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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24. 복고파가 모방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본문

문집/농암잡지

김창협, 농암잡지 - 외편 24. 복고파가 모방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건방진방랑자 2019. 2. 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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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복고파가 모방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몽양의 주장은 편협하고 이반룡의 주장은 가소롭다

獻吉勸人不讀以後書, 固甚狹陋, 然此猶以師法言可也. 李于鱗, 作詩使事, 禁不用以後語, 則此大可笑. 夫詩之作, 貴在抒寫性情, 牢籠事物, 隨所感觸, 無乎不可. 事之精粗, 言之雅俗, 猶不當揀擇, 況於古今之別乎?

 

복고파는 겉모습만 따라했다

于鱗輩學古, 初無神解妙悟, 而徒以言語摸擬. 故欲學唐詩, 須用人語; 欲學, 須用人字. 若用以後事, 則疑其語之不似, 故相與戒禁如此, 此豈復有眞文章哉!

 

왕세정은 말년에 복고파에서 탈피하다

元美亦初守此戒, 至續稿不盡然, 蓋由晩年識進, 兼亦勢不行耳.

 

 

 

 

해석

 

이몽양의 주장은 편협하고 이반룡의 주장은 가소롭다

 

獻吉勸人不讀以後書, 固甚狹陋, 然此猶以師法言可也.

헌길(獻吉) 이몽양(李夢陽, 1475~1529)사람이 당나라 이후의 책은 읽지 않아야 한다고 권하였으니, 진실로 매우 협소하고 비루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법을 스승 삼은 것으로 말한 것이니 괜찮다.

 

李于鱗, 作詩使事, 禁不用以後語, 則此大可笑.

우린(于鱗) 이반룡(李攀龍)의 무리에 이르러 전고를 활용하여 시를 지을 적에, 당나라 이후의 말을 쓰지 말라고 금했으니, 이는 크게 웃을 만하다.

 

夫詩之作, 貴在抒寫性情, 牢籠事物, 隨所感觸, 無乎不可.

시를 지을 때 귀한 것은 성정(性情)을 서술하고 묘사하며 사물을 포괄하여 감촉되는 것에 따라 표현하지 않음이 없다.

 

事之精粗, 言之雅俗, 猶不當揀擇, 況於古今之別乎?

일의 정밀함과 조악함, 말의 우아함과 속됨도 오히려 마땅히 가리지 않는데 하물며 고금의 분별에 있음에랴.

 

 

 

복고파는 겉모습만 따라했다

 

于鱗輩學古, 初無神解妙悟, 而徒以言語摸擬.

우린(于鱗) 이반룡의 무리들은 옛 것을 배울 때에 애초에 신묘한 이해나 오묘한 깨달음이 없어 다만 언어로서 모의할 뿐이었다.

 

故欲學唐詩, 須用人語; 欲學, 須用人字.

그러므로 당시(唐詩)를 배우려 하면 반드시 당나라 사람의 말을 사용해야 했고, 한나라 문장을 배우려 하면 반드시 한나라 사람의 말을 사용해야 했다.

 

若用以後事, 則疑其語之不似, 故相與戒禁如此, 此豈復有眞文章哉!

그래서 마치 당나라 이후의 일을 쓰면 말이 당나라의 시어와 같지 않다고 의심했기 때문에 서로 경계하고 금지하는 게 이와 같았으니 이들에게 어찌 다시 참된 문장이 있겠다 하리오.

 

 

 

왕세정은 말년에 복고파에서 탈피하다

 

元美亦初守此戒, 至續稿不盡然, 蓋由晩年識進, 兼亦勢不行耳.

원미(元美) 왕세정도 또한 처음엔 이 경계를 지켰지만 속고(續稿)에 이르러선 다 그러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만년에 지식이 늘어났고 겸하여 또한 기세가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인용

목차 / 전문

저자 /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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