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김삿갓은 없다②
이응수에 의해 김삿갓의 시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뜬지 근 70년 뒤인 1939년의 일이다. 이응수는 이곳저곳에서 구전되던 김삿갓의 시 183편을 모아 상재하였다. 대부분이 전문(傳聞)에 의한 기록이고 보면, 그 진위(眞僞)를 헤아려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무망한 일이다. ‘최불암 시리즈’가 그렇고 ‘덩달이 시리즈’가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삿갓의 시 또한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불특정 다수의 희작시들이 모두 그의 이름 아래 모인 것일 뿐이다. 김삿갓의 시로 알려진 다음 시를 보자.
是是非非非是是 |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 아니고 |
是非非是非非是 |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닐세. |
是非非是是非非 |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 그름이 아닐진대 |
是是非非是是非 |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
김삿갓의 「시시비비시(是是非非詩)」는 이미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것으로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에 소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시비(是非)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개판의 세상을 향한 야유다. 뿐만 아니라 김시습은 아예 한수 더 떠서 이런 구절도 남겼다.
同異異同同異異 | 다른 것 같다 하고 같은 것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
異同同異異同同 | 같은 것 다르다 하고 다른 것 같다 하니, 다르고 같음이 같구나. |
허후(許厚)도 그의 「시비음(是非吟)」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是非眞是是還非 | 참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음도 그름 되니 |
不必隨波强是非 | 물결 따라 억지로 시비할 것 아닐세. |
却忘是非高着眼 | 시비를 문득 잊고 눈을 높이 두어야 |
方能是是又非非 |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으리. |
다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말장난들이다. 또 김삿갓이 문전축객 하는 주인을 풍자해서 지었다는 「인도인가(人到人家)」에 다음 구절이 있다.
人到人家不待人 | 사람이 사람 집에 왔는데 사람 대접 않으니 |
主人人事難爲人 | 주인의 인사가 사람 되기 어렵도다. |
매 구절마다 ‘인(人)’ 자를 세 번씩 썼다. 말장난의 기미가 농후하다. 이 또한 조선 전기의 문인 기준(奇遵, 1492~1521)의 시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人外覓人人豈異 | 사람 밖에서 사람 찾으니 사람이 어찌 다를 것이며 |
世間求世難同世 | 세간에서 세상을 찾으니 세상을 같이하기 어렵겠네. |
여기서는 인(人)과 세(世)를 각각 세 번씩 반복했다. 예전 시조에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하던 말장난과 비슷하다.
인용
3. 눈물이 석 줄①
4. 눈물이 석 줄②
5. 김삿갓은 없다①
6. 김삿갓은 없다②
7. 김삿갓은 없다③
12.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①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