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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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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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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서울 것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쪽같이 속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깜찍하게 속였던 시골내기가 맹랑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서울 것과 시골내기는 시 짓기 시합을 벌이는데, 여기에 동원된 시체(詩體)라는 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던 잡체시들이다. 인명(人名)을 넣어 짓는 인명시(人名詩)로 겨루고, 연구(聯句)로 주거니 받거니 시합하고, 다시 육언(六言)으로 실갱이를 하다가, 종내 357()의 층시(層詩)로 옮겨 가고, 약명체(藥名體)로 승부를 결하였다. 서울 것은 시골내기에게 끝내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참패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시골내기가 오행시(五行詩)로 겨룰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짓는 방법은 첫 구 첫 자에 ()’자를 넣고, 끝 자에는 ()’로 맺으며, 둘째 구 첫 자는 ()’자로 열어 끝 자는 ()’자로 닫으며, 그 가운데에 ()’자를 넣어 오행(五行)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시골내기가 먼저 운을 뗀다.

 

萍蹤何處至 花月滿虛堂 부평 같은 자취 어드메서 이르렀나 꽃 달만 빈 집에 가득하도다.

 

두 구절의 첫 자 ()’()’는 머리에 ()’를 얻었으니, ‘()’에 속하고, ‘()’()’은 파자(破字)하여 아래 반을 취하면 ()’가 된다. 그러자 서울 것이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한 구절을 잇고 4구를 마저 채우지 못한 채 손을 들고 말았다.

 

流影金樽照 흐르는 그림자 금술잔에 어리니

 

()’()’에 속하고 ()’()’로 받쳐져, 그 가운데 을 얹어 오행을 갖추었다. 하지만 4구가 빠졌으니 시 짓기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한 구절을 마저 잇지 못하자 시골내기가 다음 한 구절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瀅然飮白光 맑게 흰 빛을 마시는 도다.

 

()’가 들어 있고, ‘()’에서 나온다. ‘()’은 요령부득인데, 가만히 보니 음운이 ()’에 속한다. 기상천외의 재치로 시골내기가 서울 것에게 압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요로원야화기는 단순하게는 갖은 시체(詩體)를 놓고 두 선비가 각축을 벌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들먹거리는 서울 것을 KO시킬 만큼의 시재(詩才)를 지녔으면서도 정작 시골내기는 청운(靑雲)의 벼슬길에 명함 한 번 내밀어 보지 못했고, 전전하는 여관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을 뿐이었다. 모처럼 서울 것 하나가 제대로 걸려 분풀이는 했지만,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3. 눈물이 석 줄

4. 눈물이 석 줄

5. 김삿갓은 없다

6. 김삿갓은 없다

7. 김삿갓은 없다

8.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0.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2.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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