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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8장 외부에서 온 인도의 통일, 분열된 조국과 통일된 식민지: 식민지적 발전?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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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8장 외부에서 온 인도의 통일, 분열된 조국과 통일된 식민지: 식민지적 발전?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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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적 발전?

 

 

그렇다면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함으로써 오히려 발전을 이룬 걸까? 이것을 이른바 식민지적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남의 나라에 주권을 넘겨주고 나서 달라진 것을 발전이라 부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인도는 애초부터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다(지금까지 우리는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인도를 마치 하나의 나라인 것처럼 취급했지만, 사실 인도는 나라라기보다는 한 지역, 아대륙의 명칭이다). 앞서 여러 차례 보았듯이 인도는 역사적으로 통일기보다 분열기가 압도적으로 길고 많았다. 중국의 역사에서는 분열이 비정상적이었으나 인도의 역사에서는 통일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인도는 주권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없었으므로(나라가 아닌 대륙, 문명권에 주권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으니까) 영국에 주권을 넘겨준 게 아니었다.

 

3500여 년 전에 인도로 들어온 아리아인, 2000년 전의 쿠샨족,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인도를 장악한 델리 술탄, 아프가니스탄과 터키의 이슬람 세력, 그리고 무굴 제국에 이르기까지 인도를 지배했던 역대 왕조들은 대부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민족들이었다. 어떤 면에서 인도의 역사는 인도라는 넓은 지역을 무대로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민족이 번갈아 주인공으로 출연한 변화무쌍한 이민족의 드라마였다. 그 과정에서 일관된 인도의 모습은 힌두교라는 종교로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희석되고 혼합되었다.

 

통일된 중심이 없으므로 인도에서는 분열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영국의 지배가 순조로이 먹혀든 것이었다. 사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을 영국 제국주의의 일관된 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이 점에서도 영국의 인도 정복은 일본의 한반도 정복과 크게 다르다). 영국은 프랑스, 인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 대해서 내내 소극적인 태도였으며, 오히려 인도가 평화로워져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기 좋은 환경이 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벵골을 차지한 뒤부터 영국은 원하든 원치 않는 인도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 되었다. 인도는 오랫동안 이민족의 침탈을 겪었으나 서양 세력의 지배는 처음이었다. ‘서방의 이민족은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어차피 인도의 역사는 이민족을 수용하는 역사였다. 강력한 중심을 향해 주변 세력이 결집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주변 약소 왕국들이 동인도회사에 접근했고 자신들 간의 내분에도 영국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을 반민족 행위라든가 매국노의 짓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인도를 단일민족의 관점에서 잘못 바라보기 때문이다. 영국은 단지 과거에 인도 역사에 등장했던 큰 제국들이 수행한 역할을 했을 뿐이며, 당시 인도인들로서도 거의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보면 된다.

 

 

식민지의 흔적 이 건물은 19세기 초반에 세워져 1911년 인도의 수도가 델리로 옮겨갈 때까지 근 100년이나 총독 관저로 이용되었다. 현재의 수도 뉴델리는 델리로 수도를 옮긴 뒤 그 남쪽에 20년 동안 건설하여 완공한 신도시다. 서울의 조선총독부는 1995년에 헐렸지만 이 건물은 현재도 서벵골의 주지사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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