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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비슷한 것은 가짜다 - 11.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본문

책/한문(漢文)

비슷한 것은 가짜다 - 11.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0. 3. 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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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씨를 그저 맑음’ ‘흐림으로만 적지 말고 설명적인 기술로 적어오라고 한 모양이다. 몇 달이 넘게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그 날씨의 묘사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 난 구름과 둥실 둥실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 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한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어버이날을 축하하듯 해가 눈치 있게 제법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하늘에서 인사를 한다.” “구름이 서럽거나 우울한 일이 많았던 모양인지 얼굴이 어둑어둑하고, 마침내는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다.” 한동안 나는 딸의 일기장 읽어보는 재미로 지낸 적이 있다.

이번에 읽으려는 자소집서自笑集序는 제목부터가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웃는다, 무엇을 웃는다는 것인가? 자기가 지은 것이지만 읽어보니 부끄러워 스스로 웃는다는 얘기일터이지만, 그것을 문집으로 엮는 심사는 또 무어란 말인가? 겸손 끝에 은근한 제 자랑이 담긴 웃기는 제목이다. 자소집은 누구의 문집인가? 약관의 역관인 이홍재李弘載의 문집이다. 그는 사역원司譯院에 소속된 중국어 역관이었다. 중국어나 열심히 배우면 충분할 그가 갑자기 제 문집을 들고 와 연암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한다. 이 또한 웃기는 노릇이 아닌가?

 

 

! 를 잃게 되면 초야草野에서 찾는다더니[각주:1] 그 말이 옳다. 이제 천하가 머리를 깎고 옷섶을 좌로 여미게 되어[각주:2], 한궁漢宮의 위의威儀를 알지 못하게 된 것이 이미 백여 년이 되었다. 홀로 연희演戱하는 마당에서만 그 검은 모자와 둥근 소매, 옥띠와 상아 을 본떠 장난치며 웃곤 한다. ! 중원中原의 유로遺老들은 다 스러졌으니, 얼굴을 가리고서 차마 이를 보지 못하는 자가 있기나 하겠는가? 또한 이를 즐겨 구경하면서 그 옛 제도를 떠올려 보는 자가 있기는 할 것인가?
嗟乎! 禮失而求諸野, 其信矣乎. 今天下薙髮左袵, 則不識漢宮之威儀者, 已百有餘年矣. 獨於演戱之場, 像其烏帽團領玉帶象笏, 以爲戱笑. 嗟乎! 中原之遺老盡矣, 其有不掩面而不忍視之者歟. 亦有樂觀諸此, 而想像其遺制也歟.

연암이 꺼내드는 첫 마디는 를 잃게 되면 초야草野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공자의 말씀이다. 시대가 변하고 보니 예전 순후하던 시절의 예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잃어버린 예법을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그것은 서울에는 이미 남아 있지 않고, 시골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 행세하는 서울 사람들은 모두 상놈이 되고 말았고, 저 시골의 무지렁이 백성들이 오히려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말씀이다.

어디 그뿐인가? 옛 중국의 의관과 문물文物은 이제 연극배우들의 복장이나 소품 속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오모烏帽에 단령團領, 즉 검은 모자에 소매 둥근 옷을 입고서 옥대玉帶를 두르고 상아로 만든 홀을 잡고 있던 명나라 대신들의 위엄있던 기품은 모두 오랑캐의 변발호복辮髮胡服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이제 와서 그것들은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복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벌써 예전의 법제를 까맣게 잊고서, 황비홍처럼 앞머리를 빡빡 깎은 변발을 하고 여진족의 옷을 입고, 배우들의 과장스런 몸짓에 넋 놓고 앉아 연신 실없는 웃음만 터뜨릴 뿐이다. 그러니 까맣게 잊고 있던 제 조상의 복식을 연극 무대에서 느닷없이 만나본들 무슨 새삼스런 감흥이 일 까닭이 없다.

