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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3.10.(화) - 2020학년도 한문임용 최종 불합격기 본문

건빵/일상의 삶

20.03.10.(화) - 2020학년도 한문임용 최종 불합격기

건방진방랑자 2020. 3.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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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량이 한나라 삼걸이 된 이유와 배움의 조건

 

 

도올 선생이 쓴 교육입국론이란 책은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구도의 길을 찾아 장도를 떠난 신라의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단 여덟 글자로 포착해낸 명구다.

 

 

 도올 선생님의 교육자들에 대한 조언이 담긴 책.   

 

 

 

배우러 떠나니 신나기도 해라

 

구도求道의 길을 찾아 파랑을 격파하며 천축天竺으로 떠나는 스님들의 발걸음은 가벼웠을 것이고 감정은 두렵기보다 설렜을 것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은 그토록 새로운 세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구법승들에 비할 바 아니지만 2018년에 갑자기 임용을 준비하기로 맘을 먹고 전주로 내려올 때의 내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두렵기보단 설렜고 비관적이기보다 낙관적이었으며 막막하기보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예전에 다섯 번이나 도전하며 한 번도 1차 합격의 벽조차 넘지 못하고 끝을 냈으니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자 도전인 셈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한문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좋기만 했다. 단재학교에서 보낸 6년이란 시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 그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재학교는 나에게 공부의 재미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역동성을 체득하도록 만든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6년 간의 서울 생활을 마무리 하고 전주로 돌아왔다. 한문공부의 실패를 맛본 곳에서 다시 시작.   

 

 

 

장량을 통해 본 배움의 조건

 

2016년에 박동섭 교수의 트위스트 교육학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박동섭 교수는 배움은 무엇인가?’라는 매우 난해하면서도 우리 사회엔 이미 답이 주어져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줬었다. 하지만 이때 들은 이야기는 여태껏 알고 있던 내용을 하나하나 무너뜨려줬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좋은 점수를 맞기 위해 배운다’, ‘교육과정에 명시된 것이니 배운다’, ‘모르는 바보 취급당하기 싫으니 배운다라는 답안이 이미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지금껏 배워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박동섭 교수는 세 사람의 일화를 통해 그런 식으로 왜곡된 배움의 의미를 바로 잡으려 했었다.

 

 

 트위스트 교육학을 듣던 때의 모습. 저녁에 학교수업을 마친 교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 인용한 사람은 바로 장량이란 사람이다. 중국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량이란 이름에 관해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량은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도운 인물로 소하ㆍ한신한나라 삼걸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런 업적을 이룬 인물은 과연 어떻게 배웠으며, 무엇을 배운 것일까? 바로 우리의 물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을 만든 킹메이커인 셈이니, 그들은 어려서부터 강남 3구에 살며 유명한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며 실력을 쌓았을 것이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초특급 과외선생님들을 붙여 부족한 부분이 없도록 철저하게 보강했을 것이다. 그 결과 소위 명문대를 나와 주요 정치인들과 연줄을 맺게 됐을 것이며 그에 따라 자연스레 킹메이커의 역할 또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성공신화를 따라 장량의 배움에 대해 상상하게 되지만, 장량의 배움은 이런 식의 루트를 완벽하게 거부한다. 거기엔 바로 그의 스승인 황석공이란 비범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황석공이 장량을 가르친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장량이 어릴 때 흙다리 위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됐는데, 황석공은 다짜고짜 신발을 던져 놓고서 어린놈아 신발 좀 주워 와라.”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친 사람이려니 생각하며 가던 길 계속 가던지, 112로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그도 아니면 주먹부터 날리고 볼 것이다. 하지만 장량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순간 일어났던 분노를 가라앉히고 신발을 주워다 줬다. 그러자 황석공은 그를 기특하게 여기며 5일 후에 이곳에서 다시 보자고 말을 한다.

5일 후에 그 장소로 장량은 나갔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황석공은 어린놈이 어른보다 늦는 구나.”라고 다짜고짜 화를 내며 5일 후에 다시 오라고 말을 하며 휙 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리고 자꾸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자신을 몰아넣는 저 늙은이가 얼마나 짜증났을까. 그런데도 5일 후에 장량은 괜한 트집이라도 잡히지 않으려 새벽에 그곳으로 갔고 그제야 노인은 흡족해하며 태공병법太公兵法이란 책을 줬다.

