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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역암에서 노닐며유역암(遊櫪巖) 박은(朴誾) 滿月臺前從敗意 廣明寺後更幽尋地藏故國應千載 詩得吾曹偶一吟怒瀑自成空外響 愁雲欲結日邊陰且須盃酒洒胸臆 不盡興亡今古心 『挹翠軒遺稿』 卷三 해석滿月臺前從敗意만월대전종패의만월대 앞에서 비감에 싸였고廣明寺後更幽尋광명사후갱유심광명사 뒤에서 다시 그윽한 심사 찾네.地藏故國應千載지장고국응천재땅에 고국이 잠긴 지 응당 천 년이라,詩得吾曹偶一吟시득오조우일음시는 우리 무리를 얻어 우연히 한 번 읊조려지네.怒瀑自成空外響 로폭자성공외향 성난 폭포 스스로 허공 저편을 울리고愁雲欲結日邊陰수운욕결일변음우수 찬 구름 해 주변에 엉기려 해서 어둑하네.且須盃酒洒胸臆차수배주쇄흉억또한 술잔 술로 가슴 응어리 씻어내더라도,不盡興亡今古心부진흥망금고심고금 흥망의 마음은 다함이 없구나.『挹翠軒遺稿』 卷三 인용작..
박은朴誾: 1479(성종 10)~1504(연산군 10)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1. 15세에 신용개(신숙주 손자)의 사위가 되었고 18살 때 병과 급제로 관리로 나감. 2. 23세에 홍문관 수찬이 되어 무오사화 이후 연산군의 비호를 받던 유자광(柳子光)과 성준(成俊)을 탄핵하다가 ‘사사불실(詐似不實)’이라는 죄목으로 파직되었음. 3. 26세 때에 지제교로 복직되었으나,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6월에 효수됨. 4. 정조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우리 동방의 시학은 대대로 사람이 드물진 않았다. 그러나 읍취헌 박은의 천성과 눌재 박상의 침울함이 다 성대한 세상의 국풍, 대아, 소아의 남은 것으로 후세의 사단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에 비교할 게 아니다’라고 하시고,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