 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부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중이 아닌 지금 해야 하며, 뭔가가 된 후가 아닌 당장 해야 한다. 그래서 한비야씨는 『중국견문록』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지러 가자. 내일 말고 바로 오늘, 지금 떠나자. 한꺼번에 많이는 말고 한 번에 한 발짝씩만 가자. 남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거나, 남의 등에 업혀 편히 가는 요행수는 바라지도 말자. 세상에 공짜란 없다지 않은가.”라고 똑부러지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이젠 한비야씨의 말마따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삶을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그래서 내가 지금 글을 쓰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외치며, 열심히 쓰면 된다.
▲ 이제 다시 강의의 장으로 안내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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