 

 

 무작정 신발을 떨어뜨린 황석공과 그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장량.  

 

 

 

겸손함과 배움

 

여기서 배움의 첫 번째 속성을 알게 된다. 배움의 고갱이는 절대로 태공병법太公兵法이란 책에 있지 않고 그 책을 받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장량은 부유한 집에서 자라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맘껏 할 수 있어 삶에 간절함 따위는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그는 황석공을 만나기 전까지 최상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왔을 게 뻔하고 그에 따라 늘 인정만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기고만장한 마음이 있을 때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피어나지 않는다. 배움은 간절한 마음, 그러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자기 인식에서부터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겸손할수록, 모르는 게 많으니 알고 싶은 게 많다고 생각할수록 배우고자 하는 욕망은 커져가게 마련이다. 황석공이 장량에게 신발을 던진 것이나 늦게 왔다고 트집을 잡은 것은 바로 장량의 기고만장한 마음,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한 거만한 마음을 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황석공의 교육법은 장량이 미친 노인네네.’라고 거부했다면 성립되지 않는 교육법이다. 그만큼 황석공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장량의 그릇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 장량 또한 잘 참고 묵묵히 그의 가르침을 따라간 덕에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장량은 한나라 삼걸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그처럼 다시 임용을 준비하며 장량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싶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좀 어폐가 있다. 솔직히 7년이나 한문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 나의 경우엔 거만할 만한 꺼리조차 없었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이미 충족되어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2018년에 전주로 내려와 오랜만에 한문공부를 하며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이유로 절로 겸손하게 배울 수 있었다.

이때 나에게도 황석공 같은 한문공부의 열정을 맘껏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김형술 교수. 운 좋게도 그 당시 김형술 교수는 불특정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소화시평 스터디를 진행 중이었고 한문공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막막해하기만 하던 나는 그 스터디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한문 실력은 개뿔 없는 나를 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만은, 그런 내색은 전혀 없이 하나하나 제대로 알려줬고 발표까지 준비하게 하며 이끌어줬다. 그에 따라 금방 한문 공부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고 알아가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김형술 교수는 일반적으로 한문만 공부했던 사람들과는 생각의 결을 달리한다. 그래서 한문을 공부하며 미술관이나 콘서트 장에도 가보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모님께서 만든 패치워크patchwork라는 예술작품을 보여주며 고민했던 시간만큼, 열중했던 순간만큼 그만큼 값어치 있는 작품이 나온다며예술작품과 한문공부의 공통점을 말하기도 하며 크라잉넛 콘서트장에 가죽재킷을 입고 온갖 장신구들을 차고 가서 신나게 놀고 온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과 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하기도 한다. 황석공의 교수법은 장량의 거만함을 제거하고 올바른 배움의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해줬듯이, 김형술 교수의 그와 같은 인생관과 학문관도 나에게 많은 상상력을 안겨주며 한문공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방학인데도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다들 열정이 보통이 아니다.  

 

 

 

2. 스티브 잡스의 좌충우돌 인생론과 배움의 조건

 

 

2018년에 7년 만에 다시 한문공부를 시작하고 임용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데엔 배움에 대한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단재학교에서 근무를 하며 참으로 여러 강의들을 따라 다녔고 그곳에서 배움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배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두 번째로 영향을 준 사람은 흔히 하는 말로 모르면 간첩이라 불려질 법한 사람이다. 바로 아이폰과 아이팟을 만들어 애플을 세계 정상급 회사로 만든 불세출의 인물인 스티브 잡스.

