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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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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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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무제(無題)를 보자.

 

吉州吉州不吉州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許可許可不許可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明川明川人不明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漁佃漁佃食無魚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길주에 와서 허씨 성을 가진 집에 묵기를 청했는데 거절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 분풀이를 명천과 어전의 지명에 대로 풀었다. 똑같이 땅 이름으로 장난쳤지만 진지함은 없고 가벼운 말장난에 그쳤다.

 

邑號開城何閉門 고을 이름 개성(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山名松嶽豈無薪 산 이름 송악(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黃昏逐客非人事 황혼의 축객(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禮義東方自獨秦 예의 동방 이 나라에 그대 홀로 오랑캐라.

 

이것은 개성에서 김삿갓이 불 못 땐 찬 방에서 차마 재울 수 없다는 핑계로 축객(逐客)을 당하고서 그 집 대문에 써붙이고 갔다는 시다. 4구는 예전 나라가 외지인을 쫓아내는 축객의 정책을 썼던 일이 있어 이를 빗댄 말이다.

 

昨年九月過九月 작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今年九月過九月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누나.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9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노니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의 빛깔은 노상 9월이로세.

 

김삿갓의 구월산(九月山)이다. 무려 구월(九月)’이란 어휘가 여덟 번 되풀이 된다. 시인은 이렇게 하고서도 말이 되지 않느냐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유희적 태도가 행간에 넘난다. 이런 말장난 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벼룩이나 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그의 시에서는 서슴없이 등장한다. 먼저 이[]를 읊은 시를 보자.

 

飢而吮血飽而擠 주리면 피 빨고 배부르면 떨어지니
三百昆蟲最下才 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
遠客懷中愁午日 먼 길손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窮人腹上聽晨雷 주린 이 배 위에서 새벽 우레를 듣는다.
形雖似麥難爲麴 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
字不成風未落梅 글자 풍자(風字)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問爾能侵仙骨否 묻노니 능히 선골(仙骨)도 범하려는가
麻姑搔首坐天台 마고(麻姑) 할미 머리 긁으며 천태산(天台山)에 앉았는데.

 

역시 운자는 지켰다. ()를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격인데, 그 발상 또한 흥미롭다. 먼 길손의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3구는 무슨 말인가? 길 가던 나그네는 햇살이 따뜻하면 양지녁에 쭈그리고 앉아 저고리를 홀랑 뒤집어 놓고 이른바 이 사냥을 하게 마련이다. 4구의 우레소리는 주린 창자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다름 아니다. 보리알처럼 생겼음에도 누룩은 될 수 없고, ‘()’자는 ()’에서 한 획을 뺀 것이니 헛김이 샐 밖에. 선골(仙骨)은 자신을 이름일 테고, 마고할미는 마고소양(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새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78구는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어내는 마고할미가 천태성에 앉아 선골(仙骨)인 나를 지키고 있으니 감히 내게 붙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만은 면할 수 없어 해학으로 풀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주제는 이야! 제발 내게서 떨어져 다오.’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3. 눈물이 석 줄

4. 눈물이 석 줄

5. 김삿갓은 없다

6. 김삿갓은 없다

7. 김삿갓은 없다

8.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0.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2.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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