 

 

 

 

 

  1. 班固의 『漢書』 「藝文志」에 “공자께서는 ‘예를 잃으면 草野에서 이를 찾는다’고 하셨는데, 지금에 聖人과의 거리가 아득해지고 道術이 폐하여져 다시 찾을 곳이 없으니, 저 九家의 사람들은 오히려 草野에서 병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仲尼有言, ‘禮失而求諸野’, 方今去聖久遠, 道術缺廢, 無所更索, 彼九家者, 不猶癒於野乎?”라 하였다. [본문으로]
  2. 『論語』「憲問」 18에 ‘被髮左袵’의 말이 있는데, 머리를 풀고 옷섶을 좌로 여민다는 뜻으로 오랑캐의 습속을 말한다. 여기서 ‘薙髮左袵’은 청나라의 깎은 머리 모양과 복식을 나타내니, 漢族의 문화를 버려 오랑캐의 습속을 따름을 말함이다. [본문으로]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해마다 가는 사신이 중국에 들어가 남쪽 땅의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땅 사람이 말하였다.
내 고향에 머리 깎는 가게가 있는데, 간판을 성세락사盛世樂事라고 했습디다.”
인하여 서로 보고 크게 웃다가는 조금 있더니 남몰래 눈물을 흘리려 하더라고 했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사신 가서 남쪽 오땅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하다 보니, 제 고향에 새로 생긴 이발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간판이 이름하여 성세락사盛世樂事라는 것이다. 예전 법도로야 부모께 받자온 신체발부身體髮膚에 손대는 일이 가당키나 했으랴. 구한말 개화기 때조차도 차두此頭는 가단可斷이언정 차발此髮은 불가단야不可斷也라 하던 그 머리카락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잠깐 세상이 변하고 보니, 결코 있을 수 없던 그 일이 태평한 세상에 즐거운 일로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 연암은 이 말을 하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던 것일까? 무슨 일이든 오래 되풀이하다 보면 생각이 무뎌지고, 관성만 남게 된다. 관성에 따르는 것이 성품이요 습속이다. 성품은 누구나 그러려니 하는 것이니 여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개재될 까닭이 없다. 그래 왔으니까, 남들이 하니까 하며 생각 없이 따라 하니 습속이라 한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며 말하였다.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 하는데, 시속時俗의 습관을 변화시킬 수야 있으랴? 우리나라 아낙네의 복식만 해도 자못 이일과 서로 비슷하다. 옛 제도에는 허리띠가 있었고, 모두 넓은 소매에 긴 치마를 입었었다. 그러던 것이 고려말에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많이 장가들면서부터 궁중의 머리모양과 복식이 모두 몽고의 오랑캐 제도를 따르게 되었다. 당시 사대부들이 다투어 궁중의 모양을 사모하여 드디어 풍속을 이루고 말았다. 지금에 3,4백년이 되도록 그 제도를 고치지 않아, 저고리는 겨우 어깨를 덮고 소매는 마치 감아 놓은 것처럼 좁아서, 요망하고 창피하여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러나 여러 고을 기생들의 복식에는 도리어 아름다운 제도가 남아있어, 쪽을 지어 비녀를 꽂고 원삼圓衫에는 동임이 있다. 이제 그 넓은 소매가 넉넉하고 긴 허리띠가 드리운 것을 보면 맵시가 있어 기뻐할만 하다. 지금에 비록 예법을 아는 집이 있어 그 요망하고 경망스런 습속을 변화하여 옛 제도를 회복하려고 해도, 습속이 오래되매 넓은 소매와 긴 띠는 기생의 복식과 흡사하다고 여길터이니 소매를 찢고 띠를 끊어버리며 그 남편을 욕하지 않겠는가?”
吾聞而悲之曰: “習久則成性, 俗之習矣, 其可變乎哉? 東方婦人之服, 頗與此事相類. 舊制有帶, 而皆闊袖長裙, 及勝國末, 多尙元公主, 宮中髻服, 皆蒙古胡制, 于時士大夫爭慕宮樣, 遂以成風, 至今三四百載, 不變其制. 衫纔履肩, 袖窄如纏, 妖佻猖披, 足爲寒心. 而列邑妓服, 反存雅制. 束𨥁爲髻, 圓衫純. 今觀其廣袖容與, 長紳委蛇, 褎然可喜. 今雖有知禮之家, 欲變其妖佻之習, 以復其舊制, 而俗習久矣. 廣袖長紳, 爲其似妓服也. 則其有不快裂, 而罵其夫子者耶?

