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형수님은 연암협에 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형수는 몹시 위독했지만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손으로 머리를 가누고선 한 번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이 단락에서뿐만 아니라 이 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우리 눈에 박힌다. 20여 년을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힘이 소진하여 절망과 좌절감 속에 죽어가고 있던 형수에게 연암이 들려준 말은 그 말만으로도 기쁘고 가슴이 벅찼으리라.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한 번 빙긋이 웃음을 머금은 것이리라.
사실 이 글 전체에서 형수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 발언한 것은 이 대목 한 군데밖에 없다. 비록 앞 부분에서 공인 이씨에 대해 많이 서술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암의 진술일 뿐이었다.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 이 말은 형수가 잠시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 독자에게 육성을 들려준 것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독자에게 아주 강하고 인상적인 울림으로 기억될 법하다. 그리고 그 울임은 가난한 선비 집안에 시집온 여인의 삶과 운명과 꿈을 한꺼번에 환기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이처럼 이 단락의 전반부는 연암의 과장된 말과 그로 인한 공인 이씨의 잠시 기뻐하는 낯빛으로 인해 앞 단락들과는 달리 환하고 밝은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대조 때문에 이 단락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공인 이씨의 산산한 삶은 마침내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연암은 “벼가 채 익기도 전에(禾稼未熟)”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벼가 채 익기도 전에”라는 이 표현이 우리 마음을 다시 툭 건드린다. 공인 이씨는 연암협의 집 북쪽 산기슭에 묻힌 모양이다. 이북以北에 지금도 그 묘가 남아 있을까? 언젠가 꼭 확인해보고 싶다.
공인 이씨를 연암협에 장사 지낸 것을 두고 “형수님의 뜻을 이뤄주기 위해서다(所以成恭人之志也)”라고 했는데, 이 말은 주목을 요한다. 그것은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라는 말과 호응을 이루는바, 형수에 대해 연암이 느껴 온 미안함과 복잡한 심경을 그 속에 담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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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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