 

 

잡스의 공부론은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시간낭비라는 관념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리라. 이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도 않다는 것을, 그런 만큼 맘을 단단히 먹고 성취하는 그 순간까지 다른 건 일절 하지 말고 한 길만을 우직하게 파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경우는 한문이란 과목으로 중등학교 교사가 되려 맘을 먹었으니 목표가 성취되는 그날까지 한문공부교육학 공부 외에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을 본다거나 임용과는 무관한 다른 방식의 스터디를 만들어 진행한다거나 하는 건 모두 시간낭비가 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로 2009년에 4수생으로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그때 한참 5명으로 이루어진 임용스터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무엇에 끌렸던지 한 달 동안 국토종단을 떠나겠다고 하자 스터디멤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뜯어말릴 지경에 이르렀다. 나야 이미 마음이 동했으니 그런 식의 선포를 하는 게 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스터디 멤버들의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발언이었으리라. 이제 스터디가 정상화되어 제대로 공부하나 싶었는데 한 멤버가 자기 맘대로 그런 분위기를 흔들어놓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어쩔 텐가? 이미 맘을 정한 녀석을 그대로 멈추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맘은 내키지 않지만 보내줬고 한 달 간 여기저기 맘껏 걷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최근에 그 당시 스터디 멤버였던 임명희 누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10년 여가 흘렀지만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이야기는 맛깔나더라. 그때 여러 이야기를 하는 중에 국토종단을 떠났던 당시의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고 명희 누나는 너도 참 평범하진 않고 별나!”라고 한 마디로 정의해줬다. 그 말을 얼핏 들으면 유별난 놈이야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다.

맞다, 어찌 보면 과거가 불행했다고 생각한 탓인지 가장 평범하게 살길 바랐었다. 아마 이른 시기에 임용에 합격했다면 정말로 한 길만 우직하게 가는 답답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고 그런 삶을 학생들에게도 최고의 삶인 양 이야기해줬겠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매번 시험엔 떨어졌고 그로인해 여러 삐딱선을 타게 되면서 별난 놈이 될 수 있었다.

 

 

2009년 2월 28일엔 함께 모악산에 올랐던 멤버들. 한 달 동안 잘 기다려줬다. 

 

 

 

시간낭비라는 관념을 깨부순 스티브 잡스

 

나의 이런 식의 별남은 스티브 잡스의 삶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하다고 할 정도로, 스티브 잡스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며 일반적인 성공의 길에서 벗어났으며 그가 만든 애플이란 회사에서 쫓겨나며 인생의 씁쓸함을 맛봐야만 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그 순간,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자 가장 창의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저주하는 사람은 자신의 남은 삶을 좀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을 소중하게 가꿔간다. 스티브 잡스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경영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삶의 이력에서 벗어나 캘리그래피를 배우며 미술에 관심을 둔 것이다. ‘기계와 미술’, ‘프로그래밍과 예술사이엔 왠지 하나의 공통점도 없어 보일 정도로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니 그 당시의 스티브잡스를 보던 주위 사람들은 저 사람 드디어 정신줄을 놨어라고 생각하거나 재기할 생각을 해야지 괜한 시간낭비하고 있네라고 비난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티브잡스는 글자에 미술을 더한 캘리그래피를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배움의 결과는 결국 IBM 컴퓨터가 장악한 획일화된 컴퓨터 글꼴에 개성을 입힌 트루타입 글꼴을 개발하여 애플컴퓨터의 정체성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간낭비쓸데없는 짓이란 사람들의 평가를 스티브잡스는 그의 삶을 통해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당시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도, 알 수도 없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마치 하나로 꿰어지며 알게 되는 것을 박동섭 교수는 사후적 지성이라고 정의했었다.

 

 

모든 일을 과정 중에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할 지성도 있다.  

 

 

 

6년 간의 고민이 한문공부에 영향을 주다

 

나에겐 6년 간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시기가 바로 이와 같은 좌충우돌의 시기라 할 수 있다. 한문은 전혀 보지도 않고 임용시험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고 6년이란 시간을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교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한문과는 하등 상관없는 고민들을 하며 공부를 했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여러 활동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재밌게 지냈다.

6년 간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문공부를 하겠다고 이 길로 들어설 때 가슴 한 구석에선 완전 백지상태가 된 내가 한문으로 임용을 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6년을 허투루 산 것은 아니고 그만큼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정리를 하며 키워온 기본기가 있으니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라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라는 낙관론으로 결단할 수 있었다. ‘늦음이란, ‘시간낭비, ‘헛짓이란 말은 삶을 평가하는 말로는 부적절하다.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가치로 엮이고 의미를 가질 때가 오니 말이다. 그 결과 2년 동안 최상의 환경에서 맘껏 한문의 흥취를 만끽하며 공부할 수 있었다.