 

연암은 다시 우리나라 아낙네의 복식 문제를 들고 나온다. 예전 여염의 아낙네들은 넓은 통 소매에 허리띠를 두른 긴 치마를 입었었다. 그러다가 고려말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게 되면서부터 몽고풍이 들어와 오랑캐의 상스런 머리 모양과 복식이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이제 3, 4백년이 지나고 보니 저고리란 것은 겨우 어깨를 가릴 지경이고, 소매는 팔에 둘둘 말아 놓은 것처럼 좁아서 입은 꼴을 보면 요망하고 창피하여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그런데 시골 기생들의 복식에는 허리띠도 있고 소매도 넓어 오히려 아직도 예전의 법도가 남아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있어, 사대부 아낙네의 복장이 요망하기 짝이 없고 옛 법도에도 어긋나니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아낙네들은 누구를 기생년으로 만들려 하느냐고 발끈할 것이 아닌가? 제 모습이 창피한 줄은 모르고, 기생 복장만 한심하다 타박하는 꼴인 것이다.

앞머리를 빡빡 깎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서 연극 무대 앞에 앉은 한족들은 누구인가? 남사스러운 복장을 하고서도 점잖은 체 하는 사대부가士大夫家 아낙네들은 누구인가? 오히려 옛 한궁漢宮의 위의威儀를 지녀 무대에 오른 배우는 누구이며, 순후한 아낙네의 복장을 입은 기생은 누구인가?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습속과 타성에 젖어, 기득권이 지켜주는 그늘에 앉아 우습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짓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한족들과 아낙들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이홍재李弘載 군이 젋어서부터 내게서 배웠다. 장성해서는 한어漢語 통역에 힘을 쏟았으니 그 집안이 대대로 역관譯官이었던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문학을 권면하지 않았다. 이군이 그 학업에 힘을 쏟더니 관대冠帶를 하고는 사역원司譯院에 벼슬나갔다. 나 또한 이군이 앞서 책을 읽음이 자못 총명하여 문장의 도리를 능히 알았으나 이제는 거의 잊었으리라 생각하여, 그저 그렇게 없어지고 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었다. 하루는 이군이 스스로 지은 것이라고 하면서 제목하여 자소집自笑集이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ㆍ변ㆍ서ㆍ기ㆍ서ㆍ설 같은 백여편은 모두 내용이 풍부하고 논리가 정연하여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는 의아히 여겨 말하였다.
본업을 버려두고 쓸데없는 일에 종사함은 어찌된 것인가?”
이군은 사과하여 말하였다.
이것이 본업이요 참으로 쓸데가 있습니다. 대개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즈음에 있어서 사령辭令을 잘하고 장고掌故에 밝음 만한 것이 없습지요. 그래서 본원의 사람들이 밤낮으로 힘쓰는 것은 모두 고문사랍니다. 제목을 주어 재주를 시험하는 것도 모두 이것으로 취합니다.”
李君弘載, 自其弱冠, 學於不侫. 及其長, 肄漢譯, 乃其家世呑官. 余不復勉其文學. 李君旣肄其業, 官帶仕本院. 余亦意謂李君前所讀書, 頗聰明, 能知文章之道, 今幾盡忘之, 乾沒可歎. 一日李君稱其所自爲者, 而題之曰自笑集, 以示余. 論辨若序記書說百餘篇, 皆宏博辯肆, 勒成一家. 余初訝之曰: “棄其本業而從事乎無用, 何哉?” 李君謝曰: “是乃本業, 而果有用. 則蓋其事大交隣之際, 莫善乎辭令, 莫嫺乎掌故, 故本院之士, 其日夜所肆者, 皆古文辭. 而命題試才, 皆取乎此.”

