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렵지만 재밌는 책
최근에 김용옥 선생이 2009년에 쓴 『대학ㆍ학기한글역주』를 읽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지금까지 4번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느껴지는 게 매번 달라 읽을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줬었고 이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 보고는 싶어서 펴볼 때가 많지만 완독을 하는 건 쉽지가 않다.
쉽게 도전할 수는 없는 책, 그런데 늘 읽고 싶은 책
그런데 지금까지 읽은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읽었다. 그동안은 책에 나온 내용들을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무도 방대한 내용들이 종횡무진으로 쓰여 있고 先秦古經을 아우르는 방대한 책들이 인용되어 있다. 그러니 그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주희가 편집한 『大學集註』를 비판하는 건 알겠는데 어느 부분을 어떻게 비판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건 그만큼 동양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거침없이 전개되는 논리가 너무도 빠른 탓에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땐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대의만을 알게 되어 다음과 같이 기록해뒀었다.
우리가 흔히 읽고 있는 대학은 원래의 대학이 아니다. 예기 속에 있던 내용을 ‘사서’라는 기획에 따라 따로 단행본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로 뭉쳐진 내용들을 장으로 나누고 경으로 나눈 것은 송대 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중화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불교에 대항하는 신세계 문명 운동이라고나 할까) 대학과 중용을 뽑아냈고 그걸 자신들의 ‘性理’의 체계에 따라 편집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대학이란 바로 이런 체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新대학 인 것이다.
당연히 번역을 하신다면 新대학을 번역하실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나온 번역서들이 모두 그러했기에. 좀더 추가한다면, 대학혹문까지 번역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김용옥 선생님은 그런 상식을 깨버린다. 이 책은 원래 대학의 모습을 찾아 그것을 번역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 싶어서 이거나, 이미 넘쳐나는 대학 번역본들이 있기에 굳이 같은 패턴을 반복할 필요를 못 느낀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돈키호테식의 용기’ 아니었을까? 있던 길을 따라가는 건 쉽다. 모두가 걸어 반들반들 잘 닦여져 있으니,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몇 십배 몇 백배의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바로 그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09.12.27, 「새로운 지평, 그 힘든 여정으로」
책의 내용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한번 쭉 읽어보고 그 느낌을 적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한번 읽어선 도무지 이 책의 진가를 알기는 요원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들곤 책을 펼쳐들고 읽긴 했지만 끝까지 읽는 경우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2박 3일간의 ‘교사 신뢰서클’이란 연수를 받으러 갈 때도 이 책을 책가방에 넣었을 정도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이 책을 한 번에 완독하긴 쉽지 않아도 그만큼 언제든 읽고 싶은 책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그러다 2018년 3월에 전주로 이사를 하고 조금 시간이 남았을 때 오랜만에 완독을 할 수 있었고, 이번에 임용시험에서 떨어진 불운함을 겪기 전에 이 책도 한 번 블로그에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따라 읽기 시작하여 오늘에서야 일단락을 지으며 다시 완독할 수 있었다.
▲ 전주로 내려와 전주대 독서실에 와서 처음으로 봤던 게 이 책이었다.
읽고 기록하는 방식의 변화
이 책을 읽는 방식은 위에서도 잠시 얘기했다시피 본문의 내용을 따라가며 인용된 내용들을 무작정 읽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 번 읽었다 해도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최근엔 블로그를 공부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그 공부법 그대로를 이 책을 읽는 방식에 대입해보기로 했다. 그 방식이란 이 책에 인용된 원문들 중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원문은 찾아 수록하고 도올 선생의 해석을 참고하며 함께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많이 들긴 하지만 왜 그 내용을 인용했는지, 그리고 그 인용된 내용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지 더욱 절실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대학』ㆍ『학기』ㆍ『존사』를 해석하게 된 건 물론이고 여기에 인용된 『여씨춘추』나 『순자』의 내용들도 해석하게 됐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렇게 길어진 시간만큼 무얼 말하고 싶은지 좀 더 명료하게 보이는 장점은 있었다.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학문은 들인 시간만큼 폭넓게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배운다고 하면서 공부하는 시간 자체를 결코 아깝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완독을 하고 나니 다른 때 완독을 할 때보다 훨씬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은 많지만, 그럼에도 일목요연해진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은 이상 나중에 봤을 때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씩 수정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 공부를 정리하는 방식이 변함에 따라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 주희가 사대부 통치국가를 꿈꾸며 변형시킨 『대학』
도올 선생은 주희가 편집한 『대학집주』는 문제가 많다며, 원래 『예기』 속에 들어있던 「대학」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이 책은 『예기』 속에 들어있는 대학판본을 기준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 앞에서 쭉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 EBS에서 중용 강의를 하고 있는 도올 선생님.