 

 

단재학교에선 '영화팀'교사'로 활동했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중 다큐를 촬영하고 있는 나의 모습.

 

 

 

3. 맹상군을 통해 배운 관계론과 배움의 조건

 

 

7년 만의 임용을 결심할 수 있도록 이끈 세 번째 배움론의 주인공은 바로 맹상군孟嘗君이다. 우리에겐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성어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과연 맹상군은 어떤 배움론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며, 그게 나에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맹상군은 식객을 무려 3000명이나 두었었다. 많다는 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어떤 구성이냐가 중요하다. 

 

 

 

관계학을 통한 배움론

 

맹상군은 전국시대 말기에 활약한 인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형제가 무려 40명이나 되었으며 특출난 재능도 없었기에 아버지의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를 찾아온 식객들을 대접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찾아온 식객이 볼품없더라도, 내세울 게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대우해주고 최대한 배려해줬다. 그러니 찾아온 식객들이 맹상군의 인품에 반해 맹상군을 위한 식객으로 아예 눌러 앉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고 전성기 시절엔 식객이 300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맹상군의 모습을 보는 이들 중엔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식객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부터 식객들을 모아 반란을 기획하고 있다는 모함까지 사람들은 맹상군 무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합지졸로 모인 줄만 알았던 식객들이 아래의 인용문과 같이 위기가 닥친 상황이 되자 발군을 재주를 뽐냈다.

 

 

전영은 설땅을 봉분 받았으며, 아들의 이름은 문으로 식객이 수천 명이나 되어 명성이 제후들에게 소문이 나 맹상군이라 불렸다고 한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먼저 제나라에 폐백을 보내 뵙고 싶다고 알렸기에 진나라에 이르니 다짜고짜 가두며, 맹상군을 죽이려 했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하는 여자에게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 여자는 말했다. “그대가 갖고 있는 흰 여우 가죽을 갖고 싶습니다.” 대개 맹상군이 일찍이 소왕에게 드렸기에 다른 가죽이 없었다. 식객 중엔 좀도둑질을 하는 이가 있어서, 진나라의 창고에 들어가, 가죽을 훔쳐오도록 한 후에 그 여자에게 줬고, 그 여자도 임금에게 말을 하여 풀려나게 됐다.

곧장 도망쳐 성과 이름을 바꿨고, 한 밤 중에야 함곡관에 이르렀다. 함곡관의 법에 닭이 울어야 손님을 내보낼 수 있다는 게 있었는데, 진나라 왕이 후회하여 쫓아올까 두려웠다. 식객 중엔 닭 울음소리를 낼 수 있는 이가 있어서 소리를 내니, 닭이 모두 따라 울어, 마침내 전을 보냄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온 지 한 식경 만에 추격하는 이들이 과연 따라왔지만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田嬰封於, 有子曰, 食客數千人, 名聲聞於諸侯, 號爲孟嘗君,

秦昭王聞其賢, 乃先納質於以求見, 至則止囚, 欲殺之. 孟嘗君使人, 昭王幸姬求解. 姬曰: “願得君狐白裘.” 孟嘗君嘗以獻昭王, 無他裘. 客有能爲狗盜者, 入秦藏中, 取裘以獻姬, 姬爲言得釋.