역관 이홍재가 연암에게 가져온 글은 논ㆍ변ㆍ서ㆍ기ㆍ서ㆍ설의 문체를 갖추 갖춘 백여편의 문장이다. 내용은 풍부하고 논리는 정연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자네 중국어나 열심히 익히지 않고,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가? 이런 일은 과거 공부하는 선비들이나 힘 쓸 일이 아니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이것이 저희들에겐 중국어 공부보다 훨씬 요긴한 걸요. 사대교린에 있어서 사령辭令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은 것이 제일 쓸모 있지요. 그래서 사역원에서는 밤낮으로 古文辭에만 힘을 쏟고 있답니다. 시험도 중국어 시험이 아니라 고문사로 치르고 있는 걸요.”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내가 이에 낯빛을 고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대부가 태어나 어려서는 능히 책을 읽어도, 자라면 공령功令의 글을 배워 변려의 꾸미는 글을 익힌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하고 나면 더벅머리를 가리는 임시변통의 고깔모자나 고기 잡는 통발, 토끼 잡는 올무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고, 그나마 급제하지 못하면 흰 머리가 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애를 쓴다. 그러니 어찌 다시 이른바 고문사란 것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역관이란 직업은 사대부가 비루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천재千載의 사이에 도리어 저서著書하고 입언立言하는 실지를 서리 구실하는 말단의 기술로 보아버리게 될까 염려한다. 그렇게 되면 연극하는 마당의 검은 모자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가 되지 않음이 드물 것이다.”
余於是改容而歎曰: “士大夫生而幼能讀書, 長而學功令, 習爲騈儷藻繪之文. 旣得之也, 則爲弁髦筌蹄, 其未得之也, 則白頭碌碌, 豈復知有所謂古文辭哉. 鞮象之業, 士大夫之所鄙夷也. 吾恐千載之間, 反以著書立焉言之實, 視爲胥役之末技, 則其不爲戱場之烏帽邑妓之長裙者, 幾希矣.”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정작 고문사를 밤낮 없이 익혀야 할 선비들은 그저 과거 시험에나 필요할 뿐인 공령문功令文에 힘을 쏟아 변려로 꾸미고 아로 새기는 데만 열심할 뿐이다. 그나마 과거에 급제하고 나면 이조차도 다시는 손에 대지 않는다. 고문사는 누가 공부하는가? 우습게도 사대부 지식인들이 아니라 그들이 하찮게 여겨 마지않는 역관들이다. 저들이 공령문에 있는 힘을 다 쏟고 있는 동안, 이들은 고문사를 본업으로 알고 익힌다. 실제로 쓸모 있음도 이들은 깨닫고 있다. 정작 고문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 자들은 이를 우습게 알아 치지도외하고, 그저 백화白話나 잘 배워 통역이나 하면 되겠지 싶은 역관들은 고문사를 모르면 난리라도 날 것처럼 공부를 한다. 이쯤되면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다. 무슨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내가 오래전부터 이를 염려하였기에, 특별히 이 문집에 써서 서문으로하여 말한다.
! 를 잃게 되면 초야에서 이를 찾는다. 중원의 남은 제도를 보려거든 연극 배우에게 가서 찾을 것이요, 여자 복식의 고아함을 찾으려면 고을 기생에게 나아가 살필 일이다.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자 할진대 나는 실로 역관의 천한 인사를 부끄러워 한다.”
吾故爲是之懼焉, 特書此集而序之曰: ”嗟乎! 禮失而求諸野, 欲觀中原之遺制, 當於戱子而求之矣, 欲求女服之古雅, 當於邑妓而觀之矣, 欲知文章之盛, 則吾實慚於鞮象之賤士.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 그럴진대, 뒤로 가면 고문사는 으레 역관들만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될 것이 아닌가? 선비가 선비 되는 길이 고문사에 담겨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고문사에 담겨 있거늘, 사대부는 이를 외면하고 천한 역관들은 여기에 매달리니 이것이 꼭 기생의 복장에 옛 법도가 남아 있고, 연극 배우의 복식에 옛 중국의 유제遺制가 남아 있는 것과 방불치 아니한가. 바야흐로 세상은 개판이 되고 말았다.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 싶은가? 역관의 천한 인사에게 가서 찾아볼 일이다. 사대부들에게서는 찾아볼 길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연암은 글을 이렇게 끝막는다. 이 서문을 받아든 이홍재의 표정은 어땠을까? 칭찬같기도 하고 비아냥 같기도 하구나.

