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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9. “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109. “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건방진방랑자 2021. 10. 2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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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하루 재워주시렵니까?”를 전하는 방법

 

 

東湖停棹暫經過 동호에 노를 멈추고 잠시 들러 가려고 하니,
楊柳悠悠水岸斜 수양버들은 치렁치렁 강둑에서 늘어졌는데,
病客孤舟明月在 병든 객의 외로운 배에 밝은 달빛이 비추겠고,
老僧深院落花多 늙은 스님의 깊은 뜰 진 꽃잎만 가득하겠지.
歸心黯黯連芳草 돌아가려는 마음에 시름겹게 고운 풀로 이어지나,
鄕路迢迢隔遠波 고향 길은 까마득이 큰 파도에 막혀 있어,
獨坐計程雲海外 홀로 앉아 갈길 따져보니 구름바다 밖이라,
不堪西日聽啼鴉 해질녘 길가마귀 울음소리 차마 못 듣겠네.

 

소화시평권상 109에 소개된 두 번째 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교수님은 시를 안다는 건 그 정황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를 해석하기 전에 한 번 쭉 읽어보고 어떤 정황인지 말해보도록 할까요?”라고 말해준다.

 

시를 보면 무작정 해석하려고만 했지, 정황이 뭔지? 그리고 제목이 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화시평을 배우면서 그 두 가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겠더라. 제목은 시적 정황을 알려주는 중요단서다. 친구의 시에 차운한 시는 답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내용의 시를 받았을지, 그리고 그 시에선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갔을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예로 든 황정욱의 시 같은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받은 시를 상상해볼 수 없다면 답장으로 쓰고 있는 황정욱의 시도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찰에서 쓴 시들은 풍진이 가득한 속세를 떠나 사찰에서 지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네라는 정서를 생각하고 해석하면 훨씬 더 매끄럽게 해석될 수 있단다.

 

제목을 통해 정황이 어느 정도 그려졌다면 이제 본문에 들어가 해석해보면 된다. 물론 제목만 알았다고 시가 바로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엔 시인의 개인적인 느낌, 현재와는 다른 삶을 대하는 방식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시를 해석한다는 건 들뢰즈의 얘기처럼 타자-되기를 얼마나 잘 수행하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 생각보단 작자의 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는 스님을 만난 작자가 집으로 떠나야 하는데 막상 떠나려 하니 아쉽다는 정조가 담겨 있는 시처럼 보였다. 그래서 교수님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시더라. 이 시에서의 정황은 작자가 스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저 오늘 하룻밤 재워주실 거죠?’라는 느낌을 담고 있는 거라고 말해줬다. 그러니 1~2구에서는 배를 타고 가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어디를 갔다 오는지, 또는 어디를 가는지는 모른다. 단지 배를 타고 가는 길에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3~4구에선 두 사람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자신이 탄 배엔 달빛만이 가득하고 스님의 뜰엔 낙화만이 가득하다. 마치 신비로운 세계를 묘사하듯 풀어내고 있어서 각자 떨어져 있지만 외롭지 않다라는 느낌으로 봤는데 그게 아니라 이 광경을 통해 나도 외롭고 당신도 외롭죠?’라는 심상을 전해주는 거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4구는 달리 해석될 여지도 있다고 했다. 그건 분명히 늙은 스님을 추켜세워주는 말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진 꽃 가득한 늙은 스님의 뜰, 그건 달리 생각하면 아무도 이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수행에 매진하는 스님의 불력을 은근히 칭찬하는 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문맥이 확 바뀐다. 5~8구에선 뜬금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다 이 구절에서 막히고 말았다. 스님에 대한 얘기를 할 거면 그걸 하고, 자신이 유랑하는 얘길 할 거면 그걸 하지 이도 저도 아니게 갑자기 웬 고향에 대한 얘긴가? 이 구절에선 계속 고향으로 가는 길이 아득히 멀다는 것을, 그러니 해질녘에야 들려오는 길가마귀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겠다는 말로 끝맺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수님도 여럿에게 왜 이렇게 끝을 맺었을까요? 말하고자 하는 게 뭘까요?”라고 물음을 던졌지만 누구 하나 대답하질 못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고향은 멀고 해는 저물었으니, 저 오늘 그 사찰에 들려도 되죠? 하룻밤 재워주실 거죠?”라는 말이 담겨 있다고 알려줬다. 그 말을 듣고 이 시를 다시 보니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고 은근히 다른 얘기만 하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게 보이긴 하더라. 이건 어찌 보면 은근함의 정서이고 간접 화법으로 말할 때 오히려 더 느낌이 선명하게 전달되는 화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수님은 이 시야말로 운치가 있고 시적 재능이 뛰어난 시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두 사람의 정황을 잘 모르니 이 시가 읽자마자 이해가 될 수 없지만, 이 둘은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시를 받으면 뭔 말인지 읽는 순간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야 친구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날 밤 이달은 스님과 진 꽃이 가득한 뜰을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처럼 참 밤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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