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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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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④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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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四脚松盤粥一器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天皇崩乎人皇崩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萬樹靑山皆被服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明日若使陽來弔 밝는 날 햇님 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家家畯前淚滴滴 집집 처마 마다 눈물이 뚝뚝.

 

눈을 노래한 ()이란 작품이다. 소담스런 서설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얀 소복(素服)으로 갈아입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흰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울리지도 말자던 노천명과는 달리, 시인은 엉뚱하게 흰 눈에서 주재자의 죽음을 떠올리고, 햇볕에 녹아떨어지는 낙수를 눈물로 환치시켜 버린다. 시상을 전개하는 시적 발상도 참신하려니와, 그의 무기력한 나른함과 뿌리 깊은 비애의 정조가 가슴을 씁쓸히 적신다. 그는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난오평생시(蘭嗸平生詩)를 남겼다. 그 끝 네 구절은 이렇다.

 

身窮每遇俗眼白 궁한 신세 속인들의 백안시(白眼視)만 받았고
歲去偏傷鬢髮蒼 세월 가며 터럭만이 시들었구나.
歸兮亦難佇亦難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幾日彷徨中路傍 몇 날을 길 가에서 서성였던고.

 

김삿갓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비감(悲感)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과체시(科體詩)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시체(詩體)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기고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체제(體制)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 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요즈음 사람들의 악취미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3. 눈물이 석 줄

4. 눈물이 석 줄

5. 김삿갓은 없다

6. 김삿갓은 없다

7. 김삿갓은 없다

8.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0.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12.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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