그런데 연암이 넌즈시 던지는 이 말이 정작 내게는,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는 찾아보기 힘든 오늘의 시단詩壇을 향한 일침一針으로 읽힌다. 연암의 말투를 좀 더 흉내내 보면, 어려서는 능히 사물을 바라볼 줄도 알고, 우주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알다가도 자라면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에 필요한 공부에만 힘을 쏟는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취직하고 나면 그간 배운 지식들이란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다시 어찌 이른바 문학이란 것이, 시란 것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정작 시인들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등단하기 전에는 제법 다른 사람의 시집도 읽고,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비의秘儀를 뿌듯하게 느끼다가도, 일단 등단하여 시인이란 이름을 얻고 나면, 그날로 시 짓는 일은 작파하고 죽을 때까지 시인이란 이름만 팔다가는 사람도 있고, 푸념도 못되는 넋두리를 시라고 우기는 사람도 뜻밖에 적지 않다. 암호문인지 삐라인지 구분 안되는 저도 모를 소리를 시란 이름으로 발표하고, 각주가 수십 개 붙어야 알까 말까한 희한한 글을 써놓고 너희들이 뭘 알어 하는 시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전날 치열하고 절박하던 언어의 진실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제 이명耳鳴에 도취되어 좀 좋으냐고 뽐내고, 제 코고는 습관을 누가 지적하면 시도 모르는 주제에 하며 발끈 성을 낸다.

시집은 왜 그리 쏟아져 나오는 것이며, 잡지마다 신인은 왜 이다지 차고 넘친단 말이냐? 그런데도 정작 시다운 삶은 요원하기만 하고, 세상은 더 각박해만 지고, 시인다운 시인은 찾아보기가 힘들구나. 그들에게 시는 더 이상 설레임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며, 그저 시인이란 이름을 충족시켜 주는 관성화된 나열일 뿐이 되고 말았다. ! 답답하구나. 잃어버린 시를 어디 가서 찾을까? 어떤 시골에 가야 잃어버린 시의 위의威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고문사古文辭를 찾으려면 사대부에게 가서는 안 된다. 역관에게 가야만 찾을 수가 있으리라. 진정한 가치는 촌구석에 있고 연극판에 있다. 기생에게 남아 있고, 역관에게 남아 있다. 서울에는 없고, 일상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염의 아낙에게도 없고, 사대부에게서는 더더구나 기대할 수가 없다. 시는 정작 시인의 시집 속에는 있지 않다. 그럴진대 잃어버린 시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초등학교 다니는 내 딸 아이의 일기장에서 찾을 것인가? 유행가의 가사 속에서 찾을까? 가치가 전도된 세상, 지식인이 더 이상 지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포기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은 어째서 이렇듯 거꾸로만 가는가?

그러니 이홍재가 제 문집의 제목을 自笑라 한 것은, 써놓고 보니 하잘 것 없어 우습다는 겸양의 뜻을 담은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내 혼자 웃는다는 뜻인가? 그의 웃음에 담긴 의미가 나는 자꾸 부끄럽게 여겨진다.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이제 시 두 수를 읽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먼저 박제가朴齊家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란 작품이다.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花 붉다는 한 글자만을 가지고 눈앞의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花鬚有多少 細心一看過 꽃술에는 많고 적고 차이 있거니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봐야지.

 

산마루 위에 핀 들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눈앞의 꽃을 보고 그저 붉은 꽃이라고만 말하지 말라. 시인이 사물을 보는 시선은 이래서는 안 된다. 꽃술의 모양은 어떤지, 붉다면 어떤 붉은 색인지, 그것이 주는 느낌은 어떤지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꽃은 내가 만난 단 하나의 의미가 된다.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은 꽃이 아니다. ‘이름 모를 꽃은 꽃이 아니다. 떨림이 없는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고인 물은 일렁이지 않는다.

 

 

座隅覺暑退 檐隙見陰移 자리 옆에 더위가 물러가더니 처마 틈의 그늘도 옮기어 가네.
竟日黙無語 陶情且小詩 하루 종일 묵묵히 말하지 않고 정을 빚어 다시금 시를 짓는다.

 

남극관南克寬(1689-1714)잡제雜題연작 중 한 수이다. 무더위 속에 대자리를 깔고 앉아 있노라니, 후덥지근하던 더위가 한풀 숙어짐을 느낀다. 처마 틈으로 비치던 해 그늘이 조금씩 위치를 바꾼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겠구나. 가만히 앉아 있는 그, 하루 종일 입을 열어 말한 기억이 없다. 4구에서는 도정陶情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 내내 그저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어내듯, 마음속에 뭉게뭉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빚어한편의 시를 자아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말 없던 앉아 있던 여름 오후를 함께 누려 보고 싶다. 그 맑은 시선의 내부에서 일어나던 투명한 광합성 작용을 느껴 보고 싶다.

 

 

 

 

인용

지도 / 목차 / 한시미학 / 연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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