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이달의 재미난 첫 만남 이야기
공부를 막 시작할 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작자인 허균은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허균은 정통 양반가의 자제인 반면 이달은 어머니가 관기 출신으로 서얼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급이 있는 사회(우리나라는 계급이 타파되었지만 직업적인 계급은 존재한다. 그래서 재벌은 재벌들끼리,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한다)가 그러하듯, 그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라 양반과 서얼은 어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배울 만하다고 여기면 계급에 상관없이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소화시평』 권상 109번을 보니 허균이라는 인물 자체가 특이한 것도 있겠지만, 그가 이달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데엔 그의 형인 허봉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사실이다. 허봉이야말로 허균 이전에 서얼들과 격이 없이 친했으며 이렇게 자신의 집에 초정하여 함께 시를 나눌 정도의 친분이 있었던 것이고, 오히려 허균은 양반다운 체통이 있어 초면임에도 이달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정사인지 야사인지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부분을 전해주는 건 분명하다.
시건방지게 한껏 무시했었는데 한 편의 시를 짓는 것을 보고 감복하여 그 자리에 곧바로 사죄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허균의 진정성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남의 실력을 그 사람의 계급에 상관없이 인정할 줄 알았으며, 자신보다 우뚝하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잘못을 빌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마치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이 전주 강연 중 질의응답 시간에 “하나도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매우 도발적이며 직접적인 비판에 딱 한 마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허균이나 우치다쌤이나 자신이 인정하는 상황이라면 체면에 상관없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에피소드를 통해 가까워지자 허균은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며 정말 원 없이 배웠다. 이달의 문학실력은 바로 이번 편의 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니, 그런 이달에게 배울 수 있었던 허균은 참으로 행복했을 거라 생각한다.
曲闌晴日坐多時 | 굽은 난간, 맑게 갠 날에 앉아 있을 때 많지만, |
閉却重門不賦詩 | 도리어 겹문 닫고서 시를 짓질 않네. |
牆角小梅風落盡 | 담장 모서리 작은 매화 바람에 다 떨어져, |
春心移上杏花枝 | 춘심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 갔네. 『蓀谷詩集』 卷之六 |
허균과 처음 만날 당시에 한껏 거만을 떨고 있는 허균을 앞에 두고 그의 형인 허봉은 이달에게 시 한 수 지어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운자가 떨어지자마자 잠시의 적막이 흐르나 싶었지만 곧 이달은 「호운(呼韻)」라는 시를 읊은 것이다.
1~2구에선 ‘시 짓기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치 황정욱이 시를 짓지 못해 몸을 비비꼬던 시가 절로 생각날 정도의 상황이다. 자신은 시를 짓지 않고 있지만 그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있다. 자연의 변화로 바로 그와 같은 시간의 흐름을 형상하는 것이니 말이다.
3~4구에선 ‘비는 꽃을 피우고 바람은 꽃을 떨군다’는 정서를 그대로 담아 바람에 매화를 떨구었지만 봄은 살구꽃으로 옮겨 갔다고 읊고 있다. 시를 지을 순 없지만 계절은 수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인의 시름은 깊지만 그와 상관없이 계절은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달은 그 짧은 시간동안에 운자를 듣고서 이와 같은 시를 지어냈으니 허균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엔 당시풍이 지향하는 분석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려는 시적 심상이 너무도 선명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금방까지 거만 떨며 무시했던 것을 뉘우치고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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