주희의 문화변혁 운동
그렇다면 주희가 편집하여 자기의 사상체계에 따라 수정을 가한 『대학집주』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선 주희가 왜 四子書라는 걸 만들었으며, 그 속에 자신의 어떤 생각을 투영하려 했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 四子書 | 주요 저자 | 서명 |
| 孔子 | 論語 | |
| 曾子 | 大學 | |
| 子思子 | 中庸 | |
| 孟子 | 孟子 |
도올 선생이 쓴 『중용강의』라는 책에 주희가 왜 사서운동을 펼치게 되는지 드라마틱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隋ㆍ唐에서 비롯하여 주자가 살고 있던 宋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영향으로 지성인들이 너무 타락하고 너무 풀어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주자는 어떠한 새로운 질서order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 주자에게 어필된 것이 『禮記』, 『論語』, 『孟子』, 「大學」, 「中庸」인데 『論語』, 『孟子』에는 집주를 했고 『大學』, 『中庸』은 장구를 했습니다. 章이라는 것은 Chapter이고 句라는 것은 Paragraph를 말하는데, 『禮記』에 있던 대학과 中庸이란 텍스트를 보니 쭉 붙어있고 너무 복잡해서 주자가 직접 章과 句로 나누어 분류를 해서 편집한 것이죠. 여러분들은 章句라는 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大學』이나 『中庸』의 章句라는 말은 주자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서 주자가 비로소 章句化 함으로써 성립한 주자의 고유명사인 것입니다.
▲ 주희, 그는 이런 위기의식을 어떻게 타파하려 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사서였다.
그렇다. 주희는 불교가 판을 치던 수당시대는 무척 잘못된 사회란 인식이 있었던 것이고 바로 이런 문화적 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띤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을 지닌 네 가지 책이었던 것이고, 그는 유학의 흐름에 따라 유학의 종주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치하며 네 가지 책을 엮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 四子書이고 우린 흔이 이걸 ‘四書(네 가지 책)’이라 부른다.
▲ 불교의 전파는 동양사회를 바꿔 놓았다.
대학은 통일제국을 눈앞에 눈 시점에 쓰여진 책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주자가 이 네 가지 책을 선정한 이유도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송나라 시대를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위해 ‘유학’을 선택했고 공자 이후로 맹자까지 진행된 원시유학에 불교나 백가사상까지 섭렵하여 리뉴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性理學’이라는 것이다. 이때 주희가 이 책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그 전까지의 천자가 주체가 되어 온 나라를 일목요연하게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천자는 상징적인 의미만 지닐 뿐 사대부들이 중심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이다. 『대학ㆍ학기 한글역주』에선 다양한 전적들을 인용하며 『예기』 속의 「대학」이 언제 지어졌는지 결론 내린다.
「대학」은 순자계열의 사상가에 의하여 전국시대의 다양한 사상을 집대성하여 강령화시킨 걸작으로서, 그 목적은 새로 탄생하는 황제권력의 제약과 방향설정에 있었으며, 그 집필시기는 대강 『여씨춘추』의 성립시기와 일치한다.
-김용옥, 『대학ㆍ학기한글역주』, 통나무, 2009년, 196쪽
이런 결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당연히 이 책에 나와 있으니 이 책을 본다면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논의에 대해 좀 더 정리를 하고 싶기에 여기선 그 내용에 대해선 넘어가기로 하겠다. 이런 결론을 통해 왜 변형되기 전의 「대학」이란 예기 속 한 편의 내용과 주희가 변형한 『대학집주』의 해석 차이 및 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내용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 편 후기에선 여기에 대해 자세히 말하며 대학을 정리한 소감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3. 사대부를 위한 책과 통치자를 위한 책
도올 선생은 『예기』 속의 「대학」이 전국시대 말기에 쓰인 책이라고 여러 고전을 인용하며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집필시기를 상정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며, 『대학』이란 책의 내용이 그로 인해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일까?