卽馳去變姓名, 夜半至函谷關. 關法, 鷄鳴方出客, 秦王後悔追之 客有能爲鷄鳴者, 鷄盡鳴, 遂發傳. 出食頃追者果至, 而不及. -十八史略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사람관계라는 건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선 직업, 돈의 많고 적음, 가치관의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사귀곤 한다. 그런 이면엔 저 사람을 사귀어두면 언젠가 유용하겠지라는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맹상군처럼 별 것 없는 사람들과 사귄다면, 다짜고짜 사람관계도 미래를 위한 투자의 한 부분이니 아무나 막 사귀지 말고 좀 따져보고 사귀라고.”고 충고해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생각처럼 쉽게 판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가장 절친할 것 같고 나에게 유용할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내가 힘든 상황에 몰렸을 땐 나 몰라라할 수도 있고, 지금은 그저 스치는 인연 정도로 생각되는 사람일지라도 막상 나의 상황을 알게 됐을 땐 그 누구보다도 더 진실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세상의 기준만으로 만나선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바로 위에 인용한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위기의 순간에 도움이 됐던 인물들은 평상시에 뭐 저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느냐?’고 충고를 해줬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위기의 상황에선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맹상군이 돌파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또한 십팔사략풍환馮驩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연이어 나온다. 풍환은 맹상군이 최상급 대우를 해주지 않자 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몇 번이나 되뇐 끝에 최상급 대우를 받게 된 인물이다. 맹상군은 식객은 불어나는데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론 그들을 먹이기에 부족하게 되자 풍환을 해결사로 파견한다. 풍환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다루진 않겠고 궁금하신 분들은 위에 걸린 링크를 따라가 내용을 보면 된다. 어쨌든 풍환의 해결법으로 맹상군은 설 땅의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관계론을 생각할 때 맹상군을 떠올릴 수 있다면, 뭔가 다른 관계론도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임용의 길에 다시 들어서도록 이끌어준 관계들

 

이처럼 사람 관계 또한 배움론의 한 방면이 된다는 걸 맹상군의 일화를 통해 배울 수 있었고 나에게도 세 명의 인연들이 다시 임용의 길로 들어서는 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사람은 백진규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게 된 친구로 지금까지 만나고 있으니 20년지기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 20대 이후에 좌충우돌하며 여러 경험을 하는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데엔 이 친구의 도움이 컸다. 진규는 만날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주제들을 던져주며 새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는 친구다. 그래서 나도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이를 때면 진규가 나눈 말들을 상기하며 걱정될지라도 떨릴지라도 당당히 선택하며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은 이다겸이다. 지금은 한문 교사가 되어 충남에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사람인데 2018년엔 임용을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1차엔 당연한 듯 붙었지만 최종에선 연거푸 떨어져서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게 다겸이에겐 분명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지만 새롭게 임용을 준비해야만 하는, 한문에 대해 모든 걸 까마득히 잊어버린 나에겐 좋은 기회였다. 한문 임용 1차 시험을 6번이나 통과한 사람의 노하우를 배우며 임용을 위한 한문공부의 맥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 덕에 1년 만에 한문공부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사람은 강경수 누나다. 늦은 나이에 한문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한문교사로 재직하고 있기까지 하다. 순탄하게 임용이 된 게 아니기에 나에게도 여러 번 임용공부를 다시 하길 주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재학교에 다니며 대안교육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던 때라 그 말은 마치 니가 가는 길은 한계가 있다는 말처럼 들려서 매우 섭섭했었다. 하지만 그 말의 속뜻은 니가 5년 동안 임용을 공부하며 해온 것들이 아깝고 자신도 이렇게 해보니 결국 합격했듯이 너도 해보라는 것이었다. 임용을 다시 해보라는 말을 3번 정도 들었지만 결정을 내리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에 단재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그런 충고들을 현실적인 충고로 받아들이게 됐고 결국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요소요소엔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이 숨어 있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전엔 꿈꿔본 적도 없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관계를 통한 배움론의 핵심은 삶의 굽이굽이에 숨겨져 있는 인연들에 있는 셈이고 그만큼 만나는 인연들에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셈이다.

 

 

인연과 어떻게 마주치느냐에 따라 삶의 행로가 바뀐다. 

 

 

 

4. 2019년에 찾아온 최상의 임용고사 조건

 

 

학생 시절엔 배운다고 하는 말이 그렇게 달갑거나 좋은 말은 아니었다. 학생의 본분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권한도 없이 배워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그런 식의 배움은 늘 성적이란 매우 객관적으로 보이는 지표로 게시되어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 시절에 공부했던 것들은 배움의 측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이미 앞에서 말했던 장량이나 스티브잡스맹상군의 일화를 통해서 배움이라는 건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넘어서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스승을 통해 겸손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넓고도 넓은 인식의 깊이를 배울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삶의 국면에서 배울 수도 있다. 배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배우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고 나니 뭐든 배우고 싶고 뭐든 알아가고 싶더라.

