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정살림을 돌보다
아아! 옛사람들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를 약소국의 대부大夫에 견주었다. 조석朝夕도 보전키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울고 망해가는 나라를 부지하며 조정에서 혼자 국사國事를 맡아 고군분투하듯 하셨고, 변변찮은 것이지만 정성스레 제수祭需를 마련해 선조의 혼령이 굶주리지 않게 하셨으며, 또 좋은 음식은 못 되더라도 음식을 장만해 손들을 잘 접대하셨으니, 이 어찌 이른바 ‘온 힘을 다해 죽은 이후에야 그만둔다’는 데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嗟乎! 貧士之妻, 昔人比之弱國之大夫. 其拄傾支覆, 莫保朝夕, 猶能自立於辭令制度之間, 而澗繁沼毛, 不餒其鬼神, 不腆之廚庖, 足以嘉會, 豈非所謂: ‘鞠躬盡瘁, 死而後已’者耶?
내가 자식을 낳아 그 아이가 겨우 태胎를 벗었을 때 형수님은 그 아이가 사내인 걸 보고 마침내 양자養子로 삼으셨는데, 지금 열세 살이다. 夫弟趾源生子纔脫胞, 恭人視其男也, 遂子之, 今十三歲. |
1편~5편까지는 형수의 일생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라면, “아아!”라는 감탄사로 시작되는 이 단락은 형수에 대한 여암의 주관적인 평이라 말할 수 있다. 앞 단락에서 공인 이씨가 ‘접빈객 봉제사’하는 일에서 대가大家의 법도를 잃지 않았음을 말했는데, 이 단락은 그에 호응하여 공인 이씨를 약소국의 충신 내지 제갈공명에 견주고 있다.
연암은 특히 “온 힘을 다해 죽은 이후에야 그만둔다(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제갈량의 말로써 집안을 위해 고군분투한 형수의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6년 전인 1772년에 씌어진 이동필의 제문에 이미 보인다는 사실이다. 즉 연암은 형수의 아버지인 이동필의 제문 가운데서 형수에 대해 언급하면서 “형수는 집안에서 옛날의 충신과 같았으니 온 힘을 다해 그만두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 이를 통해, 연암이 이 묘지명에서 처음으로 형수를 옛날의 충신이나 제갈공명에 견준 것이 아니라 형수가 살아있을 때부터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락은 그 뒷부분에서 의미가 전환되어, 연암이 자신의 맏아들인 종의宗儀를 형수의 양자로 들여보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대목은 1단락의 “아들 셋을 낳았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生三男, 皆不育)”라는 말과 호응관계를 이룬다. 연암은 왜 이 편의 끝에다 이 사실을 특기한 것일까? 이 점은 형수에 대한 연암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선 『과정록』의 기록부터 보자.
큰어머니(공인 이씨)는 혈육이 없이 돌아가셨다. 당시 나의 형님(연암의 맏아들)은 겨우 열 살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큰집에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어야 할 입장에 있었다. 큰아버지는 형님이 너무 어림을 민망히 여겨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상주 노릇을 하겠다. 좀 더 자란 다음 양자로 세워도 늦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연암의 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으며, 끝내 형님을 불러 상복을 입혀 상주 노릇을 하게 하셨다. 이를 보고 놀라 감탄하지 않는 조문객이 없었다. (1권 46번)
及伯母卒而無育, 吾先兄年甫十許歲, 當入系適嗣. 伯父閔其幼弱曰: “我主其喪矣. 姑待其成長而立之, 未晚也.”
당시 연암에게는 사내자식이라곤 종의 하나밖에 없었다. 둘째 아들인 종채는 1780년생이니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연암은 당시 하나밖에 없던 아들을 양자로 세워 큰집의 상주가 되게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시집와 몇 십 년간 온갖 고생만 하다 자식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한 형수에 대한 연암의 애틋한 마음이 들어 있을 터이다. 이 단락의 마지막 대목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간단히 서술되고 있지만, 형수에 대한 연암의 이런 마음이 그 바탕에 놓여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전문
인용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1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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