▲ 책들에 쌓여 살 수 있다는 축복이다. 공부의 맛, 아는 재미.
사대부들을 위한 책, 『大學章句』
시기를 상정할 수 있다는 건, 저자를 상정할 수 있다는 건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기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당연하지만 어느 책이든 그 시대가 지닌 문제의식이나 사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건 지금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책이든, 방송이든,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든 알알이 박혀있게 된다. 그처럼 『대학』이란 책의 집필자와 집필시기를 알 수 있다면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도 명확해지게 된다.
우선 우리가 여태껏 받아들여 왔듯이 주희가 새롭게 편집한 『대학집주』를 통해 대학의 본문을 이해한다면 대학의 내용은 한 마디로 ‘선비들의 개인 수양을 통해 나라를 평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2번째 후기에서도 말했다시피 주희는 이전 시대까지 사회를 휩쓴 불교에 대해 불만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고 그런 사회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서四書라는 새로운 틀로 고전들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그 시작점엔 『대학』이란 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주희는 이 책에 사대부들이 개인수양을 통해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인물들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희는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는 대학의 삼강령을 통해 사대부 개인의 내면이 철저하게 닦여져 사물의 이치를 모두 간파하고 그런 깨달음을 통해 백성을 계도하며, 그에 따라 지극히 선한 본체의 밝음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메시지는 바로 ‘Dear 사대부들’에게 향해 있었던 것이었다.
▲ 주희가 자신의 사상쳬게에 따라 완전히 뜯어 고친 대학장구.
통치자들을 위한 책, 『禮記大學』
이런 식으로 이해했던, 그래서 너무도 당연히 그런 줄만 알았던 『대학』이란 책을 원래 이 책을 썼던 사람들의 관점으로 풀게 되면 전혀 새로운 의미로 풀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전국시대가 끝나고 통일제국이 등장할 무렵에 쓰여진 책으로 저자는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순자로부터 배웠던 문인들이 지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쓰여진 이유는 바로 이 책을 보게 될 통일제국의 천자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심성수양에 대해 강조하기 위한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천자에게 수신만을 강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천자에게 새로운 통일제국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천자의 권력이 폭주하는 사태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이 책에 담았다는 말이다.
| 禮記大學 | 大學章句 | |
| 저자ㆍ편집자 | 순자 계열의 사상가 | 주희 |
| 저작ㆍ편집 시기 | 전국시대 말기 | 송나라 시대 |
| 시대 특징 |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탄생할 황제권력의 제약과 방향 설정 | 수당 이래로 유입된 불교 패러다임을 유교 패러다임으로 바꾸고 사대부 국가로의 방향 설정 |
▲ 원래 대학의 의미를 살려 그 모습 그대로 찾아가다.
4. 주희가 왜곡한 『대학』을 바로잡다
말을 전해줄 대상이 명확해지고 나면 지금껏 고수해왔던 해석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러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설로 받아들였던 주희의 해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 대학의 큰 줄기다.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주희가 해석한 삼강령
주희는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이란 대학의 삼강령을 제시했다. 그는 ‘친민親民’이라 쓰여 있는 원문의 내용을 정이천의 주장을 수용하여 ‘親⇒新’으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程子曰親當作新). 우리도 1900년대 초반엔 ‘브나로드 운동’과 같은 농촌계몽운동이 있었듯이 ‘明明德’을 통해 선한 본성을 획득한 사대부들이 아직도 구습에 쪄든 백성들에게 가서 계몽해줘야 한다는 의식을 담고 있었다(新者革其舊之謂也).
그리고 또한 ‘止於至善’을 사대부들의 계몽운동을 통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지극히 선한 본성으로 귀의한 후에 그치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즉, 이러한 대학의 삼강령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내면에 있는 본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가지 개념의 차이라고 한다면 ‘明明德’은 사람의 내면의 일이고, ‘新民’은 사람이 행동하여 외부로 퍼뜨리는 외면의 일이며, ‘止於至善’은 외부로 흘러갔던 것들이 다시 내면으로 귀착되는 내면의 일이라는 점이다.
▲ 주희의 新民론은 마치 브나로드 운동을 닮았다.