 

 

임고반 7번 자리에 앉아 꿈을 키웠다.  

 

 

 

어렵던 한시가 편해지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신라 스님들이 천축으로 배우러 떠나며 읊었던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라는 말이 그래서 더 맘에 와 닿았다. 배우려는 열기, 그리고 그걸 통해 자신이 한층 성숙해질 거란 기대, 그러고 나면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길 거란 바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만 리의 파랑을 힘껏 격파하며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2018년 임용의 길에 다시 들어섰을 땐 나 또한 떨리고 설렜던 것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공부를 하며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3을 보내고 4월부턴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소화시평 스터디에 들어가 막고 품으며 무작정 배우려 했었다. 한문 실력이란 게 하나도 없으니 기본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교수님이 알려주는 걸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꽉 찬 지식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나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말하는 모든 내용들이 신기하고 재밌기만 하기에 쏙쏙 빨아들일 수 있다.

예전에 5년 동안 임용고사를 준비를 할 때 나에게 가장 큰 절망을 안겨준 영역은 단연코 한시영역이었다. 경서는 필수이기 때문에 많이 봐두는 게 중요했고 산문은 해석이 되느냐의 여부가 중요했다. 그러니 한문 독해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 두 영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시는 도무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무얼 봐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더라. 한시는 짧게는 20자 정도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해석도 쉽지 않았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거의 필에 따라 그럴 것이다라는 감으로 풀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점수를 까먹는 과목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한시 영역을 교수님과 함께 스터디를 하며 소화시평이란 하나의 책을 공부하게 되니 시평집을 볼 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알게 됐고 한시를 감상할 땐 어떤 부분에 유념하여 봐야하는지 알게 됐다. 스터디 시간엔 모든 게 새롭고 알아야 할 것 투성이라 인지 과부하로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을 마치고 정리하고 있노라면 한시라는 게 정말 맛깔나는 구나’, ‘시평집을 보는 게 한시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과정을 통해 소화시평을 한 권 보고 나니 더 이상 한시영역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단순히 고통스럽지 않은 정도를 넘어 한시를 알고 싶어졌고 여러 시평론집을 보고 싶단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에 따라 앞으론 허균의 성수시화, 홍만종의 시화총림도 차근차근 공부해나갈 것이다.

 

 

소화시평 스터디에 모인 아이들. 여름의 뜨거운 열기 떄문인지,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기 때문인지 뜨끈 뜨끈하다.  

 

 

 

한문공부의 블로그 활용도가 높아지다

 

이런 변화와 함께 블로그 활용에도 변화가 따라왔다. 2018년부터 나의 특기인 기록하는 습관을 십분 활용하여 블로그를 한문공부장으로 썼었다. 그렇게 1년을 공부하며 노하우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기는 과정 또한 마무리 되며 어떻게 공부장으로서 접근성을 높일 것인가?’하는 고민이 따랐다.

티스토리로 옮길 때 당시엔 어떻게든 조회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다 내가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그러려면 언제든 원하는 글을 찾을 수 있어야 했고 막상 찾았을 땐 컴퓨터로 보던지, 스마트폰으로 보던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목차표를 더욱 다듬어 언제든 보고 싶은 글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산문이나 한시를 보기 편하도록 만들기 위한 기본틀도 정해 그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편집했다. 최대한 많은 글을 한 번에 올리지 말 것, 14포인트로 글자를 키워 볼 때 시원시원하게 보이도록 할 것, 그 글과 관련된 내용들은 인용이란 것을 달아 링크를 걸어놓을 것 등이 그때 마련된 내용이었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 썼던 글들도 편집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마치고 나니 공부장으로서 활용도는 훨씬 올라가더라. 그리고 언제든 찾고 싶은 문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고 그에 따라 다른 것을 공부할 때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블로그를 공부장으로 활용하며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 걸 볼 수가 있다.  

