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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7. 김삿갓은 없다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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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7. 김삿갓은 없다③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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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삿갓은 없다

 

 

정조 때 정승을 지낸 이서구(李書九)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로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내를 건너려다,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고 건네게.” 했겠다. “그러시지요.” 하고는 젊은 것을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이 친구 늙은이 등에 업혀 까닥까닥 냇물을 건너다보니 아뿔싸! 늙은이가 정승이나 할 수 있는 옥관자(玉貫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 무지랭이 늙은인 줄 알았다가 큰 경을 치르게 생겼다.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창졸간에 시내를 건넜는데, 경망한 선비는 좀 전의 서슬은 간데없이 난짝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죽을 죄를 빌었다. 그러자 이 의뭉스런 늙은이는 시를 한 수 읊어주고는 다시 건너가 모른 척 낚시질이다. 그 시에 이랬다. 외관으로 보아 육담풍월의 일종이다.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굳이 해석을 해보니 이렇다.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시비(是非)미음에 있더라.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라.

 

점점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시옷은 ()’이요, 미음은 ()’의 모양이다. 리을은 ()’, 디귿에 점을 찍으면 망할 ()’자가 된다. 이렇게 풀고서 다시 시를 읽으니 이렇게 된다.

 

吾看世人 是非在口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시비(是非)에 있더라.
歸家修己 不然則亡 집에 돌아가 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하리라.

 

경망한 선비에게는 활운(活訓)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김삿갓의 시로 둔갑이 되면서는 처음 12구가 슬쩍 바뀌고, 전후 이야기도 달리 윤색되었다.

 

腰下佩기역 牛鼻穿이응 허리 아래엔 기역을 차고 소 코에는 이응을 뚫었네.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

 

1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허리에 낫을 차고 지나가는 떠꺼머리 총각을 묘사한 것이 12구라면, 34구는 박절하게 나그네를 타박하는 주인에게 쏘아붙인 독설이다. ! 어느 것이 진짜 김삿갓이 지은 것인가?

 

현재 김삿갓의 시로 수록된 작품 속에서 역대 야담집이나 시화에 다른 사람의 시로 이미 소개된 것은 위의 예들 말고도 얼마든지 더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오늘날 김삿갓의 시로 믿고 있는 것이 어떤 경로로 정착되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월 소재 김삿갓 묘를 발견하여 보고한 바 있는 박영국(朴泳國) 선생이 1987년 김삿갓의 삼회갑(三回甲)을 기념하여 전국에 김삿갓 유시(遺詩)를 공모했던 바, 무려 690수의 시가 제보되었는데 앞서 본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하는 시도 이때 김삿갓의 시라고 제보된 것 중 하나이다. 이렇듯 김삿갓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종내는 조선조에 노래된 모든 희작시가 김삿갓의 이름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고야 말 모양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3. 눈물이 석 줄

4. 눈물이 석 줄

5. 김삿갓은 없다

6. 김삿갓은 없다

7. 김삿갓은 없다

8.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0.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2.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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