원본 대학에 담긴 삼강령의 의미
이에 반해 원래 대학의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ㆍ친민親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원래 대학은 통일제국을 다스릴 통치자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했으니, 위의 세 가지 강령을 지켜야 할 사람 또한 통치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통치자의 친민에 대해 도올 선생은 “일차적 의미는 통치자와 피치자간의 친밀함이며 치자와 피치자가 서로 소외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국론이 분열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치자와 피치자의 소통은 백성 상호간의 소통을 의미하며 국론이 건강한 삶의 목적을 위해 통일되는 것을 의미한다. (270~271쪽)”이라 말했다. 이렇게 본다면 주희가 신민으로 바꾸며 등장했던 계몽주의적인 사대부들의 우월한 의식 따위는 들어설 공간 자체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통치자가 백성들과 친밀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며 그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 확연하게 달라지는 건 바로 ‘止於至善’에 관한 해석이다. 도올 선생은 이 부분을 통치자가 대동사회와 같은 이상세계를 향한 향심을 지닌 채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 풀이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래에 따로 인용을 하도록 하겠다.
‘그침’은 오직 ‘감’이라는 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침’은 ‘감’의 목적이요 이상이다. 그침을 향해서 가는 과정, 그 전체가 ‘止’란 말로써 함축되어 있다.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그것은 ‘至善’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지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명사적 실체가 아니라 그냥 ‘매우 좋다’라는 말이다. (중략) ‘지선’이란 다름아닌 이상국가다. 그것은 이상적 폴리테이아이다. 이상국가란 백성이 모여살면서 서로가 ‘매우 좋다’고 생각하는 상태,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해주며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질서가 서로에게 매우 좋다는 만족감을 주는 사회, 그 이상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용옥, 『대학ㆍ학기한글역주』, 통나무, 2009년, 271쪽
주희가 삼강령을 ‘내면에서 시작되어 외부로 나갔다가 다시 내면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파악한 반면, 원래 대학의 내용은 ‘내면의 수양으로 시작되어 외부로 뻗어나가 백성들과 소통하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결국 모두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비전을 얘기해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원래 통치자가 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요약하여 만든 아래의 표를 보면 두 『대학』의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 禮記大學 | 大學章句 | |
| 親民 | 親民-백성과의 친밀함, 소통 | 新民-백성을 새롭게 거듭나도록 함 |
| 止於至善 | ‘매우 좋다’라 생각되는 이상사회 건설 | 모든 사람이 선한 본성에 그치게 함 |
▲ [킹덤 시즌2] 4화의 장면. 세자 이창은 백성들편에 서서 싸우고 말한다. 이게 바로 親民이다.
대학을 마친다는 것,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예기』 속의 한 편이었던 이런 내용을 주희가 끄집어내어 새롭게 편집해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송나라는 천자는 상징으로만 머물 뿐 사대부들이 다스리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 맞도록 천자에게 해주는 듯한 말로 이루어진 원래의 「대학」 내용은 맘에 그다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정이천ㆍ정명도와 같은 선배들이 이미 이 책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게 편집했던 사례들을 생각하며 별다른 죄책감이나 자의식 없이 당연히 자신의 생각에 맞게 재편집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보자면 교사들이 교과서를 기본 텍스트로 생각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게 아닌 하나의 주제를 놓고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주희의 사상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대학장구』라는 책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안다면 주희가 편집하며 의미를 부여한 이 책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조금이라도 다른 해석을 하려고만 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낙인을 찍고 엄청난 형벌을 가하던 풍습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 줄 알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해석에 모든 권위를 부여한 채 붙잡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적들을 섭렵하며 여러 의문을 지닌 채 하나하나 정리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무작정 외우려 하고 이해는 안 되지만 얼핏 아는 것만으로 아는 체를 하려 했던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진정 호학好學할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방대한 양의 책을 보고 쓴 독후감이라 아직 이해가 안 된 부분도, 나의 언어로 정련하지 못한 부분도 많아 어설픈 게 사실이다. 그래도 여태껏 이 책을 읽고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해 독후감을 쓰지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처음으로 써보았다는 것에 만족하련다. 바로 이렇게 조금씩 용기를 내며 한 편씩 쓰다보면 어느 순간엔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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