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형수님 묘지명 -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본문

책/한문(漢文)

형수님 묘지명 -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7. 15:39
728x90
반응형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이 단락에서 가장 빼어난 서술은 이렇게 20년을 노심초사하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적빈을 면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廿載嘔膓擢髓, 甁槖垂倒, 屈抑挫銷, 無所展施)”라는 대목이다. ‘20이란 연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인 1759년부터 형수가 세상을 버린 해인 1778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문장은, 주부로서 공인 이씨가 살아온 삶과 그녀의 내면적 심리 상황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묘파해내고 있다. 가족과 집안을 위해 죽으라고 일하고 애썼지만 가난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공인 이씨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 절망감과 좌절감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터이다.

 

노심초사하여 뼈 빠지게(嘔膓擢髓)”라는 말의 원문은 嘔膓구장이다. 이 단어는 嘔心抽膓구심추장이라는 말의 준말인데, 그 원래 뜻은 심혈을 토하고 창자를 뽑아낸다는 뜻이다. 연암은 온 몸을 바쳐 가족을 위해 헌신한 형수를 위해 이 말을 고르고 골라 썼을 터이다.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했으나라는 말의 원문은 屈抑挫銷굴억좌소이다. 이 네 글자는 평생 가난에 찌든 공인 이씨의 심리 상태를 곡진하면서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축되다라는 뜻이고, ‘억눌리다라는 뜻이며, ‘꺾이다라는 뜻이고, ‘녹아 없어지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이 네 글자는 가난으로 인한 공인 이씨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자의 용례로는 넋을 잃다는 의미의 소혼銷魂’, 삭아 없어진다는 뜻의 소잔銷殘’, 녹아 없어진다는 뜻의 소훼銷毁등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이들 용례에서 짐작되듯 이 자는 절망감으로 마음이 소멸되어 버릴 것만 같은 심리 상황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마음과 몸은 둘이 아니니,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악화시켜 몇 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리라. 이렇게 본다면 공인 이씨는 가난 때문에 몸과 마음에 골병이 들어 죽은 셈이다. 연암은 형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객관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비통한 마음을 억누른 채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리스트로서의 연암의 면모가 이런 데서 잘 드러난다 할 것이다.

 

죽어가는 공인 이씨의 심리 과정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놓은 연암의 예리한 필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다음 문장, 매양 낙엽이 지고 추워지는 가을이면 형수님은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 병이 더욱 도졌다라는 문장에 대해서도 깊은 음미를 요한다. 이 문장에서 특히 더욱 실망하고 낙심하여라는 말에 눈을 줄 필요가 있다. 이 말의 원문은 廓然霣沮확연운저. ‘霣沮운저는 실망하거나 낙담한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문제는 그 앞의 廓然확연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휑뎅그렁하다’ ‘텅 비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삶에 대한 의지나 희망이 소진된 공인 이씨의 마음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연암은 바로 이 두 글자로써 희망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공인 이씨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무섭지 않은가? 이토록 예리한 연암의 필치가, 연암의 글이 남다르다고 하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형수의 아버지가 형수를 보러 자주 찾아오다

2. 생활고에 병에 걸린 형수님을 부모처럼 모시다

3. 청빈의 가풍 때문에 엄청 고생한 큰 형수

4. 주부로 두 번의 상을 치르다

5. 가난 때문에 병들어 죽어간 형수를 그려내다

6.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정살림을 돌보다

7. 에피소드를 삽입시켜 글에 생기를 불어넣다

8. 형수를 위로하려 연암협을 미화하다

9. 형수님은 연암협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11. 총평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