 

 

 

임용 합격을 위한 최상의 환경까지 마련되다

 

이렇게 한문 공부도 점차 익숙해지고 편해졌으며 블로그를 활용하며 언제든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만 쭉 공부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달리 한문임용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기대마저 품게 했다.

그런데 마치 나의 이런 공부의 대한 열정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2019년 한문교사 선발인원엔 엄청난 변화마저 따랐다. 그건 바로 매년 줄기만 하던 한문교사 선발인원이 이때엔 2.5배나 상승하며 68명이나 선발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전해엔 26명만을 선발했으니 생각도 하지 못한 최상의 여건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 따라 경쟁률201에 가깝던 상황에서 10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며 실력도 쌓았고 선발인원까지 늘어나며 경쟁률까지 매우 낮은 환경까지 마련되었다. 바로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운임과 동시에 진정한 실력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보란 듯이 기회가 온 것이다.

 

 

세상에 70명 가까운 인원을 뽑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렇게 좋을 수가.

 

 

 

5. 반절의 성공과 반절의 실패

 

 

2년을 공부하며 나름 내실이 갖춰진 실력과 70명 가까운 인원을 뽑는 최상의 환경 속에서 한문과 임용 1차 고사를 봤다. A형 시험지를 풀고선 어렵다는 느낌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론 작년시험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 번은 사고가 날 뻔한 하자 지금은 말고 1차 결과 여부는 보고 갈 테니 그 이후에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1차 결과는 합격이었다. 지금껏 과거에 다섯 번 준비했던 것까지 통틀면 7번 도전을 한 셈인데, 최초로 1차 합격을 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결과 발표 후 2차 시험까진 3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으로 2차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니 그것에 감사해하며 신나면서도 재밌게 3주의 시간을 보내며 2차를 준비했다. 1차 시험 때와는 달리 적은 시간 내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뿐더러, 수업시연과 면접에 대한 기본기를 갖춰야만 하니 결코 쉬운 순간은 아니더라. 이틀 간 진행되는 2차 시험을 처음으로 보며 5명의 감독관들 앞에서 여태껏 쌓아온 것들을 무지 떨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풀어놔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충분히 느꼈다. 그래도 처음 경험하는 2차 시험임에도 물러서지 않고 할 것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이 글에 나타나 있듯이 불합격이었다. 거의 목표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나니 여러 감정이 사무치더라. 최상의 순간을 누렸기 때문인지 패배감은 더욱 더 크게 느껴졌으며, 공부에 대한 의욕도 한풀 제대로 꺾이고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는 걸 이런 상황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어쩔 텐가, 이런 실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여기서 주저앉아 평생 원망의 순간으로 머물 것인가 하는 것이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을.

 

 

떨어졌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절반의 성공

 

임용을 준비하면서 스터디를 안 해본 적은 없었다. 예전에 5번의 임용을 볼 때도 좋은 스터디원들이 있어서 매년 스터디를 꾸릴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2018년에 다시 임용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맹상군의 관계론이란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임용 1차 시험에 꾸준히 붙던 다겸이와 스터디를 꾸려 도움을 받았다. 한문에 대해 쌩초보에 불과한 사람과 베테랑급 실력을 지닌 이와의 스터디는 그 자체로 희귀한 스터디라 할 만했다. ‘거인의 어깨에 타고 간다는 말로 표현할 정도로 한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2015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예전에 공부할 땐 7차 교육과정이었고 마지막 시험을 볼 땐 07 개정 교육과정이었음).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작년에도 당연히 스터디를 조직하여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만들어진 스터디팀이 오해로 와해되어 버렸다. 함께 공부하고 싶던 인원들에게 직접 전화해가며 만들었던 터라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뇌관으로 순식간에 깨져버리니 더 이상 스터디를 구성하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임용공부를 시작 이후 최초로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며 임용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 공부를 한다곤 하지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작 1년 공부를 한 것뿐이니 아직 보지 못한 문장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 좀 더 다듬고 싶은 내용들이 있었다. 더욱이 2008년에 임용고사 체제가 3차 시험 체제로 변하면서 한문과 교수들이 함께 모여 한문공부의 범위표를 만들며 각 영역별로 세부작품들을 추린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출제되는 문제들은 이 범위표에 국한되진 않지만 그래도 이때부턴 임용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 정도는 보고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고 나 또한 되도록 이면 이 범위표 내의 작품들은 봐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자는 생각도 하게 됐다.

