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봉(許篈, 1551 명종6~1588 선조21, 자 美叔, 호 荷谷)은 허엽(許曄)의 아들로 형 성(筬), 아우 균(筠), 누이 난설헌(蘭雪軒)과 함께 형제간에 시문(詩文)으로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남용익(南龍翼)은 『호곡시화(壺谷詩話)』 10에서 허균(許筠)보다 허봉(許篈)이, 허봉(許篈)보다 난설헌(蘭雪軒)의 시격(詩格)이 더 낫다고 말한 바 있다[許荷谷 …… 然詩則絕佳 且知古法 格高於筠 蘭雪軒之詩 或云 筠自作 假稱以欺世 而調格又高於荷谷 筠所不及].
그는 처음에는 시세(時勢)의 흐름대로 동파(東坡)를 익혔는데, 독서당(讀書堂)에 선발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면서 『당시품휘(唐詩品彙)』를 숙독하여 그 시가 비로소 청건(淸健)하게 되었고, 만년에 갑산(甲山)으로 귀양을 가서 이백(李白)의 시를 열심히 읽어 장편(長篇)과 절구(絶句)에서 기세가 강해졌다고 한다[仲氏詩, 初學東坡, 故典實穩熟, 及選湖堂, 熟讀唐詩品, 詩始淸健, 晩年謫甲山, 持李白詩一部, 以自隨, 故謫還之, 詩深得天仙之語, 長篇短韻, 驅駕氣勢 『鶴山樵談』].
그는 특히 아우 균(筠)에게 시를 배우는 길을 열어주어 허균(許筠)은 그에게 들었던대로 먼저 『당음(唐音)』을 읽고 다음으로 이백(李白)의 시를 읽으면 될 뿐, 소식(蘇軾)과 두보(杜甫)의 시는 그 재주만 익히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詩則先讀唐音, 次讀李白, 蘇社則取才而已. 『鶴山樵談』].
그래서 이백의 시를 시학습의 모범으로 제시한 그의 시는 특히 가행체(歌行體)에 뛰어났다【『성수시화(惺叟詩話)』】. 홍만종(洪萬宗)은 그의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8에서 장유(張維)와 양경우(梁慶遇)의 말을 빌려 허봉(許篈)의 시재(詩才)가 높은 수준의 것임을 극찬하기도 하였다[谿谷稱東國詩人中荷谷爲最, 霽湖亦言絶代詩才].
허봉(許篈)의 시작(詩作) 중에는 「경폐사(經廢寺)」(七絶), 「새하곡(塞下曲)」(七絶), 「압호정(壓湖亭)」(五律), 「간성영월루(杆城詠月樓)」(七律), 「청평산영송신곡증은상인(淸平山迎送神曲贈誾上人)」(七古), 「산자고사(山鷓鴣詞」(七古) 등이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권필(權韠)은 『국조시산(國朝詩刪)』의 뒤에 붙인 「허문세고(許門世藁)」에 「청평산영송신곡증은상인(淸平山迎送神曲贈誾上人)」을 싣고, 이달(李達)의 말을 빌려 이 시가 성당(盛唐)의 가행(歌行)을 잘 배운 것으로 허봉(許篈)의 가행(歌行) 중 가장 잘 된 것이라 하였다[蓀谷云, 此篇曲折婉轉, 深得盛唐歌行法, 荷谷歌行中, 最是第一].
여기서는 「경폐사(經廢寺)」를 보인다.
古寺經年感廢興 | 세월 지난 낡은 절에서 흥망(興亡)을 느끼는데 |
重來不復見殘僧 | 다시 와도 이제는 남은 중을 못 보겠네. |
香盤寂寂凝塵滿 | 향로가 쓸쓸하여 엉긴 먼지 가득한데, |
時有村巫點佛燈 | 때때로 마을 무당이 불등(佛燈)에 불을 켜는구나. |
낡을 대로 낡아 이제는 가끔씩 시골 무당의 굿당으로나 쓰이는 절을 지나면서 느낌을 적은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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