공부하고 싶던 것들과 범위표에 제시된 작품들이 주어져 있으니 혼자 공부를 한다 해도 느슨해지진 않을 것 같더라. 솔직히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나에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과감한 도전이었지만 1년 동안 신나게 그 과정들을 쌓아갈 수 있었다. 물론 나만의 방식대로만 공부를 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교수님이 진행하는 소화시평 스터디에는 함께 참여하여 나의 실력 없음을 당당히 드러내었고 바닥부터 하나하나 수정해나갈 수 있었다.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는 나에겐 오아시스와도 같았던 것이다.

절반의 성공이라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스터디를 하지 않고 혼자 공부를 하며 만들어낸 결과이니 말이다.

 

 

임용 시험을 봤던 교실. 의자도 책상도 맘에 들었다.    

 

 

 

절반의 실패

 

처음으로 임용시험에서 1차 합격을 했다는 기쁨을 누리긴 했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던 날 합격이란 문구를 보고 설레기보단 주어진 성적을 보고 깊은 시름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커트라인에서 몇 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충남의 경우엔 11명을 뽑는 데 17명이 뽑혔기 때문이다. 6명은 떨어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거의 끝자리쯤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4~5명을 역전해야 하는 상황이니 성공에 도취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진 참상을 되돌아보면 모든 건 교과 교육학을 어설프게 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올해 1차 시험은 특이하게도 예년 시험과는 확연히 달랐다. 예년 시험에서 교과 교육학 문제는 단순히 암기한 내용을 써넣는 정도로 나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던 데에 반해 올해는 교과교육학의 출제 %도 대폭 늘었을 뿐더러, 응용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과 교육학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암기하고 있어야 하며, 거기에 덧붙여 한문 문장을 보고 교과교육학을 접목시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외운다고 외웠지만 관련학습에 관련된 것들은 너무 자질구레하다고 생각해서 대충 보는 정도로 공부하고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걸 써야 하는 문제가 꽤 여러 문제가 나왔는데 외우지 않았던 까닭에 답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를 테면 B4번 문제에서 그림ㆍ만화 활용하기라 써야 하는데, ‘네컷 만화 활용하기라고 적는다든지, B3번 문제에서 가상 인터뷰하기라 써야 하는데 가상 인물 인터뷰하기라고 적는 경우가 그것이다.

A6번 문제의 경우는 문법을 묻는 문제인데, 무얼 묻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전혀 엉뚱하게 답을 쓰고 말았다. 막상 시험이 끝난 후 이 문제를 다시 봤을 땐 너무도 명확한 답들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만큼 시험이란 중압감에 눌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힘조차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1차 시험이든 2차 시험이든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있는 실력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탁월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1A형 시험에선 너무도 어렵다는 생각만 들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도망치기에 바빴으며 2차 면접 시험에선 5명이나 되는 감독관의 시선을 외면하며 적어놓은 답만을 주구장창 읊어대기에 바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와 같이 주어진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닥뜨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어떻게 공부하고 자신감을 찾느냐에 따라 그런 마음가짐 또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수업실연을 하 던 날. 면접 시험을 보며 나름 익숙해졌는지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2020년에 대한 기대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며 7년 차를 맞이하던 때에 갑자기 책상에 앉아 내둥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임용 공부이긴 해도 하루 내내 공부만 할 수 있는 현실이 주어졌고 이제 그런 시간을 2년째 보낸 것에 불과하다. 떨어졌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시 1년을 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감히 생각해보련다. 1년 동안 충실히 보고 싶던 문장들도 보고 정리하고 싶던 글들도 정리하며 공부해나갈 것이다. 과연 올해 임용시험이 끝나고 나선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기대하며 또 다시 주어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전주대  정문에서 본  시가지의 모습. 초점이 나갔지만 보름달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의 앞날도 환하게.    

 

 

 

 

인용

지도 / 공고문 / 20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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